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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행복은 작은 틈과 빈도에서 온다

by 김민식pd 2023. 2. 17.

월급쟁이에서 벗어났을 때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거예요. 은퇴의 핵심은 그겁니다. 다들 은퇴에 대비해서 열심히 일하지만 55세 이상의 미국인 중 48퍼센트는 은퇴한 뒤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거나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은 채 인생의 수십 년을 일에만 바친다는 뜻이지요. 

쉰넷의 나이에 명예퇴직을 선택한 제가 누리는 즐거움은 다 ‘틈[間]’에서 나옵니다. 공간空間, 시간時間, 인간人間. 여행을 통해 멋진 공간을 찾아다니고 독서와 모임, 취미를 통해 즐거운 시간을 누리며 다양한 모임을 통해 인간관계의 즐거움을 누립니다. 

드라마 피디로 일할 때 부담감이 너무 컸어요. 한 시간짜리 드라마 한 편을 만드는 데 수억 원의 제작비가 드는데요. 내 연출이 신통치 않으면 작가, 배우, 제작진 등 많은 사람에게 손해를 끼칩니다. 시청률의 압박을 받으며 밤잠을 설쳐가며 일했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은퇴하고 무엇을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다행히 내게는 블로그가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 온라인에 독서 일기를 올립니다. 무료로 누리는 일상은 자칫 소중함을 잊기 쉽습니다. 힘들게 예약을 해서 비싼 돈을 내고 본 콘서트는 기억에 남지만 누가 초대권을 줘서 간 무료 공연은 금세 잊어요. 빌려 읽은 책에서 얻은 깨달음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마음에 든 글귀를 옮겨 씁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나의 경험과 앞으로 해야 할 일도 함께 적어봐요. 책 리뷰를 공유함으로써 독서라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은 공적인 활동이 됩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돈이 한 푼도 들지 않습니다. 들인 비용이 0이니 비용 절감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글을 잘못 써서 욕을 먹어도 온전히 나의 몫이니 남에게 피해를 줄 위험도 적고요. 드라마 한 편을 연출하는 건 몇 년에 한 번 기회가 올까 말까 한 일인데 블로그는 매일 아침 새로운 글 한 편을 올릴 수 있습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걸 익히 알고 있거든요. 

행복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님이 쓴 《행복의 기원》(21세기북스)을 보면 진화는 자연선택과 성 선택을 통해 이루어졌어요. 고로 인간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행위를 할 때마다 행복을 느낍니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행위를 할 때마다 기쁨을 느낀 선조들 덕분이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한 이유는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고 매력적인 이성을 볼 때 기분이 좋은 이유는 짝짓기의 희망에 들뜨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우리 몸이 자신에게 주는 인센티브입니다. 회사에서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줄 때 고려할 사항은 무엇일까요? 지속적인 노동 제공의 여부죠. 인센티브를 한번에 너무 많이 줘서 ‘음, 이 돈이면 사표 쓰고 몇 년 놀아도 되겠는걸.’ 하고 나가버리면 곤란합니다. 받을 때 기분이 확 좋았다가 금세 사라질 정도의 보너스를 줍니다. 그래야 또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계속 일할 테니까요. 행복이란 인센티브가 오래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생존과 번식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니까요. 

끼니를 때우고 포만감을 느끼며 누워있는 원시인 앞에 토끼가 지나갑니다. 배가 부르니 그냥 드러누워 토끼를 보낸 사람과 배가 불러도 사냥을 하러 나간 사람, 둘 중 생존과 짝짓기에 더 유리한 사람은 후자였을 것입니다. 만족을 모르고 끊임없이 보상을 추구하는 사람, 우리는 그런 이들의 자손입니다.

강도 높은 자극을 추구하기보다 작은 성취를 조금씩 자주 느낄 수 있어야 해요. 그러자면 처음 해보는 일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오래 한 업무나 취미 활동은 그 성취의 기준이 높아요. 새로 시작한 일은 기준이 낮습니다. 조금만 늘어도 성취의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낯설고 서툴더라도 해보겠다고 마음을 내는 일이야말로 ‘갓성비’ 행복일지도 모릅니다.

졸저 <외로움 수업>에 나오는 글입니다. 

20대에 1년에 200권의 책을 읽고 깨달았어요. 다가올 21세기에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가 오는구나. 세계화 시대를 대비해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혼자서 영어 공부를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에 대해 10년간 고민한 내용을 담은 책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고요. 40대에 피디로 일하며 느꼈어요. 정보화의 시대에 정보의 직접 생산자가 되는 가장 쉬운 길이 글쓰기고, 블로그에 있구나. 창작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내용을 담은 책이 <매일 아침 써봤니?>입니다. 

요즘 저의 가장 큰 화두는 고령화입니다. 세계화와 정보화는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만,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건 고령화입니다. 100세 시대, 외롭지 않고 오래오래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많은 책을 읽고, 직접 실천해보며 고민한 내용을 <외로움 수업>에 담았습니다. 모쪼록 이 책이 고난과 시련을 맞은 후에도 행복을 찾아가는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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