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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뼛속 깊이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

by 김민식pd 2023. 2. 20.

오늘 소개할 책은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 김선형 / 살림출판사)입니다.

책에는 끝장 외로운 한 아이가 나옵니다. 아버지는 전쟁 참전용사로 포탄에 중상을 입고 귀향하는데요. 몸만 다친 게 아니에요. 장애는 아버지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요. 평생 알코올 중독자로 살아갑니다. 술취한 아버지의 폭력을 이기지 못해 언니 오빠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요. 어느날 아침 엄마가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가버립니다. 끝까지 동생을 지키려했던 오빠도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납니다. 혼자 습지에 남겨진 소녀는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뉴욕타임스 북리뷰'의 소개글입니다.

'고통스러울 만치 아름다운 소설, 살인 미스터리이고 성장소설이며 자연에 바치는 찬가다. 오언스는 버림받은 어린이의 눈을 통해 노스캐롤라이나 해안의 황량한 습지를 고찰한다. 그리고 세계와 격리되어 외톨이로 살아가는 이 아이는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세계의 비밀스러운 경이와 위험에 눈을 뜨게 해준다.'

러브스토리이자, 살인 미스터리요, 법정 스릴러이자, 자연 관찰 에세이입니다. 이 책은 델리아 오언스의 첫 소설인데요. 참으로 놀라운 데뷔작입니다. 

저자는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인데요. 아프리카에서 7년 동안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에세이도 펴내셨어요. 혼자 남겨진 소녀에게 가장 어려운 주제는 남녀의 사랑입니다. 자연상태에서 동물들의 짝짓기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소설에는 「음흉한 섹스 도둑」이라는 논문이 소개되는데요. 

'자연에서는 2차 성적 특징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수컷들이 약한 수컷들을 물리치고 최고의 영역을 확보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뿔이 가장 크다든가 목소리가 굵다든가 가슴이 넓다든가 우월한 지식을 가졌다든가. 암컷들은 이런 위풍당당한 수컷들을 선택해 짝짓기하고 주위에서 가장 뛰어난 DNA를 지닌 씨앗을 받아 자식에게 물려준다. 생명의 적응과 지속 측면에서 가장 강력한 현상이다. 덤으로 암컷들은 새끼에게 최고의 영역도 물려줄 수 있다.

그러나 강인하지도 못하고 아름답게 꾸미지도 못하고 지능도 떨어져서 좋은 영역을 지킬 능력이 없는 발육 미달의 수컷 중 일부는 온갖 교묘한 술수를 써서 암컷을 속이려든다. 왜소한 몸을 한껏 부풀린 자세로 돌아다니며 과시하거나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라도 자주 고함을 질러댄다. 이런 수컷들은 위장과 거짓 신호에 의존해서 여기저기에서 교미의 기회를 움켜쥔다. 작가에 따르면, 조막만 한 황소개구리들은 풀밭에 웅크리고 숨어 우렁차게 울며 암컷을 부르는 알파들 옆에 바짝 붙어 있곤 한다. 강인한 목청에 이끌린 암컷이 여러 마리 나타나 알파 수컷이 그중 한 마리와 교미하느라 바쁜 틈을 타 약한 수컷이 펄쩍 뛰어나와 남은 암컷 중 한 마리와 교미를 하곤 한다. 이런 사기꾼 수컷이 바로 ‘음흉한 섹스 도둑’이다.

카야는 아주 오래전 엄마가 언니들에게 녹슨 픽업트럭을 과하게 튜닝해 몰고 다니거나 고물 자동차의 라디오를 귀청이 떨어지게 틀고 다니는 젊은 남자들을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가치한 남자들이 시끄러운 법이거든.” 엄마는 말했다.'

어린 시절, 논두렁을 지날 때 개구리 소리가 시끄러울 때가 짝짓기 철이었군요. 야생의 짝짓기는 매우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암컷에게 자기 씨를 뿌리기 위해 수컷들은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수사자들은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승자가 모든 암컷을 독차지하고 패자는 쓸쓸하게 외톨이가 됩니다. 곤충 암컷은 짝짓기 도중에 상대인 수컷을 잡아먹기도 해요. 아비는 자신의 몸을 바쳐 자식들에게 양분을 공급하고 죽어갑니다. 생존과 번식,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습니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달아났던 오빠가 어른이 되어 고향을 찾아옵니다. 동생이 묻습니다.
“이제 원하는 게 뭐야?”
“어떤 식으로든, 네가, 나를 용서해주는 거.”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라고 쓴 대목에서 한동안 멍하니 있어어요. 결국 동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난 오빠를 한 번도 원망한 적 없어. 우리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잖아.”

그 오빠도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달아났던 거였어요. 가출이 오빠가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거죠. 그럼에도 이렇게 말해줄 수 있다는 건 여주인공의 영혼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참 좋은 소설입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에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요. 책으로 먼저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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