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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우리 여행을 떠나요

by 김민식pd 2023. 1. 27.

우린 때로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합니다. '밥 한 번 먹자.' '얼굴 한번 봐야지.' 소망을 담은 표현이지요. 보고 싶다는 말입니다. 저도 약속을 남발합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때도 있고요. 2020년 11월 블로그 문을 닫을 때, 감히 '다시 돌아오겠습니다'하고 약속을 드리지는 못했어요. 그때는 돌아올 자신이 없었거든요. 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주인이 자리를 비운 이곳에 댓글이 계속 달렸습니다. '피디님, 잘 지내시지요? 피디님이 올려주시는 책 소개글이 없으니 심심합니다. 다시 돌아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마음이 아파 차마 답을 달지는 못했어요. 다만 혼자 다짐했지요. '언젠가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날, 이분들을 만나 그런 글들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는지 꼭 말씀드려야지.' 

2021년 봄, <프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원데이클래스나 온라인 모임을 여는 플랫폼인데요. 혹 온라인 독서 모임을 진행해보지 않겠느냐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너무 외로웠던 저는 하겠다고 했어요. 사람들과 책에 대한 수다를 떨고 싶었거든요. 4월부터 5월까지 두 달 동안 4번 모여 책 이야기를 했고요. 마지막 모임에서 그런 약속을 했어요. '언젠가 제가 이 힘든 시기를 보낸 후, 외로움에 대해 책을 낸다면, 우리 그때 다시 만나 수다를 떨어요.'

2021년 11월, 1년만에 블로그에 돌아왔어요. 복귀하고 올린 글을 보신 <숭례문학당> 대표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작가님, 잠수 후 상륙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학당에서 모임 한번 하시죠? ^^ 4주차 줌으로요.' '김민식 PD의 <소셜 미디어로 인플루언서 되기>'라는 수업을 제안해주셨어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어요. 은퇴하고 1년쯤 되니,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고 싶었어요. 줌 수업을 마치고 남산으로 소풍도 다녀왔어요. 그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소셜 미디어 창작자를 꿈꾸는 여러분의 궁극적인 목표는 책을 쓰는 저자가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누군가 책을 낸다면, 꼭 단톡방에서 소식을 올려주세요. 북토크든 저자 강연회든 우리가 달려갈게요. 우리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사람이 되어주는 겁니다." 

1월 14일 <외로움 수업>의 출판기념회가 열며 오랜 다짐과 약속을 실천에 옮겼어요. 그 자리에 오신 윤영선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독서 모임을 할 때 피디님은 항상 잘 웃고 명랑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피디님이 외로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외로움 수업'을 쓰셨다니 참 아이러니입니다." 맞아요. 사람을 만나면 잘 웃지만, 혼자 있을 때 저는 외로움을 많이 탑니다. 그래도 제게 손을 내밀어 주시는 분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어요. 

그날의 수다는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관계도대왕'님이 댓글란에 이렇게 쓰셨어요.

'<외로움 수업>... 빨리 읽고 싶은데 곱씹어 읽고 싶은 책이라 음미하며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 받자마자 든 궁금증인데요. 왜 겉 표지가 우주 별자리일까... 제목과 작가님 사진을 보면 무겁고 진중한 내용일 것 같은데 우주 별자리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쨌든 작가님을 만나뵌듯 너무 반가웠어요 ㅎㅎ 저에게 작가님의 책은 백종원님 식당 같아요. 믿고 보는 책. 덕분에 잘 읽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저는 <외로움 수업>의 표지를 정말 좋아합니다. 아, 표지를 디자인하시고 아이디어를 내신 분은 이 책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셨구나, 하고 생각해요. 

별자리를 만들어낸 사람은 누구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수천년 전, 사람들이 마을에 모여 살 때, 혼자 산에서 지낸 이가 있어요. 바로 양치기지요. 양치기는 정말 외로운 직업입니다. 일단 양들이 이곳저곳 쏘다니며 풀을 뜯다보니 들판이나 산에서 노숙을 해야 하고요. 밤에도 혹 늑대나 들개가 나타날까 양들을 지켜야했겠지요. 멀리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리면 졸린 눈을 비비며 밤을 새웠을 거예요. 수천 년 전에는 스마트폰, TV, 라디오가 없었으니, 양치기에게 유일한 엔터테인먼트는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는 것 아니었을까요? 그에게 밤하늘은 아이맥스 영화관이었어요. 밤하늘에 그림을 그리듯 별자리를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었을 거예요. 

황소 자리는 제우스신이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파(Europa)를 유혹하기 위해 변신한 황소의 모습이고요. 헤라클레스의 손에 죽임을 당한 네메아의 사자는 밤하늘에 올라가 사자 자리가 되었어요. 처녀 자리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주인공인데요. 봄이 되면 남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처녀자리가 지하세계(저승)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페르세포네의 모습 같지요.

그리스 신화는 외로운 사람들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만든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며, 헤라클레스나 제우스를 떠올렸어요. 영웅이나 신이 저 멀리서 내게 빛을 보내주며 지켜주기에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겠지요.

블로그를 찾아와주시고 댓글로 말을 걸어주시는 여러분이 제게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분들이에요. 그 힘든 시절, 여러분이 달아주시는 댓글을 보며 견딜 수 있었어요.

모임에서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피디님이랑 같이 여행을 가고 싶어요."

'네, 우리 같이 여행 가요.' 

<외로움 수업>을 보면, 힘든 시절에 집 근처 공원들을 엮어 3시간짜리 산책 코스를 만들었다고 나와요. '은퇴자의 그랜드 투어'라 부르며 매일 동네 여행을 즐겼다고요. 꽃피는 봄이 오면, 제가 좋아하는 산책 코스를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는 약속을 좋아해요. 약속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거든요.  

'우리 봄이 되면 같이 여행을 떠나요.'

<외로움 수업>을 읽은 독자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될 거예요. 벌써부터 마구 설레네요. ^^

초대장은 봄에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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