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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21세기 삶의 행복

by 김민식pd 2023. 1. 30.

<로마의 일인자> 2권(콜린 매컬로 / 교유서가)을 읽었습니다.

기원전 105년, 지중해를 장악한 로마 제국.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후, 아프리카에도 속주를 두어 지배하에 두지만, 로마의 지배에 저항하는 토착민들의 반란이 이어집니다. <로마의 일인자>의 두 주인공, 마리우스와 술라는 아프리카로 떠나 토벌전을 치룹니다. 여자들 치마폭에 쌓여 놀기만 하던 술라는 전쟁에서 자신의 진짜 재능을 발견하고요. 반란군에 붙었던 이웃나라 보쿠스 왕이 전세가 불리해지자 로마에 평화협정을 제안합니다. 그러자 로마의 지주인 루푸스는 사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에게 전하시오. 로마 원로원과 인민은 악의와 호의를 모두 기억한다. 보쿠스 왕이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인색한 처사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를 용서한다. 그러나 로마 원로원과 인민은 앞으로 보쿠스 왕이 과거의 악의에 상응하는 호의를 베풀 것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그에게서 악의에 상응하는 호의를 받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호의를 베풀어야 할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조건이 없으며 전적으로 그에게 일임한다. 과거의 악의만큼이나 명확한 호의를 보여준다면, 로마 원로원과 인민은 마우레타니아의 보쿠스 왕과 기꺼이 우호동맹 조역을 맺을 것이다."


(124족) 

저는 이게 강자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악의와 호의를 모두 기억하는 것. 상대가 나에게 저지른 잘못을 잊어버리는 건, 상대방에게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내가 부당한 악의에 피해를 입었다면 상대에게 분명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당신이 사과를 한다면 나는 용서할 것이다. 왜? 나는 옹졸한 사람이 아니니까. 하지만 용서에 앞서 나는 호의를 요구한다. 그게 당신이 하는 사과에 진정성을 더하는 길이니까.'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라는 책에서 MBC 내에서 부당한 처사를 겪은 후, 어떻게 내가 싸움에 나섰는지를 적었습니다. 싸움에 나서기 전, 오랜 시간 저는 고민을 했습니다. 나는 정치적인 사람도 아니고, 투사도 아닌데, 굳이 회사 경영진과 싸워야 할까? 어느날 책을 읽다 깨달았어요.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으면 적들은커녕 나 자신도 나를 존중하지 못할 것이고요. 부당한 처사를 당했을 때 마냥 참고 사는 건 절대 답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면 점점 삶은 위축되고요, 약자의 삶에 빠져듭니다. 강자의 조건은, 악의와 호의를 모두 기억하는 것입니다. 



<로마의 일인자> 2권에서는 두 젊은이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는 과정이 그려지는데요. 바로 훗날 로마의 위대한 영웅 카이사르의 부모가 될 두 사람입니다. 젊은 신혼 부부가 결혼과 동시에 마련하는 건 집과 노예들입니다. 

'젊은 가이우스는 집사, 포도주 관리인, 비서, 서기, 시종 등을 고용해야 했다. 아우렐리아는 튼튼한 여자 청소부 두 명, 세탁부 한 명, 요리사와 보조 요리사, 잡일을 할 하인 두 명, 막일꾼 한 명 등 더 많은 하인을 필요로 했다. 이 정도면 어느 모로 보나 과하지 않고 적당한 숫자였다.'


(200쪽)

제레미 리프킨이 1995년에 <노동의 종말>에서 그린 21세기는 어떤 면에서는 유토피아입니다. 산업혁명의 결과 육체노동은 기계가 대신하고, 정보혁명의 결과 정신노동은 컴퓨터가 대신해요. 인류는 로마 시대 귀족들처럼 예술과 철학을 즐기며 살 수 있습니다. 로마 시대 귀족들이 즐길 수 있었던 건 노예들이 생산활동을 대신했기 때문이죠. 21세기에는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노예를 대신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요. 요즘은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청소 로봇을 씁니다. 든든한 기계 이모님들이지요. 저는요, 스마트폰이 집사요, 비서요, 서기요, 시종입니다. 때가 되면, '주인님, 강의 가실 시간입니다. 오늘은 어디에서 강의를 하는데요. 거기까지 가시려면, 열차 예매를 해야 합니다. 기차역까지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온라인으로 해드릴게요. 오실 때 피곤하시면 택시를 부르십시오. 결제수단을 저장한 폰으로 부르시면 목적지까지 편하게 모셔드릴겁니다.' 든든한 스마트폰 비서/집사/서기 덕분에 저는 전국으로 일하러 다니면서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만약 2000년 전에 로마에서 태어났다면, 확률상 로마의 일인자가 되기보다는 청소부, 세탁부, 막일꾼, 하인 중 하나가 되었을 공산이 크지요. 참으로 복받은 시대에 살고 있어요. 우리는 로마 귀족들에 버금가는 생활의 편의를 누리며 살고 있으니까요. 역사소설을 읽으며, 오늘도 저는 감사일기를 쓰게 됩니다. 


21세기의 삶은, 하루하루가 다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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