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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외로움을 즐거움으로 만드는 3가지 방법

by 김민식pd 2023. 1. 20.

유튜브 <꼬꼬독>에서 제 책을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그 원고를 공유합니다.

외로움, 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외로움은 괴로움일까요, 즐거움일까요? 수렵채집을 하던 선조들은 외로움을 괴로움으로 느꼈습니다. 사냥과 열매 채집으로 식량을 구하던 시절, 혼자 사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사는 게 생존에 유리합니다. 내가 사냥에 실패해도 누군가 사냥감을 나눠주면 나는 굶어 죽는 일은 피할 수 있거든요. 다음에 내가 운 좋게 열매를 많이 따오면 나눠줘도 되고요. 외로우면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는 생존을 위한 신호입니다. 얼른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리를 이루라는 신호지요.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쌀농사를 지었습니다. 벼는 민감한 작물이라 가뭄이 오면 말라 죽고요,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홍수 피해로 죽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 물길을 관리해야 합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산업화의 시대를 거쳐왔어요. 일터에서 협업을 통해 생산성을 키웠습니다. 수십 만 년 동안 수렵 채집인으로 살아오며 우리는 외로움을 통증으로 느끼는 방향으로 진화했어요.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우리의 문화는 공동체와 협업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어요. 그러다보니 우리는 외로우면 스트레스를 받고요, 괴롭다고 느낍니다.


문제는 이제 우리가 고령화 시대를 맞이했다는 겁니다. 100세 시대에는 누구나 다 외로워집니다. 오래 살다 보면 혼자 되는 시간이 와요. 외로움을 괴로움으로 느끼며 산다면 마음의 병이 깊어질 수 있고요. 마음의 병은 육체의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외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여러분께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3가지 활동을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는 독서입니다. 지속 가능한 즐거움.

은퇴 후, 즐거움을 추구할 때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입니다. 괴로울 때마다 술을 마신다면 일단 술 사는데 돈이 들고, 건강에 무리가 가죠. 젊어서 일을 할 때는 돈도 벌고, 몸도 튼튼하니 괜찮아요. 은퇴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 돈을 벌기도 어렵고 건강관리도 힘듭니다. 이건 지속 가능한 즐거움이 아니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건 일단 돈이 들지 않아요. 침식을 잊고 독서에 빠져들지만 않는다면 책을 읽는다고 건강을 해치지도 않아요.


퇴직한 후, 저는 매일 동네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어려서 공부할 땐 참고서를 읽고, 직장 다닐 땐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기계발서를 읽었다면, 은퇴 후에는 오로지 재미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재미난 소설이나 가벼운 에세이를 읽고요.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면 과학 교양서를 통해 풀어갈 수 있어요. 내 마음이 왜 힘든지 답을 찾고 싶다면, 심리학이나 철학책을 읽어도 좋구요.


책을 혼자 읽어도 좋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눠도 좋습니다. 저는 한 달에 한번씩 책을 많이 읽는 친구를 만납니다. 한 달 동안 읽은 책 중 가장 인상 깊은 책을 소개하고요. 서로가 추천한 책을 읽고 한 달 뒤에 다시 만나 각자가 느낀 점을 이야기합니다. 책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친구를 만듭니다. 

두 번째는 여행, 궁극의 즐거움


일본의 은퇴 전문가인 호사카 다카시 교수는 ‘혼자 지내는 힘’ 즉 ‘고독력’이야 말로 은퇴 후 충실하게 노후를 살게 하는 힘이라고 강조합니다. 그 힘을 기르는 방법은 여행을 즐기는 것이에요. 여행지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은 자신의 인생을 깊이 있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누구나 혼자서 여행을 해 봐야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어요. 여행을 통한 자아 성찰이 고독력을 키워주고 더 나아가 인간적인 성숙도를 높여 주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양재천 산책로입니다. 집에서 양재천까지 걸어서 15분 거리인데, 강남 한 바퀴 걷기 코스가 있는 매봉산을 타고 갑니다. 매봉역을 지나 양재천까지 간 후, 남부혈액원 뒤 달터근린공원으로 갑니다. 한참을 걷다 보면 구룡산 입구가 나오고 서울 둘레길로 이어집니다. 서울 둘레길을 따라 양재 시민의 숲까지 가고 다시 양재천으로 돌아와 서초구 양재도서관을 찾아가요. 도서관에서 한숨 돌린 후, 바로 옆에 있는 바우뫼 공원을 올라 야트막한 언덕 너머 말죽거리 근린공원까지 걷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양재역 서초구청까지 간 후, 집으로 돌아옵니다. 


걸어서 3시간 넘게 걸리는 코스인데, 중간에 산과 개울과 도서관을 만납니다. 양재천 주위 공원들을 이어붙여 양재천 그랜드 투어라 제가 이름 붙였습니다. 말이 좋아 그랜드 투어지 실은 돈 한 푼 안 쓰고 반나절 걷기 위한 핑계입니다. 전철이나 버스도 안 타고, 오로지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의 산책코스들을 이은 것이죠.


돈 한 푼 안 들이고 숙박비 부담 없이 즐기는 서울 여행, 이름하여 ‘은퇴자의 그랜드 투어’! 이게 무슨 위대한 여행이냐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를 하라는 압박을 이겨내고 하루 무지출 여행에 성공한다면, 그 자체로 위대한 도전 아닐까요? 자전거 타기와 걷기 여행을 통해 지속 가능한 노후의 즐거움을 찾아봅니다.

세 번째는 교제, 확장의 즐거움.


정년퇴직한 어느 선배를 만났는데, 퇴사 후 6개월 사이에 몸무게가 많이 빠져 혹시 어디 아픈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 선배 왈, “실은 우울증으로 불면증이 심하게 와서 제대로 자지를 못해서 그래.” 정년퇴직 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MBC처럼 큰 회사에서 잘 나가던 사람일수록 더 그렇죠. 방송사에서 기자로 일할 때는 취재처에서 받들어주고, 피디로 일하면 제작사에서 모십니다. 퇴사하면 불러주는 이가 없어요. 점심 한 끼를 밖에서 해결하려 해도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20여 년이 지났어요. 아직도 회사에서 일하느라 바쁜 사람이 있고, 저처럼 퇴직하고 좀 한가한 사람도 있습니다. 직장인은 평일 점심에 시간을 내기 힘들고, 은퇴자는 한가합니다. 그래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유랑걸식회’. 회사에서 일하느라 바쁜 친구를 찾아가 함께 점심을 먹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친구가 직장 근처까지 찾아오면 밥 한 끼는 살 수 있지요. 급여통장에 돈이 풍족한 이들이 밥을 사고, 시간이 여유로운 이들이 멀리서 찾아갑니다. 각설이처럼 한 끼 밥을 사주는 이를 찾아 다니는 우리는 ‘유랑걸식회’. 평소 직원들과 회식을 하며 검증한 맛집으로 그날의 주인공이 안내를 합니다. 우린 가서 맛있게 먹고 즐겁게 수다를 떨며, ‘본부장님, 멋지세요!’를 외치기만 하면 됩니다. 밥을 사줄 사람이 없어도 괜찮아요. 그냥 우리끼리 수요미식회를 하는 겁니다.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된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하루를 보내는 거죠.

50년 넘게 살며 학교와 직장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그중 유난히 마음에 끌리는 이들이 있다면 연락을 해서 취미를 함께 하는 모임을 만들어봅니다. 그 과정에서 외로움은 사라지고 즐거움만 남습니다. 노후의 친구는 가족보다 더 소중한 인연입니다. 친구를 사귀고 모임을 하는 것만큼 좋은 노후대비도 없어요.



2020년 명예퇴직을 선택하고, 고독해지기로 결심 했습니다. 퇴사를 선택하고, SNS 앱을 지우고, 블로그도 닫고, 처절하게 외로워졌어요. 고독해지니 비로소 내가 보였어요. 아, 내가 참 불쌍하구나. 사람들이 미워하고 원망하는 나를, 나까지 원망하면 너무 불쌍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나를 챙겨주기로 했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매일 반복했어요.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걷고 싶은 길을 걸었어요.

외로움이 찾아오면, 반갑다고 해주세요. 이제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온 겁니다. 다른 사람 눈치 살피고, 세상의 평가에 휘둘리느라, 나를 잊고 살았는데, 그 내가 나를 찾아온 겁니다. 이젠 나를 좀 돌봐줘.

도서관 저자 특강을 갔더니 누가 물었어요. “사표를 낼 때, 두렵지는 않았나요?” 명예퇴직 소식을 접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이었어요. 정년보다 7년 일찍 은퇴하면 7년간의 휴가를 얻게 된 셈입니다. 읽고 싶은 책도 많고, 걷고 싶은 길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제게, 7년이란 시간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가 기나긴 노후라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시간이 전부 외로움의 시간이라면, 노후가 두렵게 느껴질 수 있어요. 외로움에 대해 공부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기나긴 노후는 어쩌면 하루하루 즐거움의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매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어떤 책을 만나고, 어떤 길을 걷고, 어떤 맛집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까. 두려움보다 설렘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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