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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내가 MBC를 떠난 이유

by 김민식pd 2023. 1. 16.

2012년 MBC 파업 할 때 일입니다. 대학가에서 MBC 파업의 지지를 호소하는 전단지를 나눠드릴 때, 20대 청년이 지나가다 소리를 질렀어요.

“당신들은 그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일은 안 하고 데모만 합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어요. 속으로 저는 생각했지요. ‘피디나 기자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니까 데모를 하지.’ 20대 취업준비생의 눈에는 파업하는 노조원도 기득권으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조선 시대 신분제 사회가 일제 침략과 함께 끝이 났어요. 산업화가 시작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왔어요. 386세대는 운이 좋았어요. 우리의 앞 세대인 산업화 세대에 비해 덜 힘들었어요. 식민지나 전쟁을 겪지도 않았고요. 세계화와 정보화 물결을 타고 한국 경제가 급성장할 때, 달리는 기차에 운 좋게 올라탈 수 있었어요. 시장 만능주의의 시대에 유리한 위치를 먼저 차지한 사람들이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요. 그 희생양은 청년과 여성입니다. 교집합은 젊은 여성이죠. 신문 칼럼으로 욕을 먹을 때 깨달았어요. 젊은 여성 독자의 눈에 제 글은 기득권 중년 남성의 지독한 오만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사람은 언제 잘못을 저지를까요? 세상은 바뀌었는데 세상 살아가는 규범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을 때입니다. 젊은 세대가 요구하는 감수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직장에서는 꼰대가 되고 사회에서는 ‘개저씨’가 됩니다. 칼럼 사태 이후 세상의 변화를 나름 기민하게 따라잡고 있다고 확신했던 제 오만을 자책했어요. 수시로 자책감이 몰려드는 걸 방치하니 마음에 병이 생기는 거 같더군요. 우리 시대 청년들이 기성세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공부하기 위해 30대 저자들이 쓴 책을 찾아 읽었어요. 그때 읽은 책이 《추월의 시대》(김시우 외 5명, 메디치미디어)입니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은 후 한국 사회는 ‘추격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추격자에게는 앞서가는 선발주자가 있지요. 70~80대가 된 산업화 세대에게는 미국이 추격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도 미국처럼 잘 먹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일념으로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50대가 된 민주화 세대는 우리도 유럽처럼 복지국가를 만들자며 유럽을 지향점으로 삼았지요. 

청년 세대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할아버지뻘인 산업화 세대와 아버지 격인 민주화 세대가 맞서 싸우는 형국이에요. 추격의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서로를 적으로 규정합니다. 보수는 진보를 향해 ‘종북좌파 빨갱이’라 손가락질하고 진보는 보수를 일컬어 ‘토착 왜구 독재 잔당’이라 합니다. 냉전이 종식된 지 언제고 독재가 끝난 지 언제인데 젊은 세대가 보기에는 둘 다 시대착오적이죠.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한국은 팬데믹 대처 방역 선진국의 모범을 보였어요. 방탄소년단이나 봉준호, 박찬욱, 윤여정을 비롯해 〈오징어 게임〉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K-컬처는 세계인의 찬사를 받았어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가 아니라 한국인이냐는 질문을 받죠. 2020년을 기점으로 추격의 시대는 저물었고, 이제 추월의 시대입니다. 

추월의 시대에는 롤 모델이 없어요. 베껴 쓸 모범 답안이 없으니 이제 우리 스스로 새로운 답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사표를 쓸까 고민할 때 MBC 후배들을 떠올렸어요. 저는 젊은 조합원들과 긴 투쟁을 함께 했습니다. 2012년의 170일 파업, 2017년의 김장겸 퇴진 투쟁. 그 싸움의 끝에서 깨달은 바가 있어요. 2,30대가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구나.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추고, 건국 이래 최악의 취업 경쟁을 통해 단련된 이들이야말로 새 시대의 주역이로구나. 지금의 젊은 세대는 하나같이 똑똑하고 정의로워서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부족함이 없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모범 답안은 새로운 세대가 내놓을 것입니다. 그걸 알기에 저는 마음 편하게 회사에서 물러날 수 있었어요. 

제게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신 젊은 그대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새 책 <외로움 수업>을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답을 하는 마음으로 쓴 책입니다. 

이제 저는 공부하는 사람으로 노후를 보내렵니다.

저의 <외로움 수업>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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