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쉰 다섯에 저는 방학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니 방학 때면 장기 여행을 떠날 수 있거든요. 겨울방학이 오면 어디를 갈까, 여행 사이트를 다니며 계속 알아봤어요. 제주항공에서 나온 방콕 왕복 41만원짜리 표가 있네요. 요즘 항공권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국내선 제주도 왕복도 20만원이 훌쩍 넘어갑니다. 베트남 다낭보다 더 먼데, 가격은 더 싸네요. 비행시간은 5시간 30분이고요. 방콕은 가성비가 좋은 여행지입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다니지 못해 아쉬울 때,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대리만족을 했어요. 그때 <아무튼 방콕> (김병운 지음)을 읽었습니다.
'여행지를 선택할 때 나는 가성비를 중시한다. 한번 여행을 다녀오려면 어찌 되었든 적지 않은 돈이 드니 신중해지기 마련이고, 이런저런 것들을 따지고 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비용 고효율’ 필터를 꺼내 들지 않을 수 없다. 내 예산 안에서 최선의 목적지는 어디일지, 과연 내가 들이는 돈 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만족을 안겨줄 수 있는 곳은 어디일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거르고 추리다 보면, 나는 어김없이 방콕을 떠올린다. 나 같은 사람에게, 가성비를 따지는 방콕 여행 유경험자에게, 여행의 기준은 언제나 당연히 방콕일 테니까.
나는 여태껏 방콕만큼 가성비가 뛰어난 효율 1등급의 여행지는 보지 못했고, 따라서 새로운 여행지를 탐색하고 선택할 때는 방콕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방콕은 수년째 왕좌를 사수하며 역대급의 승률을 자랑하는 왕중왕 같다. 매번 다른 도전자들이, 이를테면 시애틀과 포틀랜드와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전자들이 여럿 등장해 각기 다른 매력을 어필하면서 방콕을 위협하지만, 방콕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맞아요, 가성비를 중시하는 짠돌이 여행자인 제게도 방콕은 늘 선호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목적지예요. 베트남 다낭도 만족도나 가성비 면에서 최상이었거든요? 문득 두 여행지를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제일 좋은 방법은 직접 가서 겪어보고 비교하는 거죠.
2022년 12월에 다녀온 방콕의 풍경.
태국은 저의 최애 여행지 중 하나예요. 2000년에 혼자 2주간 태국 배낭여행을 떠나 방콕, 치앙마이, 코사모이를 다녀온 적이 있고요. <뉴논스톱> 촬영할 때 포상 휴가로 제작진 전부 파타야로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어요. 2013년인가 온 가족이 방콕에 가서 송크란 축제 (길에서 서로 물총을 쏘며 노는...)를 즐긴 적도 있고요. 매번 만족감을 준 여행지기에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찾아가야지, 싶었어요. 그런 제게 결정타를 날린 책의 한 구절.
'나는 맞은편에서 독서 중인 애인에게 자, 들어봐, 하면서 방금 쓴 것을 읽는다. 『아무튼, 방콕』 원고 작업을 위한 메모다.
나 : 방콕은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화려한 광경과 소박한 풍경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는 도시이므로, 관광객과 현지인 들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낸 기이한 활력과 생동감으로 가득한 도시이므로 어디에 눈을 두어도 풍성하고 다채롭다. 동네마다 소문난 레스토랑과 감각적인 카페와 개성 있는 로컬 브랜드 상점이 넘쳐나고, 그 모든 것을 놓치지 말라는 당부처럼 택시, 버스, 지하철, 지상철, 수상 보트 등 각종 교통수단이 밤낮없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누빈다.
애인 : 에세이라며.
나 : 응, 에세이지.
애인 : 그건 가이드북 같은데.
잠시 후, 나는 다시 한 번 자, 들어봐, 하면서 새로 쓴 것을 읽는다.
나 : 방콕은 휴양과 관광, 양쪽에 발을 하나씩 담그고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이다. 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뭐라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에게는, 휴양인 듯하면서도 관광 같고 관광인 것 같으면서도 휴양 같은 그런 변칙적인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방콕만큼 딱 들어맞는 맞춤형 여행지가 또 있을까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만족스럽고 무엇을 하더라도 즐거운 곳은, 휴양이 지겨워지면 관광을, 관광이 버거워지면 휴양을 선택해도 무방한 곳은, 그날 날씨나 기분, 컨디션에 따라 언제든 휴양에서 관광으로, 다시 관광에서 휴양으로 여행 모드를 변경해도 괜찮은 곳은 아직 내 미천한 경험 안에서는 방콕뿐이다.'
태국 관광청 소개책자도 이보다 잘 쓰기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김병운 작가님의 영업에 넘어가 다시 방콕을 찾았습니다.
방콕 배낭여행기, 본편은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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