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보면, 여배우가 묻는다. '어쩜 감독님은 그렇게 자기 인생 이야기를 영화로 하세요?' 극중 감독 왈, '그럼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인생 이야기를 할까요?'
영화도 그렇고, 블로그도 그렇다. 무언가 이야기할 때는 내가 가장 잘 아는 것, 나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답이다. '내 인생이 뭐그리 대단하다고 그걸 고시랑 고시랑 블로그에서 이야기하나?'라고 반문하신다면, 되묻고 싶다. '과연 대단한 삶만 기록 가치가 있을까요?'
홀로코스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몇가지 중 하나는 '안네의 일기'다. 안네가 유명해진 이유가 그녀 홀로 홀로코스트를 겪었기 때문일까? 홀로코스트로 죽어간 사람은 수십만명이다. 그들 하나하나가 다 비극적인 삶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건 안네 프랑크 뿐이다.
다락방에 갇혀지내는 하루 하루, 쓸게 뭐 그리 많았을까? 그렇지 않았음에도 안네는 매일 매일 썼다. 안네의 일상이 비범한게 아니라 그 기록이 비범하다.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홀로코스트의 비극은 잊혀질 수 있어도, 매일 매일 일기를 써내려갔던 소녀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기록의 힘은 현실을 압도한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나의 평범한 삶을 어떻게 맛깔나게 이야기하는가, 그게 글쓰기를 훈련하는 방법이다. 더 멋진 삶을 살기 전에는 굳이 내 삶을 기록할 필요를 못느낀다고 우기는 건, 정말 죽이는 소재가 떠오르기 전에는 대본을 쓸 수 없다고 우기는 작가와 똑같다. 미안하지만 그런 자세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시나리오 못 쓴다. 왜? 모든 비범한 이야기는 평범한 소재에서 출발하니까.
어느 드라마 작가가 말했듯이, 대본이란 평범한 이야기 95%에 새로운 요소 5%를 가미한 것이다. 그래야 대중에게 와닿는다. 주인공이나 이야기가 너무 비범하면 재미없다. 몰입에 방해를 받을 뿐이다. 내 얘기 같아야 몰입한다. 블로그 역시 마찬가지다.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 재미있다. 쉽게 공감 가능하니까.
비범한 삶을 꿈꾸기보다, 비범한 기록을 꿈꾼다. 매일 매일 평생을 기록할 수 있다면, 더이상 평범한 기록은 아닐 것이다. 불멸의 삶으로 가는 길, 블로그 안에 있다.
(초대장 나눠드린 블로그마다 가정 방문 다니고 있어요. 빈 집을 보고 생각 난 잔소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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