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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전설의 고향, 크노소스 궁전

by 김민식pd 2022. 7. 20.

크레타섬 2일차 여행기입니다.

크레타섬은 제주도의 4배 정도 되는 큰 섬입니다. 제가 머무는 숙소는 헤로소니쏘스라는 동네구요. 가족 휴양지와 호텔이 많은 곳입니다. 영어로 Hersonissos, 이름이 어렵지요? 저는 이렇게 철자가 복잡한 단어는 나눠서 외웁니다. Hersonissos, Her son is sos. 그녀의 아들은 SOS 구급신호다. 뜻은 상관없어요. 이렇게 쓰면 기억하기 쉽습니다. ^^

배를 타고 아테네에서 오면 크레타의 항구 도시 이라클리온에 도착하는데요. 이라클리온에서 묵는 것보다는 25킬로미터 떨어진 헤르소니쏘스에서 방을 잡는 편을 권합니다. 비유하자면 이라클리온은 제주시고요, 헤르소니쏘스는 협재해변이에요. 바닷가 휴양을 원하시는 분은 이곳에 방을 잡는 게 더 좋아요. 

새벽에 일어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습니다. 성격이 급한 조르바에게 주인공이 핀잔을 주자 조르바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나는 말이오, 머리 꼭대기에 벌써 허연 서리가 내렸소, 대장. 이도 흔들리고요. 허비할 시간이 없어요. 당신은 젊어요. 그래서 아직 침착할 수가 있는 거요. 난 그럴 수가 없다오. 해서,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사나워지오! 그 어느 누구도 나한테 사람이 늙으면 침착해진다는 소리 따윈 못 하게 말이오! 저승사자한테 목을 쭉 빼 주면서 ‘제발 내 목 좀 잘라 줘요. 천국 좀 가게요!’ 하는 등신 같은 짓도 안 하오. 나는 더 살수록 더 저항하오! 굴복하지 않소. 세상을 정복하고 싶으니까요!”

조르바의 일갈에 갑자기 정신이 번뜩듭니다. '허비할 시간이 없다. 어서 길을 떠나자! 고대 미노스의 미로같은 왕궁으로! 위대한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

숙소에서 간단히 조식을 해결하고... (숙박비 54,000원에 조식 포함.)

이라클리온으로 버스를 타고 갑니다. 오른쪽에 앉으시면, 창밖으로 에게해의 아침 풍광을 볼 수 있어요. 헤르소니쏘스에서 이라클리오 버스 터미널까지 버스 요금, 3유로. 터미널에서 크노소스 가는 버스 요금, 1.5유로.

크노소스 궁전으로 갑니다. 입장료가 15유로입니다. 나중에 후회했어요. 저 아래에 보이는 20유로 짜리 패키지 티켓을 살 걸! 어차피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도 함께 봐야 하거든요. 

크노소스 궁전입니다. 

크노소스는 크레타 섬에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청동기 시대 유적지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불립니다. 직접 보면 그 규모에 놀랍니다.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2000~1500년께까지 가장 크게 번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중심에 크노소스 궁전(The Place of Knossos)이 있습니다.

원래 미노아 문명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에 등장하는 전설 속 이야기에 불과했어요.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가 크노소스 궁지를 발굴하면서 실제 역사로 증명되기 시작했습니다. 가로세로 길이가 160~170m에 이르는 거대한 궁전인데요. 중앙정원을 중심으로 1000개가 넘는 방이 배치된 정방형 구조인데 설계가 워낙 복잡해 라비린토스(Labyrinth), 즉 미궁의 궁전이란 별칭도 가지고 있습니다.

발굴 당시 대량으로 발견된 로마 동전에 미노타우루스와 라비린토스(미궁), 미노스 왕이 그려져 있었대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우루스의 미궁 이야기는 이 궁전에서 영감을 얻은 게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왕의 방이라고 불리는 곳.

방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저렇게 줄을 지어 문 앞에서 들여다봅니다.

방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아쉬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래 방을 장식한 벽화는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중이니 그곳에서 자세히 볼 수 있어요.

크레타 섬은 땅이 넓고 기후가 좋아 기름, 포도주, 양털과 같은 물자가 풍부했어요. 남아도는 산물을 해외로 내다 팔았고요. 그 과정에서 해상 무역이 발달합니다. 헤로도토스는 전설에 나오는 크노소스의 왕 미노스가 해상 제국을 건설했다고 썼어요. 투키디데스는 미노스 왕이 해적을 평정했으며 무역 흐름을 증대하고 에게 해의 많은 섬을 식민지로 삼았다고 기록합니다.

흥미로운 건 하수도 시스템이었어요. 상수도와 하수도가 문명의 핵심이거든요. 

이렇게 경사진 수로가 있고요.

근처의 수원지에서 궁전으로 물을 끌어다 썼다고 나와요.

근처에서 발굴된 흙으로 빚은 파이프를 보면... 한쪽은 입구나 넓고 한쪽은 좁습니다. 계속 연결할 수 있지요. 물은 넓은 입구에서 좁은 출구로 흐르면서 수압이 거세집니다. 청동기 시대에 도자기 파이프로 이 정도 상수도 시스템을 만들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의 분수)

몇년 전, 온 가족이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궁전 곳곳에 샘솟는 분수의 풍경이 아름다웠는데요.

바닥에서 물이 퐁퐁 솟는 걸 보고 어린 민서가 재미있어 했어요. 물을 다스리는 치수의 기술이 정말 대단하네요. 그 옛날 아랍 국가들의 과학 기술이 놀라웠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알함브라 궁전은 스페인 남부를 다스리던 이슬람 세력이 건설한 곳이죠. 사막의 유목민에게 낙원은 사시사철 물이 샘솟는 곳이었어요. 

그들은 궁전을 지을 때, 분수를 곳곳에 배치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수도꼭지를 열면 물이 쏟아지는 지금 우리는 낙원에서 살고 있어요. 

<비잔틴 제국의 최후>라는 책을 보면요. 무슬림들이 장기 원정을 갈 때, 낙타를 끌고 가고요. 물이 떨어지면 낙타를 잡아 위장 속의 물을 마셨다고요. 갑자기 내 손에 쥔 생수가 무척 귀하게 느껴집니다.

다시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으로 돌아올게요. 청동기 시대 유적인데요. 이렇게 계단도 많고요. 건물의 높이가 상당합니다. 

미노타우로스 전설을 보면, 반은 사람이고 반은 황소인 괴물이 미궁에 살고 있었어요. 아테네에서 공물로 바친 소년 소녀들이 황소의 제물이 되었지요. 말인즉 그 옛날에는 크레타가 아테네보다 권력의 우위에 있었던 겁니다. 황소는 크노소스에서 발견되는 도기와 프레스코화에 자주 나타나는 주제인데요. 나중에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 가보면 확인할 수 있어요. 

영웅 테세우스가 제물을 자처해 크레타로 오지요. 테세우스에게 반한 공주 아리아드네가 다이달로스를 찾아갑니다. 다이달로스는 실 뭉치 하나를 주고 미로를 탈출하는 법을 알려주지요.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루스를 죽인 뒤 아리아드네와 함께 달아나자 분노한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를 아들과 함께 탑에 가둡니다. 아버지와 밀납으로 깃털을 붙여 만든 날개를 달고 탈출하던 이카로스는 태양 가까이 높이 올랐다가 바다로 떨어지죠.

크노소스 궁전에서 현지 가이드들이 이런 이야기를 신나게 합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듣던 이야기를 그 신화의 무대에 직접 와서 들으니 얼마나 흥미진진하겠어요. 저 가이드들의 이야기 소재는 고대의 작가들이 만들어준 거예요. 이곳에서도 부지런한 선조들이 후손을 먹여살립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작가는 누군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지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의 상상력이 더해진 결과니까. 하지만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는 누군지 알 수 있지요.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입니다. 다음에는 이 매력적인 작가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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