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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수호신에게 바친 감사의 선물, 파르테논 신전

by 김민식pd 2022. 7. 11.

그리스 아테네 여행기 2편입니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을 뒤로 하고 언덕을 오르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분주해집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은 그리스를 찾는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유적지입니다. 이날도 전세계 각국에서 온 투어객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소개하는 가이드들의 목소리 사이로 한국어가 들려왔어요. 남자 가이드분이 디오니소스 극장을 소개하며 감개무량한 톤으로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는데요. 이곳 디오니소스 극장은 비극의 탄생지입니다. 연극을 올리고, 수만명의 관중이 모여 함께 극을 즐긴 곳이지요. 제 전공의 역사가 처음 시작된 곳이라 여기에 올 때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오홀! 어쩐지 멋진 한국 가이드님, 체격도 좋고 목소리 톤도 좋더라니, 연기 전공하신 분이군요. 배우란 몸과 목을 쓰는 직업이거든요.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 유리하죠. 예전에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투어는 미술사 전공하신 분의 가이드로 돌아봤는데요. 그때도 참 좋았거든요. 이제 유럽 현지 한국인 투어도 다시 재개된 것 같아 반가웠어요. 

아크로폴리스를 오르는 등 뒤로 아테네 시내 전경이 보입니다. 

정상에 오르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곳은 에레크테이온 신전입니다. 기원전 421년에서 406년 사이에 아테네 여신상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신전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이 도시가 생길 때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도시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섰어요. 둘 다 양보할 생각이 없어 시민들이 투표로 수호신을 결정하게 되었는데요.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땅을 쳐서 올리브나무를 자라게 해 시민들에게 선물했고, 포세이돈은 멋진 전쟁용 말을 선물했습니다. 시민들은 지혜와 올리브나무를 선택했고, 아테나 여신의 이름을 따라 도시 이름을 아테네로 지었다고요. 

여신을 모시는 신전이라 그럴까요? 신전을 호위하는 조각도 여인의 상입니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기둥 장식은 유명한데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가면 진품을 더 가까이에서 직접 관람할 수 있어요.   

2500년 전,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략했을 때, 마라톤 평원에서의 전투, 그리고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전투에서 연이어 승리함으로써 아테네는 제국의 유럽 진출을 막아냅니다. 아테네 여신의 가호 덕에 이겼다고 생각한 이들이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을 공들여 지었어요.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정상에서 본 파르테논 신전. 왼쪽이 파르테논 신전이고 오른쪽 작은 건물이 에레크테이온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을 보고,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어요. 이런 크기의 석조 건축물을 기원전 432년에 만들었다고?

2500년 전에 세워졌음에도, 건축물의 가로 세로가 황금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건축학적 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처음 보면, 일단 그 스케일에 놀라고요.

가까이서 뜯어보면 그 섬세한 디테일에 또 놀랍니다. 기둥이나 지붕의 처마 장식이 다 예술품이에요. 예전에 대영박물관에서 파르테논 갤러리를 보고 감탄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천재 조각가로 불린 페이디아스의 감독 아래 15년에 걸쳐 조각가, 석공들을 총동원해 만들었다고요. 

<소피의 세계>라는 철학 입문서가 있어요. 서양 철학은 고대의 아테네에서 시작되었어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이들이 그 시조지요. 그들의 철학이 궁금해 <소피의 세계>를 펼쳤더니, 마침 아크로폴리스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아크로폴리스란다. 이 말은 ‘성채’나 ‘언덕 위의 도시’를 뜻하지. 이 언덕 위에는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단다. 그건 물론 이곳의 특수한 지리와도 관계가 있어. 이 고원지대는 적을 방어하기 쉬웠단다. 아테네가 이 고지대 아래 평지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갈 때, 아크로폴리스는 요새와 신전 터로 이용되었지. 기원전 5세기 초반, 페르시아인들과 끔찍한 전쟁이 있었단다. 기원전 480년에는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가 아테네를 약탈하고, 아크로폴리스의 옛 목조 건축물들을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었어.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그 이듬해에 페르시아 병사들을 무찌르고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열었지.

그리고 아크로폴리스를 다시 지었단다.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당당하고 아름답게 말이야. 그리고 그때부터 이곳은 순전히 신전만 있는 성역이 되었지. 바로 이 시기에 소크라테스가 거리와 장터를 돌아다니며 아테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어. 그런 가운데서 그는 아크로폴리스의 재건과 모든 자랑스러운 건물들이 세워지는 것을 지켜봤어. 바로 이곳이 그 건축 현장이었지! 내 등 뒤로 가장 큰 신전이 보이지! 이걸 파르테논 신전 또는 ‘처녀의 집’이라고 불렀단다. 아테네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을 숭배하기 위해 세운 신전이란다. 대리석으로 지은 이 큰 건축물의 윤곽선은 직선이 아니고 조금 휘어져서 더욱 생동감을 주지. 그래서 이 신전은 엄청나게 크지만 둔중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데 이건 착시 때문이야. 약간 안으로 휘어진 사방의 모든 기둥을 곧게 펴 한 점에서 만나게 하면, 1,500미터 높이의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단다. 신전 안에는 12미터 높이의 아테나 여신상이 있었어. 이것은 16킬로미터쯤 떨어진 산에서 가져온 흰 대리석에 여러 가지 선명한 색을 칠한 것이라고 해…….”'

<소피의 세계 : 소설로 읽는 철학> (요슈타인 가아더 저,장영은 역)

90년대 말, 통역대학원 재학 시절 <소피의 세계>를 원서로 읽은 적이 있어요. 우리가 평소 이야기를 할 때, 유식한 척 하려면, 공자님 말씀 맹자님 말씀을 동원하지요. 미국 연사들은 자신의 논조를 강조하고자 할 때,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을 인용했어요. 그 시절, 서양 철학을 좀 더 쉽게 공부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읽은 책인데요. 아크로폴리스 한쪽 나무 그늘에 앉아 이 대목을 읽고 있자니 감개무량했어요. 

아, 옛날에 책에서 본 그 공간에 직접 찾아왔구나... 어려서 독서광은 나이 들어 여행광이 됩니다. 책에서 본 세상을 직접 보고 싶거든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무대를 찾아 떠나는, 중년 백수의 그리스 인문학 기행.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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