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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다낭 배낭 여행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찾아서

by 김민식pd 2022. 7. 25.

크레타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그리스인 조르바> 책을 들고 가셔도 좋아요.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오스만 제국 치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거든요. 아테네 대학교에서는 법학을 공부한 후, 파리 유학 시절 베르그송과 니체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그 니체 말입니다. 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총리 비서실에서 복무하기도 했어요. 1917년 고향 크레타 섬에 돌아와 후에 <그리스인 조르바>의 실존 인물인 조르바와 함께 갈탄 채굴 및 벌목 사업을 했어요. 훗날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되죠.

소설에는 주인공이 크노소스 궁전을 찾아간 장면이 나옵니다. 

'소도시의 폐허가 내 눈에 들어왔을 때 나는 잠시 홀린 듯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정오 가까이 되었을까. 햇빛이 수직으로 쏟아져 내리며 빛으로 바위를 씻어 내고 있었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는 위험한 시각이다. 대기는 망령의 함성과 소란으로 가득하다. 나뭇가지가 부러져도, 도마뱀이 달려 나가도, 지나는 길 위로 구름이 그림자를 던져도 알 수 없는 공포가 우리를 사로잡는다. 어디를 밟든 무덤이어서 그 아래 망자의 신음이 들려온다.'

<그리스인 조르바 - 열린책들 세계문학 0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어디를 밟든 무덤이어서 그 아래 망자의 신음이 들려온다.' 라는 글이 나옵니다. 가장 최근의 무덤은 어쩌면 발굴자 아서 에번스의 것인지 몰라요. 책은 1946년에 나왔고요. 에번스는 1941년 코노소스 발굴 현장에서 실족사하고 일생을 바쳐 복원해낸 크노소스 궁전 근처에 묻힙니다. 유적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시멘트로 복원을 추진하거나 벽화를 새로 덧칠한 대목에서 에번스는 후대의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크레타 섬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의 발상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고 관광객들의 발길을 맞을 수 있었어요.

소설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천천히 내 눈은 밝은 빛에 길들었다. 이제 폐허 속에서 인간의 손이 남긴 흔적을 분간할 수 있었다. 반짝이는 돌로 포장한 두 개의 넓은 길이 보였다. 왼쪽과 오른쪽은 꾸불꾸불 좁은 오솔길이었다. 가운데엔 광장 혹은 공중 집회소가 있었고, 지극히 민주주의적인 겸양의 의미로 바로 그 광장 옆에 왕궁이 두 줄의 열주(列柱), 거대한 석조 계단, 수많은 부속 건물과 더불어 서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 포석들이 인간의 발길로 심히 닳은 것으로 보아 거기에 성소(聖所)가 있었으리라. 거기에 위대한 여신이 있었다. 터질 듯한 젖가슴을 좌우로 넓게 벌리고, 양팔에는 뱀을 두른 모습으로 말이다.'

 

크레타에서 산책하다 보면, 크노소스 궁전 벽화의 테마를 흔히 만납니다. 

'거기에는 위대한 여신이 있었다. 터질 듯한 젖가슴을 좌우로 넓게 벌리고, 양팔에는 뱀을 두른 모습으로 말이다.'

바로 이 그림을 뜻합니다.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는 여신의 조각상도 있어요.

이 여신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청동기 시대의 크레타 섬은 농경과 목축으로 부를 쌓았습니다. 농사를 짓고 양떼를 몰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수풀 속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뱀이 아니었을까요? 뱀이 두려워 나가지 못한다면, 양을 돌볼 수도, 밭을 개간할 수도 없겠지요. 여신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뱀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 나는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자연을 정복해가는 과정이 인류의 문명 발달사입니다. 자연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있어요. 그 두려움을 극복한 어떤 주인공을 이야기로 그려내고, 그를 숭배하는 과정에서 우리도 닮아가려 한 거죠. 

크노소스 궁전은 1900년에 발굴되었고요. 이제 막 세상에 드러낸 고대의 유적을 돌아보고 1940년대의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소설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도처에 조그만 가게, 기름집, 대장간, 목공소, 도자기 공방이 보였다. 교묘하게 설계되고 안전한 위치에 잘 세운 개미탑이었지만 그 개미탑의 주인들은 수천 년 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한곳에서는 장인(匠人)이 무늬가 있는 돌로 항아리를 쪼았으나 완성할 시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장인의 손에서 떨어진 정은 수천 년 뒤에 미완성 작품 옆에 놓인 채로 발견되었다.

영원한 의문, 허망하고 어리석은 질문(왜? 무엇 하러?)이 가슴에 독소처럼 와 닿았다. 장인의 행복하고 자신감 넘치던 열정이 한순간에 꺾여 버린 미완성 항아리를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비탄으로 차올랐다.'

고대의 유적을 보면, 인간의 삶이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애를 써서 위대한 건축물을 쌓아올리지만, 폐허가 되어 수천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도 않는 장소가 되기도 하니까요. 사람은 결국 한 치 앞으로 내다보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평생 죽지 않을 것처럼 무언가를 모으고 쌓으며 살아가죠.

이제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갑니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을 찾아가는데요. 안내판이 없어 많이 헤맸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고, 그의 책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크레타섬을 찾는 관광객도 많을텐데, 정작 작가의 무덤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그 유명한 묘비명도 그리스어에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미리 검색해서 무덤의 사진을 보지 않았다면 여긴줄 몰랐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유명한 작가는 왜 이렇게 고향에서 푸대접을 받을까요?

말 그대로 그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거든요. 그가 쓴 책을 두고 그리스 정교회는 신성 모독이라며 책의 판매를 금지하라고 국가에 요청했습니다. 1957년 작가가 유럽 여행 중 폐렴으로 사망했을 때, 이곳 크레타 섬에서 장례식을 했는데요. 신도들이 그날 작가의 책을 불태우며 시위를 했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미끼를 써도 낚을 수 없는 고기죠. 어떤 수로 설득하겠습니까. 당대에 미움을 받았고 후손들에게도 푸대접을 받는 이유, 자유인으로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인 조르바>를 읽다보면 신에 대한 불경한 생각까지 거침없이 토로하는 조르바를 볼 수 있어요. 신앙을 모독하는 게 저자의 의도는 아니었을 거예요. 단지 그 어떤 기준으로부터든 자유롭고 싶었던 거죠.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미움을 살 각오를 하고서도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이제 저는 허기를 채우러 갑니다. 베니젤루 광장에서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 가는 길에,

<데일리 메뉴 : 그릭 샐러드 + 수블라키 = 9.5유로>라는 가성비 갑 문구를 보고 들어왔는데요.

식당 미노스, 운치 있는 곳이네요. 

빵과 그릭 샐러드가 먼저 나오고요. 

제가 좋아하는 수블라키, 돼지고기 꼬치 구이도 나옵니다. 
샐러드가 6, 수블라키가 9유로니 합해서 9.5면 가성비가 좋은 메뉴네요. 
여기에 콜라 2.5유로를 더해 총 12유로가 나왔어요. 

아침은 호텔 조식이었으니, 점심은 거하게 먹습니다. 오후에는 박물관을 둘러봐야 하거든요.

점심을 먹으며,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습니다.

조르바는 거침없이 싸우고, 거침없이 사랑을 나누고, 거침없이 살다 갑니다. 작가는 소설을 쓰며, 조르바의 삶을 동경했나봐요. 그래서 그 역시 거침없이 글을 써내려간 게 아니었을까. 그리스 정교회의 나라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지만, 신앙과 불화하다 간 사람... 어쩌면 사후의 푸대접도 작가는 괘념치 않을 것 같아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은 사람이니까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 나의 마음은 어쩌면 뱀의 여신상을 그리는 사람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많아요. 그런 내가 책에서 두려움이 없는 사람,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을 만나 그를 동경합니다. 독자는 책을 읽어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지요. 다만 꿈꿀 뿐입니다.

자유를 찾아가는 그리스 여행기, 다음편에는 다시 아테네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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