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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사람을 이렇게 울리다니

by 김민식pd 2022. 4. 5.

한겨레 신문의 '책&생각' 섹션을 즐겨 읽습니다. 눈밝은 이들의 리뷰를 통해 읽고 싶은 책을 찾는 거죠.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코너에서 한미화 선생님이 쓰신 글을 보고 찾아읽은 책입니다.

<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 (존 D. 앤더슨 지음, 윤여림 옮김 / 미래인)

세 명의 초등학교 6학년 단짝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담임인 빅스비 선생님을 좋아해요. 서커스에서 어릿광대로 일하기도 하는 빅스비 선생님은 좀 엉뚱한 면이 있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분입니다. 그런데 췌장암 진단을 받고 마지막 학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휴직을 합니다. 반 아이들과 작별 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병세가 악화되어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3명의 친구는 선생님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 자신들만의 파티를 열기로 합니다.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용을 찾아 떠난 호빗들의 모험 뺨칠 정도로 험난한 여정이 이어집니다. 초등학생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수업을 땡땡이치고 시내를 활보하는 것부터 쉽지는 않아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아이템들이 있는데요. 어떤 건 너무 비싸고(특제 치즈케이크), 어떤 건 아예 구할 수 없어요. (미성년자 구매 불가품인 주류) 하지만 모두 빅스비 선생님의 송별연에는 필요한 물건들이죠. 

술과 케익을 구하는 과정이 한편의 모험서사극처럼 펼쳐집니다. 아, 용과의 싸움, 거인족과의 결투보다 더 힘겨워보이네요. 왜 남자 아이 셋은 입원한 담임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이런 모험을 펼치는 걸까요?

초등학생 주인공은 선생님의 유형을 여섯가지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좀비 유형. 

'이 선생님들은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부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학교에 있는 분들이다. 박물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빗자루 같은 콧수염이 나 있고, 목소리가 단조로우며 말도 웅얼거린다. 그리고 항상 한 팔에 문제지를 두둑이 들고 다닌다. 이 문제지들은 배움의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앗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좀비 선생님들의 수업은 원래 재미가 없기 때문에 앗아갈 즐거움도 없다. 이런 유형의 선생님들은 우리 뇌를 파먹진 않지만, 딱히 뇌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두 번째는 카페인 중독자 유형.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내기에 수업을 이해하기 힘든 타입.

세 번째는 던전 마스터(교도관) 유형. 교내 체벌의 부활을 꿈꾸며 빨간색 경고장을 남발하는 이들. 아이들이 얌전히 앉아 입 다물고 있기를 강요하는 타입.

네 번째, 스필버그 유형.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멋져서가 아니라 수업 시간에 항상 영화를 틀어줘서. 

다섯 번째는 주인공이 가장 선호하는 유형. 바로 신참.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서 아이들이 정답을 말하면 서커스단 물개처럼 박수를 친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꽤 빨리 지쳐 나가떨어진다. 그런 이유가 학생들 때문은 아니다. 시스템 탓이다.

'마지막 유형은 우리가 흔히 부르는 좋은 선생님이다. 이분들은 학교라는 고문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유형이다. 우리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단번에 알 수 있다. 학년이 바뀌어도 찾아가서 인사하고 싶고, 실망시키지 않고 싶은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다.'

(16쪽 정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과 마지막 송별연을 하기 위해서는 모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죠.

 

학교라는 고문을 견디게 해주는 선생님이 필요해요.

오늘의 질문 : 힘든 삶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저도 어려서 학교가 고문처럼 느껴졌어요. 고교 시절, 자퇴하겠다고 했다가 아버지에게 엄청 혼난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괴롭힌다고 학교를 안 가? 선생이 학교 가는 건 쉬울 것 같냐? 선생도 교감이 하도 괴롭혀서 학교 때려치우고 싶은 사람 많아. (아버지 직업이 교사...^^) 그래도 참고 다닌다. 왜? 그게 인생이니까.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니까! 학교 생활이 힘들다고 학교를 때려치우면, 나중에 돈 버는 건 더 힘들텐데, 그때도 때려 치울래?"

네, 자퇴를 하지는 못했죠. 하지만 나중에 스물 여섯에 첫 직장은 그만 뒀습니다. 10대 시절엔 부모님에게 종속된 삶이었고, 20대에는 경제적 자유가 있었으니까요. 힘든 삶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죄송하지만, 여기엔 공통의 정답이 없어요. 그냥 각자 견디는 방법을 찾는 거지요. 학교를 참고 다니는 것도 답이 아니고, 그렇다고 그만 두는 것도 답은 아니고...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상황이 다르니까요. 중요한 건 믿음이 아닐까요? '언젠가는 이 고난도 끝날 것이다. 그리고 그 고난의 끝에서 나는 답을 찾을 것이다'라는 믿음.

제주 여행 갈 때 들고간 책인데요. 공항에서 마지막 대목을 읽다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어요. 공항에 앉아 초등학생용 책을 읽다 우는 아재는 좀... 이 책은 가급적 집에서 혼자 읽으세요. 

책을 소개해주신 한미화 선생님의 글로 소개를 마칩니다.

'빅스비 선생은 결국 서른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단언컨대 아이들은 평생 선생을 기억할 테다. 혼자 무거운 삶의 짐과 맞서고 있던 브랜든을 눈이 쌓인 거리에서 발견해주었고, 토퍼가 그리고 버린 그림을 주워 ‘꿈의 파일’을 만들어주었고, 성적을 따지러 온 스티브의 아빠에게 ‘아드님은 성장하고 있는 우수한 학생’이라고 말해주었으니까. 아이들은 배웠다. “살아가면서 문득 돌아볼 수 있는 날들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날들은 마치 카네이션 꽃 같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우리와 오래도록 함께 한다”는 걸 말이다. 그런 마지막 순간을 선생에게 만들어주려고 길을 떠난 거다.'

(기사 원문은 아래에...)

https://m.hani.co.kr/arti/culture/book/1034432.html#cb

 

선생님을 위한 송별회

[한겨레Book]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 존 D. 앤더슨 지음, 윤여림 옮김 l 미래인(2019)&nbs...

www.hani.co.kr

어린이 책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좋구요.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책입니다.

오늘도 힘든 일상을 잘 견디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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