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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책

by 김민식pd 2021. 11. 24.

2021년의 새로운 만남

매년 3만권 이상의 새로운 책들이 나오는데요. 그중 무엇을 읽을 것인가? 항상 고민입니다. 이럴 땐 눈밝은 저자들이 추천해주는 책을 읽습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발간하는 <체널 예스>는 제가 즐겨 읽는 잡지입니다. 중고서점에 갈 때마다 무료잡지를 집어옵니다. (공짜를 좋아하는 짠돌이 본색!) 제가 좋아하는 장강명 작가님의 에세이도 있고요. 또 정아은 작가님의 책 소개 연재도 있어요. 

2015년에 정아은 작가님의 소설<잠실동 사람들>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재미난 소설을 한 권 읽고 있다.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 그 중, 과외 교사 김승필이 지환이 엄마 박수정에게, 아이가 영어에 흥미를 갖는 법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이 있다. 영어 스쿨에서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라 옮겨본다.

"아이들은, 아니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겠죠, 사람은 일단 재미있다고 느끼면 그다음부터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지환이와 수업할 때 지환이가 '공부한다'고 느끼기보다는 저와 '논다'고 느끼게 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한국말로 뜻을 설명하라? 그런 거 안 시킵니다. 단어 외워라? 그런 것도 안 시키죠. 오로지 듣고 따라 하기만, 그것도 게임을 하면서 저절로 하게 합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섀도잉, 그러니까 들으면서 동시에 따라 하기를 시키죠. 그렇게 하다 보면 해석이랑 스피킹은 저절로 다 해결됩니다."

잘 쓴 소설은 이렇게 사람을 감탄하게 한다. 과외 교사가 아이 엄마에게 점수 따려고 하는 말인데 영어 학습법의 이치로 보아도 딱딱 들어맞는다. '소설가가 어떻게 이렇게 영어 학습법에 대해 잘 알지?' 신기해서 작가의 프로필을 봤더니 영어영문과 나와서 외국계 회사에서 통번역 일을 했다. 어쩐지... ^^ (참고로 경향신문 2015 올해의 책에 선정된 걸 보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정말 재미있다, 강추! 요즘은 영어 잘 하는 사람이 소설도 잘 쓰는 세상... 참. ^^)

https://free2world.tistory.com/889

 

나의 사부님을 소개합니다.

재미난 소설을 한 권 읽고 있다.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 그 중, 과외 교사 김승필이 지환이 엄마 박수정에게, 아이가 영어에 흥미를 갖는 법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이 있다. 영어 스쿨에서

free2world.tistory.com

 

<잠실동 사람들>을 읽다 사부님인 한민근 선생님이 떠올라 쓴 글입니다. 소설이 재미있어 정아은 작가님의 글은 빼놓지 않고 읽어요.

(그러고보니, 정아은 작가님의 신작,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도 빨리 읽어야하는뎅!)

채널 예스 연재 칼럼 '<정아은의 인생책>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책'. 공감이 팍팍 됩니다. 맞아요. 인생 책은요. 나이가 들어 다시 읽어도 또 좋아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거든요. 2021년 1월호에 마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소개글이 나와요.

http://ch.yes24.com/Article/View/43741

 

[정아은의 인생책]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책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YES24 채널예스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스칼렛 오하라가 되어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눈치 보지 않고. 죄책감 느끼지 않고. (2021.01.05)

ch.yes24.com

 

'이 작품을 처음 읽던 십대 때는 온통 레트 버틀러만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남자가! 잘 생기고, 능력 있고, 시대상황을 꿰뚫는 지성에, 섬세한 감성까지. 이성에 대해 한창 관심이 일던 때, 현실 속 또래 남자애들이 모두 여드름 송송 난 철딱서니로 보이던 때, 레트 버틀러는 십대 소녀의 허황된 환상과 허영심을 원 없이 채워주었다. (...)

작품을 두 번째 읽던 이십 대 때,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대학을 마치고 막 사회에 나가 ‘다소곳하면서도 섹시하고, 조신하면서도 애교가 넘쳐야 한다’는 정언명령을 받던 때였다. 어디에서나 환대 받았지만, 한 편으로는 무시 받는 것 같은 이중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나라는 인간을 외모와 젊음으로만 보고 한 명의 온전한 성인으로 대해주지 않는 데서 오는 소외감이라는 것을 몰랐던 때이므로, 나는 도대체 이 사회가 나를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감을 잡지 못했다. 어떨 땐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왜 어떨 땐 엄청나게 무시하는 것 같지? 그런 시기에 스칼렛이라는 강인한 여성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었다. 강하고, 일관되고, 자기 이익과 관련된 것 외에는 시선 한 번 주지 않는 ‘깡다구’가 굉장해보였다. 내게 쏟아지는 사회적 압력,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차를 대접하라거나, 기분을 살펴주라거나, 친절하게 웃어주라는 압력이 가장 강했던 때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며 사는 여성의 모습을 보며 받았던 쾌감. 만족감. 그것은 문학작품을 통한 대리만족이었다.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스칼렛 오하라가 되어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눈치 보지 않고. 죄책감 느끼지 않고.

책을 세 번째로 펼쳤던 삼십 대 때, 이 기나긴 장편소설이 ‘역사’소설이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남북전쟁과 흑인노예제도가 그제야 의식에 들어왔던 것이다. 첫 두 번의 독서에서 전쟁과 목화밭에서 일하는 흑인들의 모습을 읽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십대와 이십 대의 내 젊은 뇌리에서 그런 시대배경들은 모두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라는 화려한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장식하는 희미한 안개꽃으로 뭉뚱그려졌다. 시대배경이나 공간묘사가 나오는 부분은 건너뛰면서 읽거나, 읽더라도 빠르게 스캔하며 읽었고, 읽으면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서른이라는 고개를 넘어가면서, 사회에서 혹독하게 시달리며 일하고, 아이 둘을 낳아 헉헉대며 키우고, 그 과정에서 정치와 경제와 역사라는 분과가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며 살아가는 내 삶과 구체적인 연관성을 갖게 되자, 무심하게 지나갔던 전쟁 장면과 당시 남북의 경제상황, 노예로 살아야 했던 흑인들의 풍경이 의미를 갖고 다가왔다.'

캬아아!

저도 그랬어요. 20대에 영어 공부삼아 원서를 읽을 때는 레트 버틀러와 스칼렛 오하라의 대사 위주로 읽었어요. 그래야 회화 공부에 도움이 되거든요. 30대에 피디가 되어 다시 읽을 때는 영화와 소설을 비교하며 읽었어요. 드라마 연출 연습하는 기분으로. 40대에는 전쟁에 패배한 남부 문명이 어떤 길을 걷는가, 그 속에서 개인의 선택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며 읽었어요. 개인의 삶이 세상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과정이 와닿았거든요.

문득 50대에 퇴직자가 된 내가 이 책을 읽으면 이번엔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다시 찾아읽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다음편에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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