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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리뷰 제작 과정을 공개합니다

by 김민식pd 2020. 9. 25.

소시지와 법률 법안은 만드는 과정을 공개하면 안 된다고 하지요. 저의 경우, 블로그 초고를 공개하면 안 됩니다. 글을 못 쓰는 제가 그나마 오랜 시간 끊임없이 고치고 고치면서 근근히 봐줄 만한 글을 내거든요. 어쩌다 초고 상태의 글이 발행되면, 그날은 하루 종일 머리를 쥐어뜯고 자다가도 이불을 걷어찹니다.

요즘은 매일 책 리뷰를 올립니다. 여행도 못가고, 극장 나들이를 못해 영화 리뷰도 못 올리니... 매일 독서일기를 쓰는 사람이, 어떻게 글을 쓰는가, 오늘은 그 과정을 공개해보렵니다. (자다가 또 이불킥? ^^)

1. 책을 읽으며, 휴대폰에 메모를 한다.

책을 읽다 좋은 글을 만나면, 휴대폰 메모장을 열고 페이지 쪽수를 적고 간단한 메모를 합니다. 이를테면 장강명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를 읽으며 생성한 메모는 다음과 같아요.   

책 이게 뭐라고

11
나는 영업사원 출신 작가라 이런 고충이 없다
출판사 관계자님들 불러 주세요 굽신굽신

19
이거 내 이야기인듯 ^^
맞다 쑥먁이니까 혼잣말하듯 블로그만 하고 정작 저녁 약속은 안 잡는다

21
책을 언제 어디서 읽느냐

34
어쩐지

54
예의와 윤리

64

83
트레바리의 매력

100
책을 씁시다

156
이게 핵심!

159
그래서 바로 주문
이북

198
꼬꼬독 할 때 참고할 태도

283
다시 읽어도 참 멋진 장강명의 인생항로

301
독서를 어떻게 할까

여러분이 보면, 뭐야, 암호야? 싶겠지만, 나름 글감이 떠오를 단서를 적어두는 겁니다. 중간에 쑥맥을 쑥먁이라고 썼네요. 전철에 서서 한 손으로 메모를 쓰다보니... 오타지만 오늘만큼은 있는 그대로 보여드릴게요. 두꺼운 책은 집에 두고 책상에 앉아 읽고 가볍고 얇은 책은 들고 다니면서 짬짬이 읽어요. 이 책은 가지고 다니며 읽었어요.

2. 메모를 추리며 글감을 찾는다.

보통 책 한 권을 읽으면 5개에서 10개 사이, 메모가 나옵니다. 가끔 1개나 3개밖에 메모가 안 나오는 책도 있는데요. 그런 책은 패스합니다. 글감이 부족한 책으로 억지로 리뷰를 쥐어짜면, 변비 걸린 사람이 화장실에 앉아 끙끙거리듯 그냥 괴롭기만 하거든요. (아름답지 못한 비유, 죄송합니다. 오늘은 뭐, 그냥... ^^)

메모를 3개 정도 고르는데요. 기준은 1. 그 책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문단. 2. 그 책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 글귀 3. 글을 읽고 과거의 경험이 떠오르는 글입니다. 이중 제게 중요한 건 3번입니다. 

2010년에 블로그를 처음 열었을 때 책 리뷰는 잘 올리지 않았어요. 가장 친절한 리뷰는 온라인 서점에 올린 출판사 서평이거든요. 그것보다 더 잘 설명할 자신이 없었어요. 가장 잘 쓴 리뷰는 유명 저자나 서평가들이 올리는 추천의 글이고요. 그것보다 더 잘 쓸 자신도 없었어요. 책을 소개하는 좋은 글은 이미 남들이 다 썼네? 하고 안 썼지요. 문제는, 그렇게 하니까, 책을 읽고도 남는 게 없더라고요.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리뷰를 쓰는 건데 말이죠. 그래서 책을 읽고 떠오른 나만의 이야기로 리뷰를 시작했어요. 이제는 나의 리뷰에 존재 이유가 생겨요.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니까요. 내가 안 쓰면 세상에 없는 글이니까요. 

3. 글의 흐름을 구성한다.

3개 정도 책에서 인용할 구절을 찾으면, 이제 구성을 해야 합니다. 서론, 본론, 결론. 저의 경우, 책을 읽고 떠오른 나의 경험담이 시작하는 글이고요. 책에서 배운 내용이 본론이 되고,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결론이 됩니다. 5~10개의 메모에서 3개를 고를 때, 이 흐름을 염두에 두고 뽑습니다. 시작하는 글, 본론, 마지막 메시지로 어울리는 글. 이렇게 책에서 3개의 문단을 추리는 거죠. 

이렇게 하면 리뷰의 틀은 잡힙니다. 3개의 글을 중심으로 마음껏 쓰고요. 수정을 하며, 글을 수정하고 줄입니다. 제가 말이 많은 편이라, 글이 길어지기 쉽습니다. 글을 줄이는 게 제일 큰 작업입니다.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 arte)

제가 장강명 작가의 덕후라는 건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겁니다. 당장 이 블로그의 검색난에 장강명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작가가 언급된 41편의 글이 나옵니다. ^^ 다른 작가님들에겐 죄송하지만, 뭐, 어쩔 수 없어요. 애정이라는 게 공평하게 나눠지는 게 아니라...

새로 나온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행복했어요. '아, 역시 장강명이야!' 읽고 쓰는 기쁨에 대해 이보다 아름다운 언어로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문제는, 책을 다 읽고 났더니, 메모가 위의 상태... 13개의 글을 골랐는데, 리뷰를 쓰려고 보니,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는 글이라... 사실은 책 전체가 다 그냥... 아우...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머리를 쥐어싸고 앉아 이를 어떻게 하나 하다가... 오늘은 이런 고민에 대해 글을 올려보자... 했어요.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대목을 딱 하나만 고르라면? 아래 글을 뽑으렵니다.

'요즘 나는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를 상상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포털 뉴스 댓글이나 인터넷 게시판, 소셜미디어가 아니라 단행본으로 만들어 이야기하는 사회. 정치와 언론과 교육 아래 사유가 있는 사회. 책이 명품도 팬시상품도 아닌 곳. 아직은 엉성한 공상이고, 현실성에 대해서는 차마 말을 꺼내기도 부끄럽다. 

다만 그런 사회를 만들려면 지금보다 저자가 훨씬 더 많아져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래서 '책 한번 써봅시다'라는 제목의 에세이 겸 작법서를 준비 중이다. 저자들에게 자극을 주려면 독자들의 서평 운동도 있어야 할 것 같다.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을 쓰면서 거기에 거창하게 '독자들의 문예운동'이라는 말을 만들어 붙였다. 

책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독서 토론도 많이 열려야 한다. '전문가'의 고전 강독을 듣는 모임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다룬 책을 매개로 참가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여는 자리여야 한다. 온라인 독서 토론도 나쁘지 않지만 오프라인 모임이 더 좋다. 그런 모임이 지역 공동체 네트워크와 결합하면 좋겠다. 아니, 그런 모임이 바로 지역 공동체 네트워크의 중심축이 되는 풍경을 상상한다.'

(101쪽)

책을 읽어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기를 소망합니다. 독자가 저자가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책 이게 뭐라고>를 읽고, 서평도 계속 써야겠다고 주먹 불끈 쥐었어요. 책에 대한 본격 리뷰는 다음 편에 이어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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