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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진정성의 시대

by 김민식pd 2020. 9. 24.

1997년 MBC 신입사원이던 시절, <인기가요 베스트 50> 조연출로 일했어요. 그해 여름, 캐리비안 베이에서 특집 방송을 하는데, 그날의 1위는 박진영의 <그녀는 예뻤다>. 소속사에서 3주 연속 1위를 한 기념으로 제작진에게 밥을 샀습니다. 연출 선배가 앉은 테이블에 나랑 조연출 선배랑 박진영, 넷이 앉아 저녁을 먹었죠. 그때 선배가 나를 가리키며 "이 친구가 작년에 막 MBC 입사한 신입 피디야." 했더니 박진영이 나를 보고 물었어요. "피디 시험은 어떻게 보는 거예요? 저도 장래 희망이 프로듀서거든요." 진지한 그의 표정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다 말렸습니다. '피디는 밤에 잠도 잘 못자고, 주말에 편집하느라 연애도 못한다. 그냥 가수가 최고다. 뭐하러 피디를 하느냐'. 나중에 알았어요. 그가 말한 피디는 노래를 만들고, 가수를 키워내는 음반 프로듀서였다는 걸. 요즘 TV에 출연하는 박진영을 보면, 23년 전 MBC 신입 피디이던 저를 붙들고 '피디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하고 묻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 저 사람이야말로 진짜 프로듀서지.' 신인이 가수로 성공하려면 먼저 인성부터 길러야한다는 박진영의 어록이 화제지요. 최재붕 교수님의 새 책에서 그 이야기를 만났어요.

<체인지 9 : 포노 사피엔스 코드> (최재붕)

박진영은 신인에게 '진실, 성실, 겸허'라는 세 가지 덕목을 강조합니다.

'진실하다는 것은 무언가 숨기고 조심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가수가 되면 카메라 앞에서 조심해야 한다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의 삶이 드러난다고 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 하는 겁니다.

성실하다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매일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것이죠. 그것이 쌓여 꿈을 이루게 됩니다.

겸허란 행동의 겸허함이 아니라 마음의 겸허함입니다. 자신의 단점을 진심으로 깨닫고 다른 이의 단점을 보기보다 장점을 보고 배우려는 마음가짐입니다.'

(322쪽)

문명을 읽는 공학자, 최재붕 교수가 작년에 <포노 사피엔스>라는 책을 냈을 때만 해도, '그렇지, 이제는 스마트폰을 쓰는 인류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지.' 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 스마트폰 문명의 약진은 거의 혁명적입니다. 앞으로 언택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포노 사피엔스의 문화를 이해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시대에 필요한 경쟁력을 최재붕 교수는 9가지 포노 사피엔스 코드로 정의합니다.

'메타인지 -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알면 한계가 사라진다.

이매지네이션 - 생각의 크기가 현실의 크기를 만든다.

휴머니티 - 자기 존중감은 모든 사람의 권리다.

다양성 - 다른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 모든 부는 디지털 공간으로 모인다

회복탄력성 - 냉정한 낙관주의자의 길을 간다

실력 - 데이터가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증명한다

팬덤 - 가장 큰 권력의 지지를 받다

진정성 - 누구나 볼 수 있는 투명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 9가지 코드 중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아홉 가지 포노 사피엔스 코드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진정성'이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지난 책 <포노 사피엔스>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의예지'라고 생각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인).

당당하게 의로운 마음으로 무장하고 (의)

모든 이에게 예를 갖추되 (예)

늘 생각하고 공부하며 지혜롭게 (지) 살아가는 것.'

(319쪽)

박진영은 나이 스물에 유명 가수가 되어 험난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어요. 어린 시절 가수로 경험하는 인기는 마약과 같아서 이후 삶이 순탄하기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30년을 꾸준히 일관적인 자세로 살아오다 이제 나이 40대 후반에 본받을 만한 멋진 인생을 살게 된 거죠.

최재붕 교수는 스마트폰 문명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유튜브는 크리에이터에게 조회 수에 따라 돈을 지급합니다. 팬덤의 가치를 금전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죠. 이것이 성공의 절대적 핵심요인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취향의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모여 작은 팬덤을 만들어내고 거기서 돈까지 벌 수 있도록 해준 것이죠. (...) 엄청난 자본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약간의 재능과 뜨거운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 어떤 제한도 없습니다.

경쟁은 공정합니다. 많은 팬덤을 만들어내는 자가 많이 가져갑니다. 혈연, 학연, 지연, 자본, 돈 많은 부모, 어느 것도 도움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사람만이 성공합니다. 이것이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가장 기본이 되는 룰입니다. 멋지지 않나요?'

(176쪽)

유튜브 초창기에는 자극적인 영상으로 사람의 눈길을 끄는 영상도 있었어요. 조회수는 늘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어요.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꾸준함으로 무장한 사람들, 진정성을 지닌 사람들이었어요. 박진영 같은 크리에이터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진정성을 강력하게 구축해야 합니다. 모든 생활에서 일관성이 있어야해요. 모든 족적이 데이터로 남는 시대에 일관성의 부재는 훗날 족쇄가 됩니다. 그래서 미디어를 시작하는 첫 단계는 철학의 정립이라 생각해요. 나만의 철학이 있어야 하고요. 그걸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합니다. 

9가지 코드를 살펴보다 느꼈어요. 이건 스마트폰과 함께 새로 생긴 규범이 아니에요. 오래된 규범이 새로운 문명을 만나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어요. 

진정성으로 승부하는 삶,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은 다시 시작됩니다.

책과 함께, 늘 새로운 질문을 찾는 삶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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