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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세상을 사는 두 가지 자세

by 김민식pd 2020. 9. 16.

소유보다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사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사고 싶은 건 최대한 자제하며 삽니다. 다양한 일에 도전하며 살 거예요. 뜻대로 안 되는 경우도 많겠지요. 그것도 괜찮아요. 경험이니까.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이길보라 / 문학동네)

'고등학생 때였나. 한 언니가 물었다.

"너는 부모님이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항상 자신감이 넘쳐? 왜 다 해보는 거야 무작정?"

답은 단순했다. 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했던 것뿐이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다 해봤다.'

(7쪽)

저자는 코다에요. CODA Children of Deaf Adults. 하나하나 직접 몸으로 겪어내며 답을 찾아가는 삶은 청각장애인인 부모님에게 배운 것이랍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부모님과 살면서 저자는 남들이 해보지 못할 경험을 어려서부터 합니다.

'나는 침묵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 사이에서 말을 옮겼다. 그건 "이건 얼마예요?" "여기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등의 간단한 통역일 때도 있었고, 부모 대신 수화기를 들고 "저, 그 집 전세가 얼마인지 알고 싶은데요. 제가 전세랑 월세, 보증금 개념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같이, 여덟 살에게는 제법 복잡하고 어려운 통역이기도 했다.'

(14쪽)

자식을 위한다는 마음에 부모가 자식을 대신해서 모든 걸 해주는 사람도 있어요. 그 결과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만들어지기도 해요. 저자는 어려서부터 자기효능감이 높은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부모님을 대신해 많은 것을 해내야 했거든요. 열일곱 살 무렵, 세상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며 저자에게 장래 희망이 생겨요. NGO 활동가 혹은 다큐멘터리 PD가 되어 세상에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래요. 방송사 피디가 되려면 스카이, 소위 명문대를 가야한다고. 내신 관리 잘하고 수능 준비해 대학 간 후, 학점 관리 착실히 해서 '언론고시'를 치러야 한다고. 저자는 그 말이 납득이 가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냥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는 건데 그 일을 방송사에 입사해야만 할 수 있을까? 지금 그냥 사람을 만나 영상부터 찍으면 안 될까?

'그래서 학교를 잠시 쉬고 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더 큰 세상을 만나기 위한 8개월간의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이 그 프로젝트의 이름이었다. (...) 

8개월간의 여행을 마친 후 나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 밖에서의 배움을 지속하기로 했다. 

나는 학교 밖에서의 배움을 <로드스쿨러>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로드스쿨러는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학습 공간을 넘나들며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고 교류하고 연대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21쪽)

와, 이 대목 읽으면서 전율! 이게 제가 나이 50에 얻은 깨달음이거든요.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반드시 방송사 피디여야 할까? 회사에서 내게 드라마 연출을 맡겨야 할까? 그냥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되는 거 아냐? 그런데 이런 생각을 나이 열여덟에 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나와 10대에 이미 영화 감독이 되는 사람이 있다니, 이분이 나의 스승이로구나! 

이 멋진 저자를 유튜브 채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독>에 모셨어요.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깨달았습니다. 세상을 사는데는 두 가지 자세가 있어요.

'나는 ~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

'나는 ~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

평소 이길보라 감독의 한겨레신문 칼럼에서도 많이 배웠는데요. 영상을 보시면 인생을 멋지게 즐기는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길보라 감독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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