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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하여

by 김민식pd 2020. 10. 5.

회사생활과 가정생활, 둘 중 무엇이 더 힘들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상사 때문에 괴로우면 그만두거나 들이받으면 그만인데, 집에서 부모/배우자/자녀 때문에 받는 괴로움에는 끝이 없거든요. 물론 책을 보면 끝을 맺으려 노력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며느리 사표>를 쓴 영주 작가가 그렇죠. 바쁜 남편의 부재와 무관심 속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살던 작가가 결혼 23년 차, 명절을 이틀 앞둔 어느 날 시부모님께 "며느리를 그만두겠습니다" 말하고 '며느리 사표'라고 쓴 봉투를 내밉니다. 그 과정을 책으로 내고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어요. 이번에 그 다음 이야기를 내셨습니다.

<결혼 뒤에 오는 것들> (영주/푸른숲)

저자가 시가와 아파트 위아래층에 살 때, 시아버지가 아무 때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바람에 속옷 차림으로 있다가 당황한 적이 여러 번이래요. 당시 시부모님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터라, "초인종을 눌러주세요."라는 말을 못해, 어느 날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었대요. 불같이 화가 난 시아버지는 아들 부부에게 그러죠.
"내가 돈 한 푼 없는 노인네였으면 (서러워서) 자살했을 게다.“
친하다고 상대방의 영역을 마구 침범하는 건, 예의가 아니에요. 이제는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무조건 참고 사는 건 100세 시대에 답이 아니에요. 참고 참아서 시부모님이 90에 돌아가시면 내 나이 60입니다. 이미 좋은 날은 다 지나갔는데 뭘 합니까. 수십 년을 참고 살면 병나요. 이런 상황에서는 남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중간에서 통역사가 되어야 해요. 수시로 아들과 손주가 보고 싶은 아버지의 입장도 이해하고, 사생활을 존중받고  싶은 아내의 입장도 이해하면서 가운데에서 서로의 욕구를 통역해주는 거죠.

‘결혼하면 부부는 배우자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배우자는 선택할 수 있지만 새로 맺는 시가/처가는 선택이 불가능하다. 양쪽 집안의 의견도 제각각이다. (...) 이때 함께 살아온 부모, 연애하며 잘 알고 이해하게 된 배우자 사이에 통역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부모와 무엇보다 사랑하는 배우자 사이를 연결해주는 일이다.’


(119쪽)

그러니까, 고부 갈등이 있을 때, 아들이 입장이 난처하다고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약자인 며느리만 가운데서 죽어나요. 아들이 가운데서 중재를 해야 하고요. 100세 시대에는 아내/엄마/며느리 등 가족 내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먼저 충실해야 합니다. 가족 사이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경계가 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 명절을 맞이한 가족끼리도 지켜줘야 해요.

결혼생활에서 가장 큰 시련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배우자의 외도 아닐까요?
저자도 그 큰 고난을 겪습니다. 남편의 연이은 외도로 신뢰가 깨어지고, 충격을 받아요.


'남편의 외도 사건은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문제의 원인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에게는 가장 아픈 상처였기 때문에 들여다보는 일 자체가 괴로웠다. 이 일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계기는 <며느리 사표>를 쓰면서였다. 이 책은 나의 결혼 생활에 대한 기록으로, 다시는 나 자신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더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고 그 세월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분노와 후회, 상처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졌다. 울분이 가라앉고 분노가 탄식으로 바뀌며 상처가 아물어갔다.'

(134쪽)

저자는 남편 외도로 인한 상처를 글쓰기로 풀어냅니다. 외도는 어느 날 한 순간, 내가 피해자가 되는 경험입니다. 나는 길을 잘 가고 있는데, 냅다 옆에서 달리던 차가 인도에 뛰어들어 나를 치는 거죠. 이해가 가지 않죠.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길까? 글을 쓰는 건, 이런 피해자의 사연을 이제 내가 주인공이 되는 서사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글을 쓰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나의 욕구는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요, 이는 다시 누구의 아들, 아빠, 며느리, 아내,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망치고 있는 누군가에게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시작점이 되기도 하는데요.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나의 주체성을 찾으면 남편과 자녀에게 의존하며 상처받는 것도 피할 수 있거든요.

글쓰기를 통해 진짜 나를 집중해서 들여다본 작가는 그제야 모든 고통은 일차적으로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요.

'기본적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삶은 온전히 스스로 끌어가고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나는 온 존재를 남편에게 내맡긴 채 가만있었고, 남편은 그 모든 부담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했다. 결혼 초반에는 부부 갈등의 원인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했다. '최선을 다하는 나는 옳고, 이기적으로 사는 당신은 틀렸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남편은 공격하고 쪼아대는 나의 태도를 피해 집 밖에서 위안을 얻으려 했는지 모른다.'

(135쪽)



저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모든 일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공존한다고 해요. 남편의 외도는 충격이었지만, 그 덕분에 시가에서 분가할 수 있었거든요. 애도해야 할 사건에서 저자는 축하할 일을 찾아봅니다.

'분가는 없다'는 남편의 강경한 태도에 외도라는 변수가 들이닥치면서 협상할 여지가 생겼다. 평생을 한 집에서 살리라 여긴 시부모에게도 이 카드를 빌미로 겨우 허락을 받아냈다. 사실상 외도는 시가로부터 빠져나오는 축하의 메시지였다.
또 다른 축하도 있었다. 남편에게 더는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고히 깨달았다. 그 당시에는 애도할 일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사건이 내가 스스로 주인으로 살아가는 시발점이 되어주었다.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도 여전히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로서 나약하게 안주하려고만 했을 것이다. 두 번의 외도는 더는 남편에게 기댈 수 없음을 명백하게 인식시켜주었다.‘

(208쪽)

아픈 이야기를 글로 쓰며, 고난과 시련 속에도 축하할 일이 있음을 찾아내는 작가님 덕분에, 책을 읽으며 위안을 얻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환상이 '나만 잘하면 된다'는 다짐을 낳고, 사회로부터 주입된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조언이 좋은 며느리,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제는 이 모든 환상들을 깨부수고, 더는 잘못된 결혼으로 고통받지 말고, 나를 울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사표를 던져야 할 때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경상도에서 평생 교사로 일하며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와,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통역사로 일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진취적인 아내 사이에서 오래도록 힘들었습니다. 명절이 오는 게 두려웠어요. 명절 기간 동안 쌓인 상처 때문에 서로 다투는 일이 많았거든요. 추석에 가족 모임을 하지 않고 차례를 지내지않은지 벌써 10년입니다. 매년 추석마다 아버지를 모시고 단 둘이 여행을 다니고요, 아내는 아이들과 친정에서 명절을 보냅니다. 효도는 셀프입니다. 각자 자신의 부모만 챙겨도 된다고 생각해요.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고통과 시련이 있었어요. 명절이 더 이상 고통의 시간이 아니기를 소망합니다.

명절 뒤에 오는 고민, <결혼 뒤에 오는 것들>을 읽으며 풀어보시기 바랍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이 상처받지 않는 한가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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