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면 항상 물어봅니다. “그래서 요즘은 뭐가 재밌어요?” 이 질문 하나로, 상대에겐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고요. 저는 몰랐던 재미를 발견할 기회를 얻습니다. 우연히 시작한 취미, 최근에 가 본 모임, 재미나게 본 영화나 책. 들어보고 마음이 동하면 저도 한번 시도해봅니다.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내 것으로 카피하는 거죠. 해보고 재밌으면 다음에 만나 그럽니다. “와, 진짜 재밌던 걸요? 감사의 인사로 오늘 밥은 제가 살게요.”
같이 드라마를 준비하는 작가와 대본 회의를 하다 물어봤죠. 
“최근 읽은 책 중 제일 재미난 게 뭐에요?” 
“<폐후의 귀환>이요.” 
“네? 그런 책도 있어요?” 
나름 재미있다고 소문난 책은 다 꿰고 있는데, 그 책은 금시초문이었어요. 
“서점에서 못 본 것 같은데?” 
“그 책은 서점에는 없어요. 전자책으로만 나와 있어요.” 
“저자가 누군데요?” 
“천산다객이요.” 
“어? 무협지 작가 이름 같은데?” 
“맞아요, 무협지랑 비슷한데 사극 로맨스 장르물이에요. 정말 재밌어요.”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철에서 검색해봤어요. 마침 1권이 무료 서비스 중이더군요. 전철에서 바로 다운로드 받아 읽기 시작했어요. 전자책은 이게 좋아요. 그 자리에서 바로 읽을 수 있어요. 

<폐후의 귀환> (천산다객)

소설의 첫머리에 황제의 부인인 황후 앞에 내시가 하얀 비단을 들고 나타납니다.
“이걸 목에 매고 자결하라고?”
기가 막힙니다. 어린 나이에 시집 와, 남편을 황제로 만들고, 태자까지 낳았는데, 이 인간이 배신을 때려요. 첩을 얻어서는 본부인을 폐위시켜 폐후로 만들고, 후실을 황후로 등극시킵니다. 그런 다음 첩에게 얻은 아들을 태자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역모 죄로 몰아 죽이려 해요. 오래전에 낳은 공주는 이미 목숨을 잃었고요. 갑자기 설움이 복받칩니다.
선대 황제에게 아홉 왕자가 있었어요. 그중 막내 왕자가 외모가 출장한 꽃미남이었어요. 대장군의 딸, 심묘는 꽃미남 왕자에게 반했어요. 왕궁으로 시집보내 달라고 아버지를 조릅니다. 대장군인 아버지는 반대합니다. 아홉 명의 왕자들 사이에서 왕위 계승 싸움이 벌어질 텐데, 병권을 쥔 대장군이 개입하면, 괜히 화를 입을 수 있거든요. 딸이 평범한 선비와 결혼해 집안의 평화를 지켜주기를 바라는데요. 사랑에 목을 맨 딸은 고집을 꺾지 않고, 집을 나가버려요. 결국 결혼을 허락하고요. 이제 꽃미남 막내 왕자가 무장 가문인 대장군의 사위가 되어 권력투쟁에서 승승장구하고 끝내 형들을 물리치고 황제가 됩니다. 
황제가 된 남편은 이제 안면을 바꿉니다. 외척의 힘이 강해지는 걸 경계한다는 이유로 대장군에게 병권을 빼앗습니다. 불만을 품은 대장군에게 반역을 꾀했다며 가문을 몰살시켜요. 그런 다음 황후를 폐위시키고, 태자에게 역모 죄를 뒤집어씌웁니다. 폐후에게는 비단끈을 하사합니다. 목을 매고 자결하라는 소리지요. 
황제가 그럽니다.

“짐을 20년 동안 따른 정을 봐서 네가 온전한 시체로 남을 수 있도록 허락하마. 짐의 은혜에 감사하거라.”
“페하는 심가의 병권을 이용해 황위 다툼의 저울추를 자신에게 기울이려 하셨을 뿐이지 않습니까? 토사구팽이라더니. 강산이 안정되었다고 이런 배은망덕이 있을 수 있습니까. 폐하, 정말 흉악하십니다!”
황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나갑니다. 내시가 직접 황후의 목을 조르기 시작합니다. 

‘최후의 순간, 그녀는 두 눈을 크게 치켜뜨면서 소리 없이 독하게 맹세했다.
아들, 딸, 부모, 형제, 하인. 전부 억울하게 죽었다.
황제와 후궁과 간신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해쳤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그들의 피로 이 억울한 한을 씻으리라.
태양은 지지 않는다지만, 내 반드시 너희의 빛을 꺼뜨려 버리리라!’

한스럽게 죽음을 당해 눈을 감는 폐후, 다시 눈을 떠보니 어릴 적 몸종이 자신을 조심스레 살펴봅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오래 전, 죽음을 당한 여종이 다시 나타나 말을 거는 걸 보니, 여기는 저승인가 봐요.

“죽기 전 환각인가 본데, 너무 사실 같은걸.”“아가씨, 무슨 말씀이세요? 연못에 빠져서 정신을 잃으셔서 의원을 불렀습니다.”

생각해보니 열다섯 나이에 연못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어요. 환각이라기에 감각이 너무 생생해서 거울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거울을 보니 그 속에 열다섯 어린 시절의 내가 있어요. 

20년 간, 황후로 살며 온갖 권력 다툼을 겪은 폐후가 죽음의 순간, 20년 전으로 타임리프해서 환생합니다. 이제 결심합니다. 다시 한 번 사는 인생, 이번에는 제대로 살아주겠어. 꽃미남 왕자에게 홀리지 않고, 내 가족을 지켜내겠어. 그리고 왕자에게 복수할 거야!

여기까지 읽었을 때, 1권 227쪽 중 겨우 20쪽이었어요. 서점에 들어가 보니 외전 포함 총 15권까지 나온 세트고요. 무협지나 로맨스물의 경우, 외전이 나왔다는 건 흥행에 성공했다는 얘기입니다. 재미없으면 시리즈가 빨리 끝나고, 작가는 얼른 다른 이야기를 기획하지요. 다 끝난 작품에 외전까지 만들었다는 건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지요. 1권 중간까지 읽고는 바로 인터넷 서점에서 시리즈 전체를 구매했어요. 한동안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전자책은 휴대폰으로 읽을 수 있으니, 내가 가는 곳이 바로 만화방이 됩니다. 네, 어린 시절에 저는 만화방에서 무협지를 즐겨 읽었거든요.

독서의 양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면, 재미난 책을 읽는 습관입니다. 물론 인문교양서나 고전을 읽는 것도 좋지요. 하지만 몸에 좋은 보양식이나 건강 식단만 고집하면 식욕이 떨어집니다. 가끔 군것질도 하고 길거리 음식도 먹어야 해요. 책도 편식하면 안 됩니다. 너무 어려운 책만 읽지 말고, 재미로 읽는 책도 있어야 해요. 저는 대여섯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데요. 흥미진진한 로맨스 소설이나 추리 소설을 항상 목록에 넣어둡니다. 교양서적을 읽다 재미가 없으면, 스마트폰을 들어 SNS를 하거나 게임을 하는데요. 저는 그럴 때 재미난 책을 펼쳐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읽습니다.

<폐후의 귀환>,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열다섯 어린 소녀인데, 그 머릿속에는 서른다섯 살까지 궁궐에서 암투를 겪은 황후가 있다면? 심지어 앞으로 20년 동안 나라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다 아는 사람이라면?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초능력 슈퍼히어로가 되는 거지요. 저는 책을 읽는 것도 남의 능력을 내 것으로 흡수하는 초능력이라 생각합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경험과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사는 건 판타지에서만 가능하지요. 저는 미래의 나를 소환하고 싶어요. 나이 90이 넘어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할 노인 김민식을 내 앞에 소환합니다. 그리고 물어봐요.
“제가 당신에게 건강한 몸과 시간을 드린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90세가 된 김민식이 내게 바라는 그 일을 나는 오늘 할 겁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아보려고요. 
재미난 책 한 권을 읽는 것만큼 확실한 행복도 없습니다.

https://youtu.be/9b37Nzvw8Z8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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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늘은혜 2020.09.09 07: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몇일 밤을 새며 여고생이었던 때로 돌아간듯 행복했습니다~~^^

  2. 섭섭이짱 2020.09.09 0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웹소설 장르라니.... 한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을거 같아
    아예 눈낄도 안주고 있던 분야인데 ㅋㅋㅋ

    드라마 작가와 피디님이 같이 추천해주시니
    이거이거 고민고민입니다 ^^
    우선 1권이 무료이니 함 읽어는 봐야겠어요

    그럼 웹소설에 한번 빠져 봅쎄다~~~~

  3. 달빛마리 2020.09.09 0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여러 권을 동시에 보는편이에요. 그럼에도 이런 스타일은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

    그나저나 마지막 문단, 정말 멋져요 피디님. 잊혀질 때마다 두고 두고 생각하려고 캡춰합니다! 오늘도 글 감사해요.

  4. 보리랑 2020.09.09 0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90까지 사신다는거죠?
    그때까지 오래오래 우리들의 우정이 지속되길요

    요즘은 오프라인 독서모임 3개 못하고 있어 온라인으로 2개 팠어요. 하나는 경기도남부, 하나는 미국과 한국내 지방. 육아에 관한 모임이지만 부모의 성장이 주입니다. 내가 성장하면 애들은 지덕체의 인간으로 잘 자란다는 믿음으로 운영됩니다.

  5. 모험생띠띠 2020.09.09 0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몸에 좋은 보양식, 건강 식단만 고집하면 식욕이 떨어진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최근 자기계발서에만 치중했던 제 독서에 힘이 빠지고 있었는데,
    피디님 덕분에 다양한 분야를 접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6. Sangdam 2020.09.09 0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넘 멋진 글 감사드립니다. 다시 사는 삶이 지금 여기 내 앞에 펼쳐지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7. 김주이 2020.09.09 0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앞부분 이야기만 들었는데도 엄청 흥미진진하네요.
    몰입이 확~~됩니다^^

    저도 오늘 하루 PD님 글 읽고 더 즐겁게 살아보렵니다~

  8. 최수정 2020.09.09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밌을거 같아요. 저도 시간이 되면 꼭 읽어봐야겠어요!

  9. 옥포동 몽실언니 2020.09.09 08: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흥미진진하네요! 벌써 피디님의 책 다수를 한국에 주문해서 영국까지 배달되도록 기다리고 있어요. 이 책은 전자책으로 저도 당장 읽어봐야겠습니다! 다만 드라마처럼 중간에 끊지 못할까 두려워지네요~ ㅋ

  10. 에가오 2020.09.09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제껏 진지한 책만 골라읽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가 안되었나봐요~이제부터는 재미난 책도 같이 읽어야겠어요~좋은 멘토가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11. GOODPOST 2020.09.09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짧은 리뷰를 보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푹 빠졌습니다.
    책도 편식이 아니라 달콤한 쵸코릿처럼 여러가지를 접해봐야겠네요.
    코로나로 재미없었던 일상에 단비가 내린것 같습니다.
    오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2. 눈누난나그레이스 2020.09.09 09: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사람들 만날때 꼭 하는 질문인데! 반갑네요 ^^ ㅋㅋㅋ
    소개해주신 책 잠깐 읽었는데 몰입도가 엄청나요
    항상 행복한 나날들 되시길 ^^

  13. 꿈트리숲 2020.09.09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해주신 줄거리가 전체 이야기의 1/3은
    되는 줄 알았더니 고작 20쪽이라니요^^
    너무 흥미로워서 눈보다 마음이 더 빨리
    움직이더라구요 ㅎㅎ

    중드에 빠져있는 딸이 절대쌍교를 미친듯이
    정주행 하더니 무협 드라마를 좀 이해하게
    됐어요.

    폐후의 귀환, 아이랑 함께 보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일단 전자책 어떻게 보는지부터 공부 좀 해야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14. 새벽부터 횡설수설 2020.09.09 1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아니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시는지요.ㅎㅎ
    저도 책을 편식하면 안 되겠어요.ㅎㅎ

    저도 90살 임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저에게 물어봐야겠어요.
    젊은 청년 시절로 잠깐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말이죠.
    그리고 돌아가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죠.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일테니까 무엇을 해야 할까?"라고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15. 코코 2020.09.09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히 재미로 읽을 수 있는 책이 너무 필요했는데,
    오늘 아침 꼬꼬독 영상 보고 이거다 싶었답니다 !
    바로 리디북스에서 1권을 무료 다운 받아서 읽고 있어요
    역시 믿고 읽는 피디님이 권하신 책들. 감사합니다. :)

  16. 은쥐맘 2020.09.09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이 재밌게 느껴지는건 리뷰 쓰는 피디님의 솜씨겠지요?

  17. lovetax 2020.09.10 0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역시 북리뷰맛집^_^* 책도 읽고 싶어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항상 생각할 수 있게 해주시는~멋진 피디님이십니다 !!! 책고르기 곰손인 저는 항상 피디님만 따라할래요 헤헤 믿고보는김민식피디추천도서!

    감사합니다!!

  18. 아리아리짱 2020.09.10 1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피디님 아리아리!

    우와~!
    정말 재미진 전자책일 것같아요!

    But
    저는 씨리즈물에 한 번 빠지면 일상을 잊어버리는
    (식음 전폐, 밤잠 잊음)
    부작용이 저에게 있어서 신중히 접근해야겠어요!
    훗날 읽을 목록에 저장합니다. ^^

  19. 아프리칸바이올렛 2020.09.10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내 성감수성엔 깊은 편견이 있는 걸 알게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리시안과 수국 꽃다발을
    들고있는데 50대 초반의 남자 분이 꽃 예쁘다
    혼잣말하시는 걸 보며 자동차,스포츠,정치말고
    50대 남자도 꽃에 관심이 있구나 신선하게
    다가왔는데
    사극 로맨스 환타지 만화를 정말 흥미진진하게
    보셨다니 그 때의 느낌처럼 새롭게 다가옵니다
    1000일이 지나면 좀 식상함이 오려나
    블로그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
    제 확실한 행복 중 하나입니다



  20. 지나스뽈 2020.09.15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 말에 빠져서 몇일을 밤새워 읽었던 책을 PD님께서 소개해주시니 너무 반갑습니다.
    폐후의 귀환은 중국 소설이고 중국 드라마로도 제작되어있더라구요.
    몇날 몇일을 심묘가 되어 살았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두번을 더 읽었는데 정말 너~무 흥미진진 합니다.

    그런데 읽는 내내 일어나지 않은 일로 전생에 악했던 사람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는게 과연 괜찮은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책이기도 했습니다.

    심묘의 복수가 되로받아서 말로 주는 복수였거든요. ㅎㅎ

    아름다운 악녀의 귀환은 사이다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