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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by 김민식pd 2020. 5. 29.

가끔씩 후배들이 저를 찾아와 물어요. 
“선배님,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그럴 때 정말 난감합니다. ‘야, 그걸 알면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살겠니?’ 일단 시침 뚝 떼고 되묻습니다. (답이 궁할 땐, 질문으로 돌려줍니다.)
“왜? 요즘 사는 게 재미가 없어?”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할 땐 그냥 하루하루 재미나게 지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책을 읽습니다. 살아보니 독서가 제일 재밌어요. ^^
어쩌다보니 먼저 태어났고, 그러다보니 먼저 입사했다는 이유로 선배 소리를 듣지만, 저보다 더 훌륭한 후배도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권성민 피디지요. 2014년 MBC 세월호 관련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징계를 받고, 다시 그 상황을 웹툰으로 그렸다가 해고를 당한 후배인데요. 이번에 책을 냈습니다.

<서울에 내 방 하나> (권성민 / 해냄)

연대 신방과를 다니며 신촌의 비좁은 고시원과 하숙방에서 이십대를 보낸 저자는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와 일을 병행해요. 서울에 방 한 칸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왔네요. 글 잘 쓰는 예능 피디답게 재치 있는 글들이 가득한 책이에요.

‘닿을 수 없는 리스트
대학교 2학년 즈음, 어느 교수님이 강의하다 말고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여러분 되게 바쁘죠? 그래서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영화, 뭐 그런 리스트 만들어놓고 나중에 여유 생기면 해치워야지, 그렇게 쟁여놓고 있죠? 그런데 너무 마음 쓸 필요 없어요. 그런 날 영영 안 와요.”
그 말이 엄청 와 닿아서 그때부터 악착같이 미루지 않고 틈나는 대로 그런 것들을 챙겼다. 새벽 두 시에 퇴근해 몸이 천근이어도 하루가 아까워 책 몇 글자라도 어떻게든 눈에 쑤셔 넣고 나서야 잠을 청했다. 그런 생활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나는, 잠이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

(104쪽)

정말 부지런하게 많이 보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저는 권성민을 만날 때마다 물어봐요. 
“그래서 요즘은 뭐가 재밌어?” 감이 떨어진 아재 PD가 최신 유행을 쫓아가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평소 그와 나누는 수다는 늘 즐거운데요. 이 책을 읽는 시간도 그랬어요. 읽는 내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어요. ‘아, 정말 아름다운 청년이로세.’ 
한때 권성민이라는 이름이 언론사 입시 준비 인터넷 카페에서 화제였던 적이 있어요. 그가 쓴 MBC 합격 후기가 전설의 명문이었거든요. 이번 책에서 해주는 조언도 솔깃합니다. 결국 합격은 운이라고요. ^^

‘애초에 언론사 공채에 ‘고시’란 별명이 붙은 건 저 경이로운 경쟁률 때문이다. 내가 지원했을 때는 1000대 1이었다. 정답도 없는 시험에 경쟁률이 1000대 1이라니. 의자 하나 놓고 천 명이 링가링가링 도는 의자 뺏기 게임인 셈이다. 과연 의자에 앉은 사람이 천 명 중에 달리기가 제일 빨랐을까. 노래가 멈췄을 때 마침 의자 가까이 있었을 뿐이다. 바로 주변 열댓 명보다야 빨랐겠지. 실력이란 그 정도 의미다. 이게 운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그래서 PD 시험을 준비하는 지망생들이 고민 섞인 이야기를 들고 오면 열심히 들어주고 나서 꼭 덧붙인다. 이건 그냥 복권 사는 거랑 비슷한 거라고. 되면 좋겠지만 더 열심히 준비한다고 유리할 것도 없고, 여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그저 불행해지는 길이라고.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PD가 되고 싶은 거라면 차라리 시험 준비할 시간에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보는 기회를 더 가지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고.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게 더 매력적인 이력이 될 수도 있다고.’

(138쪽)

저도 같은 조언을 합니다. 10년 전부터 PD 지망생들에게 블로그와 유튜브를 하라고 권하다가, 오히려 제가 빠져버렸지요. 역시 공부는 남한테 권하는 게 아니라, 직접 실천하는 게 맛입니다.

 
권성민을 볼 때마다 늘 궁금했어요. 저토록 단단한 삶의 태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책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서울에 방 한 칸 마련하는 과정에서 연철은 무쇠처럼 담금질이 되었구나. 배울 점 많은 후배를 만난 것도 인생을 사는 복이지요. 지혜와 통찰을 꾹꾹 눌러 담은 책을 만나는 건 행운이고요. 이 멋진 저자를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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