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 작가의 여행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천국이 내려오다> (김동영 / 김영사)

목차에 나오는 도시 이름만 봐도 설렙니다. 바라나시, 우붓, 교토, 뉴욕, 포카라, 시엠레아프 등 제가 갔던 곳의 풍광이 떠오릅니다. 그러다 문득, 울적해지지요.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코로나 이후, 여행은 어떻게 될까요? 작가가 여행 중 발견한 천국 가운데에는 일본 교토의 어느 레코드 가게가 있어요. 교토 토박이인 친구를 만났더니, "네가 재즈 음악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가봐야 해"라며 알려준 곳인데요. 가게를 찾아가는 길이 쉽지는 않습니다. 세련된 건물들 틈에 자리잡은 낡은 4층 건물이고요. 계단을 따라 3층에 올라가면 나무문으로 닫히 사무실들이 줄지어 있어요. 복도 끝까지 갑니다. 아무리 봐도 레코드샵이 있을 만한 위치가 아닌데 싶어 갸우뚱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주인이 더 놀랍니다. '이런 곳까지 손님이 다 찾아오네?'하듯. 

가격도 적당한데다 생각보다 레코드 컬렉션이 훌륭해요. 주인장이 진짜 재즈의 고수라는 걸 느낍니다. 꼼꼼히 앨범을 살펴보는 동안 주인이 커피를 가져다줘요. 심지어 구하기 힘든 몇 장의 앨범을 문의했더니 주인이 진열장에서 찾아다줍니다. '이런 희귀 음반이 여기에 있다니!' 반가워하니 주인이 한번 들어보겠냐고 물어요.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올리고 플레이 버튼을 누릅니다. 음원으로만 들었던 피아노 연주를 레코드로 처음 듣는 순간, 천국이 내려옵니다. 의자를 권한 주인과 대화를 시작해요. 

'우리는 앉아서 재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몇 장의 앨범을 들려줬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자기 가게를 찾아왔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친구가 소개시켜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에게 왜 이렇게 찾기 힘든 곳에 가게를 열었는지 물었다. 그는 손님이 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아무나 와서 레코드를 만지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이 장소를 골랐다고 했다. "그럼 장사하기 힘들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아내가 일을 해서 괜찮다고 했다. 너무 솔직한 대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나도 따라 웃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걸 이해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철없이 부러웠다. 

(...)

비가 와서 그런지 가게에는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고 오로지 우리 둘만이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음악만 집중해서 들은 건 꽤 오랜만이었다. 그날 우리는 빗줄기가 약해질 때까지 몇 장의 레코드를 더 들었고 몇 개비의 담배를 더 피웠다. 그날 여름비가 내리는 교토의 재즈 레코드숍에서 한가하게 재즈를 들을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게 꽤 행복했다.

밖에서 내리는 비처럼 그리고 매장에 흐르는 재즈처럼 그와 내 위로 천국도 함께 내렸다.

(127쪽) 
 
그 레코드 가게가 천국이라면, 그 주인의 아내는 천사가 아닐까요? 남편이 이런 태도로 세상을 살 수 있도록 둘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주인은 아마 천사를 얻을 만큼 멋진 사람일 것 같아요. 세상은 알고보면 꽤 공평하거든요.  

문득 여행지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해집니다. 이구아수 게스트하우스 직원이나, 바라나시의 블루 라씨 주인, 호주인 생태 여행 가이드 가족 등등... 여행이 멈춘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그러다 한편으로는 과잉 관광으로 몸살을 앓던 도시가 잠시 쉴 수 있는 여유를 찾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레코드 가게 주인이 아무나 들어와 들쑤시는 게 불편한 것처럼, 낯선 사람들이 골목을 쏘다니며 자신들의 마을을 뒤집어놓는 걸 불편하게 여긴 주민도 있었을 테니까요. 여행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아마 당분간은 독서로 여행을 대신할 것 같아요.

어디가 되었든, 읽을 책 한권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천국이 내려옵니다.

 

'공짜 PD 스쿨 >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짠돌이의 독서 예찬론  (12) 2020.06.04
노후대비의 3가지 핵심  (17) 2020.06.03
안부를 묻는 시간  (13) 2020.06.01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16) 2020.05.29
노예 근성을 끊어내는 법  (17) 2020.05.28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  (12) 2020.05.25
Posted by 김민식p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섭섭이짱 2020.06.01 06: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와~~~ 생선 김동영작가님 책이네요. ^^
    가게를 연다면 손님이 많이 오길 원할텐데 레코드샵 주인장의 운영철학이 독특하네요. 재즈는 잘 모르지만 왠지 재즈곡이 듣고 싶어지는 아침입니다. 저도 그 어딘가 여행지에서 만났던 그 분들 안부가 궁금해지네요. 언젠가 그곳에서 다시 만날수 있길 바라며 🙏

    올초에 어디갈지 비행기표 알아보고 일정 계획했던게 예전일처럼 까마득하네요. 어디든 떠나고 싶은데 코로나는 계속 진행중이고 ㅠ.ㅠ 우선은 옛날에 다녀온 여행사진보고 여행 에세이 읽으며 아쉬움을 달래야겠어요.

    그러고보니 오늘이 6월 첫째날이네요.
    피디님 6월도 행복한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랄께요.^^

  2. 보리랑 2020.06.01 07: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이상 먹고 살 수 없어 어쩔수 없이 몽골 초원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돌아갈 만큼 이번 휴식으로 자연이 회복되면 좋겠어요

  3. 최수정 2020.06.01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을 좋아하는 저로서도 과연 자유여행이 언제 재게될지 모르는 이 시점에 적절한 책추천이신거 같아요. 코로나로 많은 일상들이 달라지고 있어서 안좋은 점도 있지만 또 좋아지는 점도 있으니 참 세상은 생각할 수록 아이러니 합니다. ^^

  4. Mr. Gru [미스터그루] 2020.06.01 0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 was going to leave today for traveling around the world but the covid19 destroyed all my plans and young passion.
    I also don't know when I can go on a trip even if the problem with covid19 is solved.
    Many people are suffering from covid19.
    I hope they don't give up, and that they struggle to survive.

    Although my travel plan is broken, I decided to prepare for my beautiful future.
    I'm just doing what I can do.
    I almost memorized 100daysbook.
    It was not easy but it's worth it.

    I appreciate that you wrote about traveling story today.
    After studying, I will travel my gorgeous neighborhood.

    Thank you and enjoy your day~!

  5. 꿈트리숲 2020.06.01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을 감고 잠시 교토의 레코드 가게를
    떠올려 봅니다.
    창밖에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가게 안에는
    재즈 선율이 흐르며 내 앞에 높인 커피잔에는
    뜨거운 김과 함께 커피향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순간.
    그 순간 정말 천국이 비처럼 음악처럼 내리겠다
    싶어요.
    어찌보면 여행의 한 순간인데 그걸 기록으로
    남겨둬서 많은 사람들이 달콤한 꿈같은 상상을
    하게 만들어주네요.

    제게는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 천국과도 같아요.
    햇살처럼 별빛처럼 매일 재미난 책이 내려오니까요.
    과잉 관광으로 몸살 앓을 일도 없는 세상,
    돈도 들지 않는 여행.
    공짜로 즐기는 세상입니다.^^

  6. 코코 2020.06.01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 전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답니다.
    그분도 그렇고 저도 해외를 그래도 꽤 많이 돌아다녔는데요.
    제가 못 가봐 아쉬운 곳이 포르투칼 이랍니다.
    그분은 포루투칼이 너무 좋아 일부러 해외 출장 시 일정을 조정해
    세 번이나 여행을 했더라구요.
    코로나 이전엔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가지..
    하며 밀어두기만 했던 여행이 요즘은 참 목마릅니다.
    시원하고 가볍게 움직일 수 없는 안타까움을 그 날밤은
    술 한잔 기울이며 지인이 전해주는 포르투칼 여행기로 만족했답니다.
    문득 낯선 도시의 공항이나 기차역에 첫발을 디뎠을 때 느껴지던
    짜릿함이 참 그립습니다.

  7. 아리아리짱 2020.06.01 0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님 아리아리!

    '천국이 내려오다. '
    천국을 읽어내고 알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져야 천국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있는 시간들이 언제 올련지요.
    그날까지 집콕하며 독서여행 함께하면서 천국을 만나
    보렵니다. ^^

  8. 정초아 2020.06.01 1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가 되었든, 읽을 책 한권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요즘 타인의 해석책에 빠져 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그 책을 펼치고 있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

  9. GOODPOST 2020.06.01 1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국은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 가까이에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네요.

    사실적이고 감성적인 김동영작가님의 글을 읽다보니
    내가 꼭 교토의 4층 레코드가게에 소환된 착각이 듭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꼭 읽어보고싶네요.

  10. 오달자 2020.06.01 1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든 천국이란 내가 생각하는 그 곳이 천국이 아닐까...싶네요.

    어디가 되었든 천국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걸~~~

  11. 작은습관의힘 2020.06.01 1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가 되었든 읽을 책 한 권이 있다면 그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천국이 내려옵니다. 라고 쓰신 김민식 PD님의 글이 가슴에 와땋네요. 천국이 내려오다라는 책과 또 다른 책이 만나는 순간??!! 늘 감명받고 늘 읽고싶게 만드는 매력의 글들에 늘 빠져듭니다. 저를 일깨워일으키신 분입니다. 매일 찾아와 이렇게 덕분에 또 한권의 책을 선물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2. 아빠관장님 2020.06.02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달자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런면에서 전 피디님 블로그에 접한 이순간도 천국입니다. 오늘도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감사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