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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안부를 묻는 시간

by 김민식pd 2020. 6. 1.

김동영 작가의 여행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천국이 내려오다> (김동영 / 김영사)

목차에 나오는 도시 이름만 봐도 설렙니다. 바라나시, 우붓, 교토, 뉴욕, 포카라, 시엠레아프 등 제가 갔던 곳의 풍광이 떠오릅니다. 그러다 문득, 울적해지지요.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코로나 이후, 여행은 어떻게 될까요? 작가가 여행 중 발견한 천국 가운데에는 일본 교토의 어느 레코드 가게가 있어요. 교토 토박이인 친구를 만났더니, "네가 재즈 음악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가봐야 해"라며 알려준 곳인데요. 가게를 찾아가는 길이 쉽지는 않습니다. 세련된 건물들 틈에 자리잡은 낡은 4층 건물이고요. 계단을 따라 3층에 올라가면 나무문으로 닫히 사무실들이 줄지어 있어요. 복도 끝까지 갑니다. 아무리 봐도 레코드샵이 있을 만한 위치가 아닌데 싶어 갸우뚱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주인이 더 놀랍니다. '이런 곳까지 손님이 다 찾아오네?'하듯. 

가격도 적당한데다 생각보다 레코드 컬렉션이 훌륭해요. 주인장이 진짜 재즈의 고수라는 걸 느낍니다. 꼼꼼히 앨범을 살펴보는 동안 주인이 커피를 가져다줘요. 심지어 구하기 힘든 몇 장의 앨범을 문의했더니 주인이 진열장에서 찾아다줍니다. '이런 희귀 음반이 여기에 있다니!' 반가워하니 주인이 한번 들어보겠냐고 물어요.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올리고 플레이 버튼을 누릅니다. 음원으로만 들었던 피아노 연주를 레코드로 처음 듣는 순간, 천국이 내려옵니다. 의자를 권한 주인과 대화를 시작해요. 

'우리는 앉아서 재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몇 장의 앨범을 들려줬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자기 가게를 찾아왔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친구가 소개시켜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에게 왜 이렇게 찾기 힘든 곳에 가게를 열었는지 물었다. 그는 손님이 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아무나 와서 레코드를 만지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이 장소를 골랐다고 했다. "그럼 장사하기 힘들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아내가 일을 해서 괜찮다고 했다. 너무 솔직한 대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나도 따라 웃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걸 이해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철없이 부러웠다. 

(...)

비가 와서 그런지 가게에는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고 오로지 우리 둘만이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음악만 집중해서 들은 건 꽤 오랜만이었다. 그날 우리는 빗줄기가 약해질 때까지 몇 장의 레코드를 더 들었고 몇 개비의 담배를 더 피웠다. 그날 여름비가 내리는 교토의 재즈 레코드숍에서 한가하게 재즈를 들을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게 꽤 행복했다.

밖에서 내리는 비처럼 그리고 매장에 흐르는 재즈처럼 그와 내 위로 천국도 함께 내렸다.

(127쪽) 
 
그 레코드 가게가 천국이라면, 그 주인의 아내는 천사가 아닐까요? 남편이 이런 태도로 세상을 살 수 있도록 둘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주인은 아마 천사를 얻을 만큼 멋진 사람일 것 같아요. 세상은 알고보면 꽤 공평하거든요.  

문득 여행지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해집니다. 이구아수 게스트하우스 직원이나, 바라나시의 블루 라씨 주인, 호주인 생태 여행 가이드 가족 등등... 여행이 멈춘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그러다 한편으로는 과잉 관광으로 몸살을 앓던 도시가 잠시 쉴 수 있는 여유를 찾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레코드 가게 주인이 아무나 들어와 들쑤시는 게 불편한 것처럼, 낯선 사람들이 골목을 쏘다니며 자신들의 마을을 뒤집어놓는 걸 불편하게 여긴 주민도 있었을 테니까요. 여행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아마 당분간은 독서로 여행을 대신할 것 같아요.

어디가 되었든, 읽을 책 한권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천국이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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