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

노예 근성을 끊어내는 법

by 김민식pd 2020. 5. 28.

<임계장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파트 경비원을 상대로 폭언을 일삼는 주민들의 이야기도 안타까웠지만, 동료인 경비 반장의 갑질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게 참 가슴 아팠어요. 불과 몇달 전까지 같은 일에 종사했던 노동자도 관리자라는 직함을 다는 순간, 동료를 향해 감시와 탄압의 시선을 장착합니다. 이건 왜 이럴까...? 그 궁금증을 책을 읽다 풀었어요. 

<루쉰 읽는 밤, 나를 읽는 시간> (이욱연 / 휴머니스트)

루쉰 연구자인 저자는 우리 시대를 돌아보는 데 루쉰의 글만큼 예리하고 섬세한 것도 없다고 말하는데요. 등급 질서 속에 사는 사람은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노예처럼 비굴하지만,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는 호랑이처럼 무섭대요. 이런 인간 유형을 만드는 게 등급 질서랍니다. 수직적 신분사회만 노예를 만드는 게 아니라, 현대사회처럼 신분 이동이 가능한 사회에서 사람은 노예가 되기 쉽다고요. 

'과거 신분제 사회처럼 유동성이 없는 사회는 선천적인 노예를 만들었다. 하지만 노예는 신분제 사회에만 있지 않다. 유동성을 지닌 등급 위계 사회에도 노예가 있다. 게다가 이들은 자발적인 노예다. 등급 위계가 갈수록 강해지는 사회에서 우리 삶이 고달픈 이유다.'

(154쪽)

 

이런 세상에서는 밑바닥에 있던 노예가 출세하여 주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등급 질서 속에서 살면서 몸에 익은 노예 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고요. 주인의 자리에 올라도 여전히 마음은 노예라는 거지요.

MBC는 공영방송사입니다. 소유주가 따로 없어요. 노동자로 입사한 사람이 사내 승진을 통해 사장이 됩니다. 사원으로 일할 때 고생하던 경험이 있으니, 밑에 있는 사람의 아픔과 고통도 잘 알아서 재벌2세 출신 사장보다 더 좋은 경영자가 될 것 같은데요. 루쉰은 정반대의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노예 의식을 지닌채 주인이 된다면 아랫사람을 학대하고 자신이 과거에 당한 것을 분풀이하면서 주인 놀이에 빠진다는 거지요. 과거 MBC의 흑역사는 자신을 사장으로 만들어준 권력에 충성하느라 동료들을 탄압하던 사장과 함께 시작합니다. 

'왜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까? 루쉰은 노예근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예에서 주인으로 상승할 수 있는 등급 질서 속에서 노예의 꿈은 주인이 되는 것이다. 노예는 늘 주인이 되고 싶은 욕망으로 산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인이 되면 노예는 과거 주인보다 더 악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 지금 그의 위치가 아무리 높고 자리가 호화롭고 지위가 찬란하더라도 그는 노예다. 주인이지만 구제할 수 없는 노예다.'

(158쪽)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요, 시청자입니다. 시청자를 섬기는 대신, 권력의 앞잡이가 된 사람에게는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줘야지요. 노예 근성을 끊어내는 법은 무엇일까요? 루쉰은 과거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는 좋은 부모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 간단한 팁을 제시한다. 아이가 공원에 같이 가자고 하는데 부모는 귀찮다. 루쉰은 그럴 때면 자신이 어렸을 때 어떠했는지를 떠올리라고 조언한다. 그는 좋은 부모가 되려면 자신이 어렸을 때를 기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등급 질서에서 일어나는 악순환을 끊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새로운 주인이 되기 위해서도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과 같은 기억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밑바닥에서 노예 같은 대우를 받으며 힘들었던 시절의 마음을 잊지 않는 기억의 힘, 그것은 당신을 새로운 주인으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주인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161쪽)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도 노예 근성을 버리지 못한 겁니다. 우리에게는 과거를 기억하는 힘과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그게 노예 근성을 버리고 진짜 주인이 되는 길이니까요.

세상은 생각보다 좁구요. 인생은 생각보다 깁니다.

내 인생의 참된 주인으로 사는 삶을 소망합니다.

 

   

반응형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부를 묻는 시간  (12) 2020.06.01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15) 2020.05.29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  (11) 2020.05.25
어느 작가의 편지  (13) 2020.05.22
인생의 의미를 찾아서  (18) 202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