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시사주간지 '시사인'을 즐겨읽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코너는 '아까운 걸작'이라는 출판서평 코너다. 잘 만든 책이지만, 아직은 덜 알려진 숨은 걸작을 찾는 코너... 이 코너를 볼 때마다 가끔 환상에 빠진다. 내 드라마나 시트콤 중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작품이 먼 훗 날, '아까운 걸작'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지는 않을까? ^^ 물론 나만의 공상이다. TV는 동시대성이 강한 콘텐츠이다. 만든 그 순간 팔리지 않으면 영원히 사장되기 쉽다.
TV PD가 블로그에 빠져 사는 이유? 시대를 뛰어넘는 활자의 힘 때문이다. 지금 네 살난 내 딸이 먼 훗날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다, 우연히 내 블로그를 만나고, 스무살의 민서가 나의 옛글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면... 이 블로그 곳곳에 숨겨놓은 민서의 아기 시절 사진을 통해, 아빠의 사랑을 느낄 수만 있다면... 시공을 초월하는 메시지의 힘, 그것이 블로그를 하는 이유다.
여러분이 만드는 블로그? 그건 '병 속에 넣은 편지'다. 10년 후의 나에게 보내는 스무살의 편지. '아, 스무살의 나는 이런 고민을 하며 살았구나. 아, 참 그때 열심히 살았구나. 그 덕에 지금 난 참 많은 것을 누리게 되었구나.' 10년 후, 자신의 블로그를 보며 이렇게 느낄 수만 있다면 그대의 블로그는 성공한 거다. 결국 블로그는 세상을 향한 창인 동시에, 자신을 향한 연애편지다.
다시, '아까운 걸작' 코너로 돌아가서... 이번 주에 실린 책은 전하진 님이 지은 '청춘, 너는 미래를 가질 자격이 있다'다. 전하진 님의 'SERA'형 인재론을 소개한 대목에서, '어? 이건 내가 블로그를 하는 자세인데?'하고 무릎을 쳤다.
"전하진씨는 20~30대 젊은이에게 스펙을 버리고 SERA형 인재가 되라고 권한다. SERA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이야기(Story)'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많은 사람의 '공감(Empathy)'를 얻어내는 동시에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갖추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성취감(Achievement)'을 느끼는 것이다."
블로그를 만드는 자세도 똑같다.
1. Story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든다.
2. Empathy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3. Resilience 곤경과 역경을 이겨낸다.
4. Achievement 성취감을 느낀다.
1,2,4번은 알겠는데, 3번은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고작 블로그하는데 웬 역경? 내게는 역경이 있었다. 초기에는 몇시간씩 시간을 투자해서 글을 썼는데, 방문자수가 하루 열명을 넘지 않았다. 자괴감이 들었다. 드라마는 망해도 시청률이 5%는 나온다. 망해도 200만명이 보는 드라마를 만드는 내가, 겨우 열명 보라고 이러고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블로그를 계속했다. 왜? 재밌으니까. 아무도 안봐줘도 나만 즐거우면 되니까.
2억원을 들여 드라마를 만들었는데, 시청률 5%라면 쪽팔려서 죽고 싶다. 월급주는 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니 고개를 들 낯도 없다. 하지만 이건 돈 한 푼 안들이고 만든 공짜 미디어 아닌가? 돈 안 받고 재미로 만든건데, 스무명이 보면 어떻고, 아무도 안 보면 또 어떤가?
블로그 초대장을 나눠드리고, 가끔 그 분들이 개설한 블로그에 들어 가 본다. 내가 초대한 분들의 블로그 목록이 관리 메뉴에 있다. 가 보면, 생각보다 빈 집이 많다. 역시 꾸준한 블로그 생활, 쉽지는 않다.
블로그를 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처음에는 남 의식하지 말고, 스스로 즐겨야한다.
나 자신이 즐거워야 열심히 하게 되고, 그래야 보람도 생기고, 나중에 보는 사람도 즐겁다.
사람들의 공감? 역경을 이겨낸 회복 탄력성? 마지막에 오는 성취감? 이 모든 것보다 스토리가 우선이다. 자신의 스토리를 세상에 알리는 재미, 그걸 느껴야한다.
오늘은 전하진 님의 특강을 청해들으며, 수업 마치겠다. 다들 안녕~~~ (민지, 민서도 안녕~~~)
"위너의 조건, 세라SERA형 인재" http://cafe.naver.com/dokchi/1031369
ps. 조중동 종편의 평균 시청률이 0.5%도 안된다. 그럼에도 서로 대박났다고 신문에서 난리다. 예전에 시청률 5%짜리 시트콤 만들고 쪽팔려서 죽을 뻔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게 부족한건 연출력이 아니라 뻔뻔함이었다.
(조중동 방송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 존경하는 선배도 많고, 사랑하는 동료도 많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조중동 방송에 있다고, 조중동 방송까지 사랑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