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속에는 극과 극이 공존합니다. 일단 저는 모험을 즐깁니다. 배낭여행, 산악자전거, 스키, 스노보드를 좋아하고요. 번지 점프와 스카이다이빙도 하지요. 무척 외향적인 것 같은데, 한 편으로는 은근 내성적입니다.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덕질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소설, 시트콤, 영화 등의 콘텐츠에 빠져 삽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자막없이 보려고 일본어 공부까지 합니다. 덕후도 중증의 덕후입니다.

저의 두 딸을 보면, 제 성격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발현된 것 같아요. 큰 딸 민지는 저와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도 하고, 패러글라이딩도 했지요. 스포츠 퀸이라는 별명을 가진 민지는 외향적 성향을 갖고 있어요. 학교에서 임원도 하고, 수능이 끝나자 알바몬에서 일자리를 찾더니, 지금은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어요. 배낭여행 경비를 마련할 생각인가 봐요.

둘째 민서는, 반대로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걸 좋아합니다. 나가는 걸 즐기지 않아요. 집에서 레고 조립하고, 책읽고, 유튜브를 봅니다. 유튜브로는 DC의 히어로물을 즐겨봅니다. Teen Titan을 보고, Birds of Prey를 봐요. 덕후답지요. (유튜브를 볼 때는 영어 영상만 보게 합니다. 제가 영어를 공부한 방식이지요. 즐거움을 매개로 언어를 체득한다...) 

민서는 만화도 즐겨 그립니다. 민서가 그린 만화를 보노라면 제 어렸을 때 모습이 떠올라요. 중학생 때 만화를 그리다 아버지에게 걸려서 "공부 안 하고 쓸데없는 짓 한다"고 혼도 많이 났지요. 저는 민서가 그린 만화를 같이 즐깁니다. 덕후의 시작은 모방이고요, 최종 경지는 창작입니다. 저는 민서가 창작하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시작은, 남이 만든 걸 즐기는 거죠. 방학 때 심심해하는 민서를 위해 IPTV로 늘 디즈니 만화영화만 틀어줬는데요. 어느 날 더이상 볼 게 없다는 걸 깨닫고, 민서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어요. <스타워즈> 시리즈를 시작한 거죠. 처음엔 <로그원>을 보여줬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최근 나온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중 최고입니다.) 보더니 좋아하기에 시리즈 처음부터 보여줬어요. 열흘이 후딱 갑니다. 민지는 싸우는 장면이 싫다고 안 보는데, 민서는 좋아하더라고요.

언젠가 유튜브를 보던 민서가 흥분해서 달려왔어요.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예고편을 본 거죠. "아빠, 스타워즈가 또 개봉한대!" 개봉하자마자 같이 보러 가기로 약속하고, 일요일 아침 조조를 예매했습니다. (그래야 3천원을 아낍니다. ^^) 그런데 아침에 가족 행사가 생겨 영화를 못 보게 되었어요. 전날 밤 그 소식을 들은 민서가 울더군요. 큰 소리로 목을 놓아 울어요. 이제 중학교 입학하시는 분께서..... ^^ 할 수 없이 저녁 표를 예매했습니다. (주말 저녁 영화표는 너무 비싸!!!! ㅠㅠ 이제는 제가 웁니다......)

영화관에 앉아 시작을 기다렸어요. 

 

 

자막이 뜨고, 스타워즈 음악이 "콰앙!" 하고 시작됩니다. 민서가 신이 나서 주먹을 불끈 쥐고는 저를 쳐다봅니다.

'아빠, 드디어 시작이야!'

그런 민서를 보며, 저도 기쁨에 젖습니다.

'진짜다! 얘는 제대로 된 덕후가 되었어!'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평이 갈리기도 하지만 저와 민서는 재밌게 봤어요.

 

아빠로서 저는 민서의 넘버 원 팬입니다.

영화 카피가 '새로운 미래를 결정지을 운명의 대결'입니다.

저는 방학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지을 운명의 시간'이라 생각해요.

지난 겨울 동안 민서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어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집에서 만화를 그리는 틈틈이 유튜브를 봤지요. 

민서는 스타워즈 영화를 볼 때 즐겁고요.

저는 즐거운 민서의 표정을 볼 때 행복합니다.

장차 덕후로 살아갈 민서의 멋진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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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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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니스라이프 2020.01.29 0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딸의 모습을 보는 듯 내내 흐뭇했습니다.

    제 딸도 집에 처박혀서 꼼지락 거리는 걸 좋아해서
    일본에 볼 일이 있어 가야 하는데 여행가는 걸 너무 힘들어 합니다.

    어떻게 이번 여행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 하다가
    좋아하는 미니어처 박물관, 가게 등을 함께 둘러봣어요.
    일본에는 미니어처 박람회도 열더군요.
    일본가기 싫다던 애가 미니어처 박람회를 보러는 꼭 가고 싶다고... ^^

    이번 여행은 미니어처 좋아하는 딸의 덕후 인생을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은밀한 계획이 성공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

  2. 새벽부터 횡설수설 2020.01.29 0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하루만 민서가 되어보고 싶네요!! 덕후의 삶~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어릴 때 집 안에 처박혀서 혼자서 하루 종일 애니메이션을 탐독했어요. 근데 문제는 게임을 너무 많이 했었어요. 축구 게임을 그렇게... 그러면서 박지성 선수의 영국팀 경기를 매번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모두 다 챙겨봅니다. 그렇게 축구 덕후가 되었어요..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에 들어오는 햇살은 여전히 너무 좋습니다.ㅎㅎ

  3. renodobby 2020.01.29 0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후의 삶을 사는 민서가 부럽습니다! 최근 몇년 간 제대로 된 덕질을 하지 못했기에 올해는 덕질할만한 소재를 찾아서 덕후가 되어봐야겠습니다.

  4. 김주이 2020.01.29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아빠와 그를 똑 닮은 딸
    부녀의 모습에 흐믓한 미소가 지어지내요.

    덕후의 삶을 응원합니다^^

  5. Mr. Gru [미스터그루] 2020.01.29 0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그리는 삶을 살고 계십니다.

    저도 자식과 이렇게 관계가 돈독하면 좋겠고 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아이들이 도서관을 좋아해서 책 보러 다니고 스스로 목표를 갖고 무엇인가 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고 싶습니다.

    저는 스타워즈를 본 적 없다가 얼마 전에 TV에 무료로 뜨길래 한 번 봤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유치하지도 않고 재미도 있고 잘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덕후 얘기가 나와서 저는 무엇에 덕후인가 생각을 해봤는데 딱히 없지만 하나 꼽자면 도전인 것 같습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제 생각엔 아프고 나서 이런 기질이 생긴 것 같아요 ㅠㅠ (이렇게 살다 가면 안 되겠다는...) 이 도전 덕후 기질 덕분에 요즘 무엇인가 생각나면 실천하고 생각대로 됐을 때 이뤄지는 신기함을 느끼며 재밌게 살고 있습니다.

    아! 김민식 pd 덕후 기질도 있네요 ㅎㅎ 안 그래도 내일은 pd 님의 책? 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 책으로 글을 쓸 예정입니다. 제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계신 pd 님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6. 꿈트리숲 2020.01.29 0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의 집에도 혼자 놀기 덕후가 한명
    있습니다.ㅋㅋ
    방학에 조선시대 소설에 빠져서 요즘
    그 책들 구하러 다닌다고 도서관을
    여기저기 수소문 하고 있어요.^^

    하루 일과가 아주 심플한 따님은 걱정,
    불안 등이 전혀 없어 보여요. 아침 먹고
    책보고, 점심 먹고 코난 일본어로 보고,
    그림 그리고, 저녁 먹고 책 보다 잠들고.
    아이 보면서 저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생각이 드네요.
    캐릭터 그리기에 빠져 살면서 캐릭터 판매도
    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덕질은 뭐가 남아도 남는게 있는 장사에요.^^

    민서의 스타워즈 덕질, 열렬히 응원합니다.~~

  7. 보리랑 2020.01.29 1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딸들의 넘버원 팬입니다. 자랑도 서슴치 않는 팔불출이고요. 애들과 함께 있으면 너무 좋고 작품들이 넘 잼난걸요. 그런데 그 애들이 창작의 고통에 괴로워 해요 ㅎㅎㅎ

  8. 미니마우스 2020.01.29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스베이더가 어떻게 다스베이더가 됐는가 그게 몇편인지 모르겠지만 스타워즈 하니 그때의 기억이 났습니다.
    저도 극과 극을 달리는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나의 지나친 덕질이 타인에게는 어떤 일일지 그런 생각도 하게 되었네요. 씁쓸한 하루입니다.
    아버지와 두 따님 모두 보기 좋으세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9. 코코 2020.01.29 1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글을 읽으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져요.
    민서를 덕후의 길로 열심히 이끈 피디님.
    그리고 노력의 결과를 얻으셨네요!
    초롱초롱한 눈으로 영화를 보는 아이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
    저도 굉장히 극과 극을 달리는데요.
    문득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만화를 그리며 상상의 세계에 푹 빠져 살던 학창 시절
    밖의 세계가 너무 궁금해 배낭 하나 메고 종횡무진 여행을 다녔던 젊은 날.

    저도 요즘 뭔가에 덕후가 돼보면 재밌을 것 같네요^^
    뭐가 있을까.. 두리번거려 봅니다.
    오늘도 멋진 하루 되세요~

  10. 아리아리짱 2020.01.29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님 아리아리!

    아빠를 능가하는 덕후 딸을 가지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덕후 패밀리 그 느낌 부럽습니다~! ^^

  11. 나겸맘 리하 2020.01.29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나. 수능 끝나자마자 알바몬에서 일자리 구하는 따님이라니...
    중학 입학 앞두고도 아빠와 스타워즈 영화 같이 보는 따님이라니...
    세상 최고로 멋진 소녀들이 전부 그댁 따님들이네요.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자신들의 관심사를 따라
    자연스럽게 덕후가 되는 것 같아요.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덕후 기질로 두 따님 모두 언제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12. 아솔 2020.01.30 0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피디님처럼 제 안에 극과 극이 공존한다고 느꼈었는데, 동질감이 드네요! 요 며칠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피디님도 제주도에 계시다는 페북 글을 봤어요~ 우연히 마주치길 기도했건만 그런 우연은 없더라구요ㅠㅠㅋㅋ 늘 건강하세요~

  13. 더치커피좋아! 2020.01.30 0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지는 민지 나름대로
    민서는 민서 나름대로
    아빠는 아빠 대로
    엄마 또한...♡
    각자의 삶을 즐겁게 가꾸는
    가족들 모습이 보기 좋습니당!
    항상 응원합니다~^^

  14. 고마워요 2020.02.02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행복한 모습 잘 보고 갑니당

    아들 셋인데 팁 얻어가용ㅎㅎ

    오늘도 고맙습니다!!

  15. 섭섭이짱 2020.02.03 0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최근에 본 기사중 데니스홍 로봇공학자는 스타워즈 덕후인데
    어릴때 본 스타워즈에 빠진 후 로봇에 관심이 생겨 그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뭔가에 빠지는거 정말 멋진거 같아요.
    저도 스타워즈 덕후 민서의 삶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