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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라이즈 오브 더 덕후

by 김민식pd 2020. 1. 29.

제 속에는 극과 극이 공존합니다. 일단 저는 모험을 즐깁니다. 배낭여행, 산악자전거, 스키, 스노보드를 좋아하고요. 번지 점프와 스카이다이빙도 하지요. 무척 외향적인 것 같은데, 한 편으로는 은근 내성적입니다.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덕질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소설, 시트콤, 영화 등의 콘텐츠에 빠져 삽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자막없이 보려고 일본어 공부까지 합니다. 덕후도 중증의 덕후입니다.

저의 두 딸을 보면, 제 성격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발현된 것 같아요. 큰 딸 민지는 저와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도 하고, 패러글라이딩도 했지요. 스포츠 퀸이라는 별명을 가진 민지는 외향적 성향을 갖고 있어요. 학교에서 임원도 하고, 수능이 끝나자 알바몬에서 일자리를 찾더니, 지금은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어요. 배낭여행 경비를 마련할 생각인가 봐요.

둘째 민서는, 반대로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걸 좋아합니다. 나가는 걸 즐기지 않아요. 집에서 레고 조립하고, 책읽고, 유튜브를 봅니다. 유튜브로는 DC의 히어로물을 즐겨봅니다. Teen Titan을 보고, Birds of Prey를 봐요. 덕후답지요. (유튜브를 볼 때는 영어 영상만 보게 합니다. 제가 영어를 공부한 방식이지요. 즐거움을 매개로 언어를 체득한다...) 

민서는 만화도 즐겨 그립니다. 민서가 그린 만화를 보노라면 제 어렸을 때 모습이 떠올라요. 중학생 때 만화를 그리다 아버지에게 걸려서 "공부 안 하고 쓸데없는 짓 한다"고 혼도 많이 났지요. 저는 민서가 그린 만화를 같이 즐깁니다. 덕후의 시작은 모방이고요, 최종 경지는 창작입니다. 저는 민서가 창작하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시작은, 남이 만든 걸 즐기는 거죠. 방학 때 심심해하는 민서를 위해 IPTV로 늘 디즈니 만화영화만 틀어줬는데요. 어느 날 더이상 볼 게 없다는 걸 깨닫고, 민서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어요. <스타워즈> 시리즈를 시작한 거죠. 처음엔 <로그원>을 보여줬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최근 나온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중 최고입니다.) 보더니 좋아하기에 시리즈 처음부터 보여줬어요. 열흘이 후딱 갑니다. 민지는 싸우는 장면이 싫다고 안 보는데, 민서는 좋아하더라고요.

언젠가 유튜브를 보던 민서가 흥분해서 달려왔어요.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예고편을 본 거죠. "아빠, 스타워즈가 또 개봉한대!" 개봉하자마자 같이 보러 가기로 약속하고, 일요일 아침 조조를 예매했습니다. (그래야 3천원을 아낍니다. ^^) 그런데 아침에 가족 행사가 생겨 영화를 못 보게 되었어요. 전날 밤 그 소식을 들은 민서가 울더군요. 큰 소리로 목을 놓아 울어요. 이제 중학교 입학하시는 분께서..... ^^ 할 수 없이 저녁 표를 예매했습니다. (주말 저녁 영화표는 너무 비싸!!!! ㅠㅠ 이제는 제가 웁니다......)

영화관에 앉아 시작을 기다렸어요. 

 

 

자막이 뜨고, 스타워즈 음악이 "콰앙!" 하고 시작됩니다. 민서가 신이 나서 주먹을 불끈 쥐고는 저를 쳐다봅니다.

'아빠, 드디어 시작이야!'

그런 민서를 보며, 저도 기쁨에 젖습니다.

'진짜다! 얘는 제대로 된 덕후가 되었어!'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평이 갈리기도 하지만 저와 민서는 재밌게 봤어요.

 

아빠로서 저는 민서의 넘버 원 팬입니다.

영화 카피가 '새로운 미래를 결정지을 운명의 대결'입니다.

저는 방학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지을 운명의 시간'이라 생각해요.

지난 겨울 동안 민서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어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집에서 만화를 그리는 틈틈이 유튜브를 봤지요. 

민서는 스타워즈 영화를 볼 때 즐겁고요.

저는 즐거운 민서의 표정을 볼 때 행복합니다.

장차 덕후로 살아갈 민서의 멋진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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