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3대 장르 소설이 있어요. SF, 공포, 추리입니다. 셋 다 몰입감이 대단한 장르입니다. SF의 경우, 이야기를 쫓아가려면 아예 다른 세계로 가야 합니다. 공포물의 경우, 살아남기 위해 집중하고요. 추리물은, 머리싸움입니다. 잠시 놓친 순간, 책을 다 읽은 후, 앗! 하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야 할 때도 있어요. 어려서부터 장르 소설을 좋아한 이유는, 제게 독서가 엔터테인먼트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상상력의 쾌감! 힘든 현실로부터 달아나고 싶을 때 최고입니다. 때로는 세 장르 중 서로 이종교배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번에 읽은 책이 그랬어요. 공포와 미스테리의 결합.

<염소가 웃는 순간> (찬호께이 / 강초아 / 한스미디어)

2016년에 <13.67> (찬호 께이 / 한스미디어)을 읽었어요. 2015년 최고의 추리 소설이었어요. 저자가 새 책을 냈기에 찾아 읽었습니다.

호러 미스테리라는 소개에 약간 의아했어요. 'SF나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로 알았는데, 공포물도 쓰나?'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잘 만든 호러의 특징이지요. 저 문 너머 무언가가 있어요. 그냥 뒤돌아서서 도망치면 되는데, 기어코 살금살금 다가가 그 문을 빼꼼 열어보게 만들거든요. 

홍콩의 어느 대학 기숙사에 신입생들이 모여듭니다. 외딴 언덕에 지어진 기숙사에는 몇가지 괴담이 전해내려옵니다. 원래 영국의 어느 귀족이 살던 대저택이 하룻밤 새 불타 없어졌는데, 그게 지하실에서 행했던 악마 소환 의식 탓이라는 거죠. 아직도 그 지하실이 기숙사 지하에 있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한 신입생들은 그 방을 찾아가 재미삼아 악령을 부르는 초혼 의식을 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집니다. 

홍콩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영국 통치를 받던 홍콩의 역사를 가져와 서양의 흑마술과 이종교배를 합니다. 서양 귀신과 동양 귀신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기숙사의 7대 괴담이 있는데, 그 일곱가지 사건을 신입생들이 하룻밤에 다 겪게 됩니다. 그 중 <나무에 매달린 시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한 남학생이 해질 녘, 기숙사 방으로 가다 계단참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깜짝 놀랍니다. 창밖에 축 늘어진 것은 평소와 같은 나무 가지가 아니라 나무에 매달린 시체들이었어요. 시체들이 끔찍한 모습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데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니 그냥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가지에요. 다음날에도 또 계단에서 창밖으로 나부끼는 시체들을 봅니다. 다시 살펴보니 이번에도 그냥 나무가지만 흔들리고 있어요. 사흘째 되는 날 밤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요. 그런데 이번에는 시체가 한 구 줄어 다섯 구만 있어요. 밖으로 뛰쳐나가 보지만 시체라곤 없어요. 넷째 날 또 나무에 걸린 시체를 보는데, 마침 룸메이트가 지나가고 있어요. 룸메이트에게 네 구의 시체를 가리켜 보였지만 친구는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시체 이야기를 꺼냈지만 다들 착시라거나, 기가 허해서 그렇다며 부적이나 십자가를 줄 뿐이에요. 

'시체들은 매일 한 구씩 줄어들었고, 그 표정은 점점 더 끔찍해졌다. 이를테면 기괴하게 웃는 듯한 표정이었다. 남학생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매일같이 보다 보니 그 광경에 차츰 익숙해졌다. 아무래도 자기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나 보다 하고 정신과 진료 예약도 했다.

일곱째 날 해 질 무렵, 남학생은 계단에서 친한 여학생들을 만났다. 그들과 대화하며 계단을 오르다가 창문이 나오자 바깥을 바라봤다. 나무에 걸린 시체는 이제 한 구뿐이었다. 남학생은 씩 웃으며 내일부터는 시체가 보이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여학생이 비명을 질렀다. 곧이어 다른 여학생들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들이 덜덜 떨며 창밖의 시체를 가리키더니 웃고 있는 남학생을 의혹에 찬 눈길로 바라봤다.

"어, 어떻게 웃을 수 있어?"

남학생은 그제야 창밖으로 보이는 한 구의 시체가 바로 자신의 룸메이트라는 걸 알아차렸다.'

(312쪽)

7개의 괴담이 하나하나 현실이 되면서 기숙사 신입생들이 하나씩 사라집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악령을 불러낸 것 같아!"

더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보내시고픈 분들께 추천합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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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섭섭이짱 2020.08.10 05: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와우~~~호러 미스터리물이라고라고라굽쇼
    도감사 피디님 믿고 무조건 책 사봅니다요.

    그러고보니 저자 이름은 확실히 기억에
    park(팍) 남을거 같네요.
    오랫만에 찬호박 아이스크림 먹으며
    이책 같이 읽어봐야겠어요 ㅋㅋ

    오늘도 취향저격 책 소개 감사합니다~~~~

  2. 달빛마리 2020.08.10 06: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기피하는 세 장르네요 ^^;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여름 휴가철에 딱 읽기좋은 책 같아요!

    월요일이네요.
    즐거운 한주의 시작 되세요 :)

  3. 뽑기다운타운언니 2020.08.10 06: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로워 보입니다!>.< 미스테리 잼있죠!

  4. 아솔 2020.08.10 0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저 호러물은 절대 안보는데.. 위에 소개해주신 에피가 너무 흥미로워서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저 남학생 이야기의 끝은 무엇일지ㄷㄷㄷ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5. 꿈트리숲 2020.08.10 08: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줄거리만으로도 넘 무서워요~~
    SF는 그나마 좀 눈뜨고 볼 수 있지만
    미스테리, 공포는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습니다 ㅋㅋ

    며칠전 반도를 어쩔 수 없기 보게 됐는데
    시선을 바닥으로만 하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면서 간신히 완주했습니다^^

    피디님은 서늘한 공포로 시원한 여름 보내시고
    저는 에어컨 바람 맞으며 시원하게 보내겠습니다^^

  6. 아리아리짱 2020.08.10 0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피디님 아리아리!

    공포물로 슬기로운 여름나기!

    제 취향은 조금...

    새로운 한 주 힘차게 시작합니다! 아자아자! 아리아리!

  7. 라일락 2020.08.10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포,추리,호러,SF 전혀 관심이 없어서 오늘은 한 글자도 안읽었네요~

  8. 김주이 2020.08.10 1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의 글만 읽는데 벌써 무섭네요^^;;
    후덜덜
    다들 시원한 여름 나시기를바랍니다.

  9. 아빠관장님 2020.08.10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은 읽었지만,
    저도 공포물은 사양합니다. 결코 무서워서는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10. 오달자 2020.08.10 16: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피디님 스포에 잠시 소름이 쫙.~~.
    역시 한여름엔 호러가 답인가요~~
    피디님의 실감나는 스포에 매료되어 호러물 싫어하는데...은근 궁금해지는 스토리입니다.

  11. 코코 2020.08.10 2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멈췄던 비가 지금 다시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합니다. 창가에 닿는 빗줄기가 조금씩 거세지네요. 때마침 피디님 글을 읽고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반가운 공포와 추리물~ 일단 13.67 부터 읽어야겠어요. 염소가 웃는 순간도 너무 기대돼요. 추천 감사합니다 피디님. ^_^

  12. 민둘레 2020.08.11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더웠는데 시원하게 해주시네요^^
    비 그치면 바짝 더울 거 같은데 여름 가기 전에 좀 많이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