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인 민서가 겨울방학에 읽을만한 책을 찾고 있어요. 민서는 <완득이>를 좋아합니다. 민서에게 물어봤어요. 
"<완득이>가 좋은 이유가 뭐야?"
"완득이는 라면을 원 없이 먹을 수 있어!"
네, 우리 집에서 라면은 금지 항목이거든요. ㅠㅠ ^^ 
아이와 책 이야기를 하면 엉뚱한 대목에서 빵 터집니다. 이때 저는 "그치? 완전 부럽지?"하고 맞장구만 쳐줍니다. 
"아니 <완득이>의 교훈이 '엄마가 없으면 라면을 마음껏 먹는다'가 아니잖아. 그 책은 말이야..." 어쩌구 저쩌구 잔소리를 하지 않아요. 그럼 민서는 저랑 더 이상 책 이야기를 안 할 테니까요.
<완득이>는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인데요. 민서에게 다른 수상작도 권하려고요. 언니가 좋아하는 <아몬드>도 좋고,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도 좋아요.

<페인트> (이희영 / 창비)

출생률이 자꾸 떨어지니까 국가에서 비상수단을 강구합니다. 육아와 교육이 힘들어서 출산을 포기한다면, 아이는 마음껏 낳아라. 정부에서 대신 키워줄게. 공공육아로 아이를 키우고요, 그렇게 자란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 부모를 선택해서 가정을 꾸리게 합니다. 매력적인 상상이지요? 부모는 양육에 들어갈 자원을 아끼고, 국가는 공공 육아를 통해 아이들에게 행복한 유년 시절을 제공합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건 아이가 직접 부모를 선택한다는 점이지요. 부모를 면접하고 점수를 매겨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소설에서 아이들이 부모 후보들을 만나 면접을 보고 점수를 매겨 선택하는 걸 '페인트'라고 불러요. Parent 페어런트, Paint 페인트.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로, 내 인생을 새로 칠할 수 있어요. 내 손으로 미래를 색칠할 수 있다면? 이 놀라운 가정을 놓고 이야기는 달려갑니다. 아이들은 어떤 부모를 원할까요? 책을 읽는 것은 타자의 이야기로 나를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저보고 어떤 부모를 선택하겠냐, 묻는다면 저는 자기감정에 솔직한 부모라고 답하겠어요.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사람은 싫어요.”
(77쪽)

'누군가 그랬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 인품이 드러난다고. 눈가에 잡힌 선명한 주름은 두 사람이 지금껏 얼마나 자주 미소를 지었는지 알려 주었다. 불거져 나온 손마디는 성실함을, 낡아 보이지만 깨끗하고 단정한 옷차림은 소박함을 증명했다.'

(150 쪽)

“아이는 절대 실험 대상도 연구 대상도 아닌데,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자신에게 맞추려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하잖아요. 여자아이 중에서 프릴 달린 원피스에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를 싫어하는 아이도 있지 않겠어요? 고작 열 살짜리가 억지로 간 발레 학원에서 발끝으로 온몸을 지탱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 끔찍한 일 아니에요?”
(107쪽)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사이다발언들이 많이 나옵니다. 반대로 부모입장에서 보면 아픈 말들이 많지요.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듯한 책입니다. 그것도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말이죠. 그렇다고 아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에요.

‘독립이란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떠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부모 역시 자녀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자녀가 오롯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부모에 대한 배신이 아닌 기쁨으로 여기는 것, 자녀로부터의 진정한 부모 독립 말이다.’

(160쪽)
 
이 책은 청소년 소설이지만 어른도 같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부모와 자녀가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게 ‘이어주는’ 책이거든요. 책을 읽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요. 저와 여동생은 어려서 아버지가 행사하는 가정 폭력, 어머니의 언어 폭력에 늘 괴로워했어요. 부모 없이 사는 게 어려울까, 말도 안 되는 부모 밑에서 사는 게 더 어려울까? 항상 그게 고민이었지요. 책을 읽다 작가의 말에서 위로와 힘을 얻었어요. 

'내 유년은 회색이었다. 흰색과 검은색 중에서 검은색이 더 많이 섞인 잿빛 회색. 나의 아이에게는 이런 색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노력한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사랑한다, 그저 사랑한다, 꾸준히 말할 수밖에. 누군가 내게 왜 청소년소설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런 이유를 들고 싶다. 유년 시절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라고.
소설 속에 나오는 것처럼 내 안에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와 놀아 주는 일이 나에겐 글쓰기다. 부모가 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이 바라는 아이로 만들려는 욕심보다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는 마음이 먼저다.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되어 가는 것이다. 아이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와 함께 놀고 즐기면 된다.'
   
(199쪽)

어린 시절, 저는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어른이 되는 게 무서웠어요.
매 맞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폭력 남편이 된다는 책 속의 경고는 제게 협박이었어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10대의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해 주고 싶습니다.
민지와 민서, 두 딸의 사진을 책갈피에 넣어서요. 
"부모는 네 마음대로 못 골라도, 이 아이들에게 네가 어떤 부모가 될 지는 너의 선택이다. 힘들면 책 속으로 달아나렴. 재미난 이야기를 읽다 문득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단다. 이 책이 그 좋은 증거야."
타임머신이 없어 과거의 나를 찾아갈 수 없기에, 나처럼 힘들어하고 있을 지금의 10대에게 간절한 소망을 담아 이 책을 권합니다.
아이와 부모가 이 책을 함께 읽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나는 이 아이에게 부모로 선택 받을 수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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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프리칸바이올렛 2019.11.29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에게 메워지지않는 부분을
    물론 사랑이였구 자식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였겠지만
    강요받은 자식이였던 저 역시 늘 아팠죠
    근데 제 자식에게도 어쩌면 그랬을 수도ㅠㅠㅠ

    지금이라도 제가 진정 행복한 선택들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 아이의 진정한 팬으로
    살아가려구요
    오늘은 날 위해 페인트를 읽으려해요


  3. 보리랑 2019.11.29 07: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 적을 기억하고 공감하는 작가님는 특별한 영혼이시네요. 나의 독립 위해 몸튼튼 마음튼튼 노력 중입니다. 고아인게 낫겠다 싶었지만 좋은 것만 기억하려 합니다. 소중한 나이니까요. 바르게 자라신 두분 남매님 꼬옥 안아드립니다.

  4. lovetax 2019.11.29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피디님^^ 작가의 말 그리고 피디님의 이야기를 통해 큰 위로를 받습니다! 저의 유년시절 역시 가정폭력, 이혼, 재혼, 이혼이란 아버지의 역사로인해 아빠 엄마 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 어떤 엄마 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고 혹은 상처의 치유를 위해 책을 통해서 공부하고 생각하고 위로받았고, 현재 다행히도 잘 살아가고 있어요.. 오늘 써 주신 글을 통해 무언지 모를 큰 위안을 얻었어요! 감사합니다^^

  5. 오달자 2019.11.29 0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모를 선택한다는 설정.이 기발한 책이네요.
    호기심이 확 도는 책입니다.

    "부모는 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되어가려는 것이다.
    아이를 가르치려하지말고 아이와 함께 놀고 즐기면 된다."

    적어도 저는 프릴달린 원피스에 에나멜 구두를 신기지 않은 엄마였기에 기본점수는 받은걸로 ~~ ㅎㅎ

  6. 책잇 2019.11.29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 저도 이 책을 읽으며

    진짜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어른들이 모여 함께 토론도 겸했는데....

    주변사람과 함께 읽고 토론하며

    부모인 우리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참 좋았습니다.

    역시 피디님 짱!!!!!!!이십니다.

  7. 섭섭이짱 2019.11.29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생각해보니 제 어린시절은 파란색이었던거 같아요.
    회색도 있겠지만 뭔가 강렬한 파란색으로 덧칠해져 회색은 희미해진거 같아요.
    아마도 내가 뭘 할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많이 주어져서 하고 싶은걸 맘껏 해서 그런거 같은 느낌이 ^^

    좋은 부모 되기는 참 어려운가봐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 쓰신 작가님도
    책 속에서 말하는 15점 부모보다 못할 때가 많고
    자신이 글을 쓸 때 까칠해져 아들이 자신의 책을 싫어한다고 했다네요. ^^;;;

    이 책도 읽을책 목록에 저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8. 파푸리카(papu) 2019.11.29 0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아 다시 생각해보게되네요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날이 진짜 올것같지않아요?
    그게 어느날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류가 부모와 자식의 연을 자연 선택에 따르는게 과연 맞는걸까?
    집단적으로 의문을 품고 불만이 표출되는 순간
    이게 바뀔것같아요
    순전히 제 생각이긴하지만 ㅋㅋ ...

  9. 2019.11.29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호산나 2019.11.29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애들과 읽고 이야기 나눴던 책이네요. 너는 엄마 선택할거야? 하고 물어볼때 좀 떨렸는데^^;;; 그럼~~~!!! 하고 대답해줘서 기뻤었죠.(애들이 사는 법을 일찍 깨우친걸 수도~)

  11. 힘껏배워늘푸른나 2019.11.29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생에선 알 수 없는 천상의 세계에서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해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태어나서 후회했겠죠..
    내가 왜 그랬을까..하며..ㅎㅎ

  12. 코코 2019.11.29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꼬꼬독의 책'페인트' 소개 영상 잘 봤습니다.^_^
    보면서 살짝 울컥 했어요.
    아이들이 자신을 보호할 힘이 없을 때 무방비 상태에서 받는
    어른의 언어적, 육체적 폭력의 세기를 알기 때문이것 같아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른들은 자신이 가한 폭력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피디님처럼 저도 어린시절 저에게 이 책을 선물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꼭 껴안아주고,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고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13. 아빠관장님 2019.11.29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왜 이러죠~ 부모와 관련된 무슨 날 인가요?^^ 저의 한 블로그 이웃도 좋은 부모(그중에서도 아빠)에 관한 큰 울림있는 글을 적으셨는데 피디님께서도 아주 일맥상통한 글을 올리셨네요!

    댓글도 '콘트롤 브이' 하겠습니다. 절대 귀찮아서 그러는ㅈ거 아닙니다!!!!!!! 네버!! 단지, 일맥상통해서리...

    큰 울림이 있는 글입니다... 한없이 부족한 한 남자가 어느순간 아빠가 되어 있더라고. 그것도 세 아이의 너무나 가진 것이 없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에게 줄 것 없는 것이 슬펐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신앙심과 독서 습관이었어요.. 부모가 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30 평생 없이 살던 믿음을 갖기 위해 기도했고, 30평생 안 읽던 책을 치열하게 읽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지금은 세 아이들에게 겨자씨만한 믿음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댓글을 이렇게 진지하게 적어 본 것이 참 오랜만이네요. 그만큼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4. 2019.11.29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5. summerlover 2019.11.29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어른으로 자라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

  16. 나겸맘 리하 2019.11.30 0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인트는 아직 못봤는데
    올려주신 글을 보니 상당히 의미심장하네요.
    완득이, 아몬드와 같이 거론되니 좋은 작품이 분명해 보입니다.^^
    내 인생을 새로 칠할, 페인트.
    피디님의 유년시절은 후에 읽으신 책들로 인해
    전혀 새롭게, 보다 멋지게 칠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17.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11.30 1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와 같은 생각이시군요. 아이를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들이 이 책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궁금해지네요.ㅎㅎ

  18. 김주이 2019.11.30 2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부모가 되는것
    매일 고민하고 노력하고 연습하지않으면 절대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19. 황준연 2019.12.03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님이 아니었다면 모를 뻔한 책이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읽고 부모가 되기 전에 준비해야겠어요 ㅎ

  20. 진화쟁이 2019.12.11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부모인지라 부모관점에서 보게 되었슴다. 만일 우리 자녀가 부모를 면접봐서 선택권이 있다면 다시 나를 선택할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보았네요. 부족하고 헛점이 많긴하지만 솔직하고 경청을 잘 해주니까 그래도 선택해줄거라 위안을 스스로 가지면서.
    하지만 세상이 좋아지더라도 자녀와 부모가 서로 선택하는 차가운 세상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가져보았어요. 이 세상은 모든 자녀가 믿고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는 한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21. 한정애 2019.12.14 1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으면서 믿줄긋고 싶은 부분이 얼마나 많던지...!!좋은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