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나는 한 미국인 앞에 앉아 배움을 구하고 있었다. 장소는 서강대 옆 '숨도 아카데미', 그 미국인은 죠나단 바필드라는 생태심리학자로서 '마음을 변화시키는 네가지 생각'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강의가 시작되자, 정좌하고 앉아있던 그는 우리에게 눈을 감고 이곳에 오게 된 인연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했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를 만나,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그래, 한번 생각해보자...

시작은 한 권의 책이다.

 


'과학 콘서트'를 읽고 정재승 박사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와우! 이렇게 멋진 과학자가 있었네?'

그러다 그분이 만든 '10월의 하늘'이라는 행사를 알게 되었다. '10월의 하늘'은 '오늘의 과학자가 내일의 과학자에게'라는 주제로, 평소에 문화나 과학을 접할 기회가 적은 지방 도서관에 과학자들이 찾아가는 강연 기부 프로그램이다. 
'와우! 이렇게 멋진 기회가 다 있네?'

그간 도서관에 진 빚도 갚을 겸, 나도 참여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과학자가 아니지 않은가? 뭐 그래도 일단 '10월의 하늘' 측에 들이대봤다. 과학자는 아니지만, 나도 끼워달라고. 밑져야 본전 아닌가? 인생은, 다 그런 식이다. 

그랬더니 강연 준비팀에서 연락이 왔다. 춘천 담작은 도서관에서 시각장애아동들을 대상으로 강연이 잡혀있는데, 할 수 있느냐고. 고민이 됐다. 드라마를 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드라마 이야기를 한다? 겁이 났다.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 내 고민은 오래 가지 않는다. 잘 할지, 못할지는,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그러니 일단 해보자고 결정한다. 내 인생은, 늘 그런 식이다.


그날 강의에 대해 솔직한 자평을 하자면, 많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앞을 볼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좀더 준비를 했어야 했다. 특히 나와 같이 강연한 이명현 박사님의 강의를 보니 더 부끄러웠다. 천문학자인 이명현 박사님은 평소 밤 하늘을 볼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손으로 만지는 우주'라는 점자책을 만들어오셨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태양계, 은하, 지구, 달의 모습을 손으로 만지게 했다. 
'와우! 이토록 멋진 박사님!'

 
사진 맨 왼쪽 기타 앞에 서 계신 분이 이명현 박사님이시다. '10월의 하늘' 강연이 끝나고, 서울에서 한 뒷풀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저 멀리 남해와 진도까지 내려가서 강연을 하고 온 과학자들은 밤10시가 되어서야 합류할 수 있었다. 진행팀에서는 그날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도서관을 찾아 강연을 한 과학자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는데, 뒤에 보이는 보드판에 그 선물들이 적혀있다. '김제동과의 산행 초대권', '나꼼수 콘서트 백스테이지 관람권', 'SBS 여자 아나운서와의 점심 식사권' 등등 대박 상품이 많았다.
'와우! 이토록 멋진 선물!'


이날 사회는 김제동 씨가 봤고,


이날의 노래 손님은 윤종신, 심현보, 원모어 찬스 등이었다.
'와우! 이런 초호화 강연 뒷풀이는 난생 처음일세!'

정말 많은 사람들의 재능 기부로 만들어진 멋진 하루였다. 나는 이명현 박사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박사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들었다. 그러다 박사님이 계시는 아태 이론 물리 센터에서 주최하는 '책대책'이라는 강연회를 접하게 되었다.
  


'불꽃 튀는 과학 명저들의 대격돌'이라니! 아태이론물리센터의 물리학자들에게 듣는 과학 강의가 무려 공짜다! YES24에서 신청만 하면 된다니!
'와우! 이토록 멋진 기회!'

   
이명현 박사님의 소개로 '책대책' 강연을 들으러 간 곳이, 서강대 옆 '숨도 아카데미'였다. 작고 아늑한 공간에서 차분히 우주의 신비에 대해 2시간 동안 심도깊은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와우! 이토록 멋진 공간!'
 
숨도 아카데미란 공간이 참 마음에 들어 이리 저리 둘러보다, 그곳에서 며칠 후 있을 강연회 포스터를 보았다.
 

 
포스터의 Admission Free(무료 입장)와 Lectures are given in English(영어 강의)라는 글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와우! 생태심리학자의 영어 강의를 공짜로?'


그래서 나는 지금 이곳에 앉아있게 된 것이다...
결국 나를 이 곳으로 이끈 것은 책, 사람, 장소와의 소중한 인연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한 건 별로 없다. '와우!'를 연발하며 경탄만 했을 뿐이다.

책을 읽고, 저자에 대해 찾아보고,
자격도 되지 않지만, 시켜달라고 졸라보고.
결국 잘 하지도 못했지만, 일단 해보겠다고 들이댄 것 뿐이다.

그 결과, 나는 정재승 박사님의 강연 기부 프로그램에 함께 할 수 있었고,
김제동 씨를 만나 그의 재담을 듣고, 윤종신과 그 친구들의 노래 공연을 감상하고,
이명현 박사님을 만나 또다른 배움의 장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과학 강연에 생태 강연을 덤으로! 

경탄하고, 들이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재미난 세상을 공짜로 즐길 수 있구나!

가끔 생각해본다. 
내 나이 마흔넷,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스무살때 알았더라면!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날아가,
그 시절, 불안해 하고 힘들어 하는 스무살의 내게 알려주고 싶다.
그렇게 힘들어하지 말고, 그냥 삶을 즐기라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하기보다, 그냥 현재에만 충실하라고...
 
하지만 이론물리학자님들께 여쭤보니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단다.
스무살의 김민식에게 알려줄 길은 없으니, 스무살의 여러분께 알려드린다.

항상 경탄하라! 와우! 
삶은 인연의 총합이다. 그대 스스로 짓는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경탄하고 실천하면, 언젠가 여러분도 이렇게 외치게 될 것이다.
"와우! 공짜로 즐기는 이토록 멋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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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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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미현 2011.11.19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 미움을 보태는데 제 가진것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와우! 이 세상에는 주변에 자기 것을 나누고 빛을 밝히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아직 학생신분이라고 많이 나누지 못하는 삶 사는 게 부끄러워지네요. 이렇게 하루하루 깨달음 주시니 와우!!!

  2. 2012.05.30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기댈언덕 2019.10.03 0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뉨~^^꼬꼬독서 자주보는 사이입니다 ㅋㅋ 열두발자국을 읽다가 정재승님 글을 당연히 쓰셨겠지 하고 검색~와우! 40살의 저도 14살의 저에게 돌아가기 못하지만 지금 제맘속에 그 아이를 위로해줄수는 있을것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 들이대는거 늦지않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