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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벼락치기로 성적을 올리는 비법

by 김민식pd 2011. 11. 25.
단기간에 성적을 올리는 비법이 있을까? 내 고교 내신등급은 15등급 중 7등급이다. 항상 성적은 중간이었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은 22등인데, 3학년 말에 본 학력고사 성적은 반에서 2등이었다. 6개월 사이에 22등이 2등으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리 아버지는 돈받고 애패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내 몸에 난 푸르딩딩한 매자국을 보고 '너네 아버지 뭐하시는 분이냐?'하고 물어보면 항상 그렇게 답했다. "우리 아버지는 애 때리는 프로야." 아버지는 울산공고 훈육주임이셨다. 거친 아이들을 거칠게 다루는데는 우리 아버지가 도사다. 아버지 손에 들어가면 어떤 사물이든 사랑의 매로 변신하고, 어떤 문제아라도 온순한 양처럼 변한다. 왜? 매 앞에는 장사 없으니까.

아버지는 의사 아들 만들려고 문과 적성인 나를 굳이 이과로 보냈다. 심성이 약해 피를 보는 것도 질색인데 의사가 웬말이냐. 가기 싫은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자니 성적이 날로 떨어졌다. 성적이 떨어지니, 몸에서 매가 떨어질 날도 없었다. 맞아죽기 싫어서라도 성적은 올려야겠는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하루는 맞다 맞다, 이러다 맞아 죽을 것 같아서 도망쳤다. 집에서 도망나왔는데, 매를 휘두르며 아버지가 쫓아나왔다. 잡히면 진짜 죽을 것 같아서 그 길로 울산역까지 가서 경주 삼촌집으로 도망갔다. 삼촌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공부 못한다고 애 때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를 보냈는데, 집에 와서 또 맞았다. 성적 때문이 아니라, 가출했다고... 

그 다음부터 아버지는 나를 때릴 때 옷을 벗기고 팬티만 남긴 채 때렸다. 팬티 바람에 도망갈 수는 없을테니까. 맞으면서 고민했다. 맞아 죽는게 나을까? 쪽팔려 죽는게 나을까? 쪽팔려 죽는 것보다는 맞아 죽는게 낫다는 결론을 낸것 같다. 팬티 바람에 도망간 적은 없으니까...

이러다 내가 맞아죽겠구나... 싶었던 고3 어느날, 아버지와 마주 앉아 담판을 지었다. 원치도 않는 의사를 하라고 하니 공부할 의욕도 안생긴다. 게다가 의대를 가려면 전교 1등을 해야하는데 그럴 자신은 없다. 그냥 반에서 5등안에 드는 것을 목표로 공부하겠다. 그러니 공대로 보내달라. 아버지도 때리다 지치셨는지, 아니면 포기하신건지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다. 하긴 반에서 22등 하는데 의사는 무슨 의사야.

3학년 2학기에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과 중에서 가장 문과에 가까운 과를 찾았다. 경영과 공업을 접목시킨 산업공학과란 과가 있더라. 그래, 산업공학과를 목표로 공부하자. 그 다음부터는 공부가 잘 되더라. 희망이 생기고, 의욕이 생겼다. 공부 잘하는 비결? 부모를 위해 공부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공부해야 한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 욕심을 위해 공부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절대 성적 안 오른다. 그리고 현실적인 목표를 잡아야한다. 전교 1등? 이런거 꿈꾸지 마라. 허황된 목표는 의욕만 떨어뜨린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공부하면 스트레스가 준다. 즐겁고 마음 편하게 공부하면 성적은 오른다.

그래서 나는 입시에 성공했나? 실은, 실패했다. 내 학력고사 성적으로 4년 전액 장학금이 나왔던 한양대 산업공학과에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내신 등급이 너무 낮아서... 할 수 없이 과거 광산학과라고 불리었던 자원공학과란 곳에 2지망으로 입학했다. 가보니 70명 중에 학력고사 점수로는 내가 2등이었다. 1등은 의대 쳤다가 떨어진 친구였고... 진짜 우울했다.  
 
원하던 학과에 떨어졌으니, 내 인생은 실패한건가? 아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때 입시 불합격이 내 인생에 가장 좋은 일이었다. 만약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면, 나는 즐겁게 공업 경영인의 길을 살았을 것이다. 그때 원치 않은 학과로 간 덕에, 나는 끊임없이 적성과 진로를 고민했다. 영업도 해보고 통역도 해보고... 그 결과 나이 30에 예능 PD도 되고... 나이 40에 드라마 피디로 전직도 한 것이다.. 난 이제 안다. 인생은 절대 20살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17살, 18살, 어린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제발 말리고 싶다. 인생은 너무나 길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 괴로운 시간도 지나고 나면 다 웃으며 추억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마음만 먹으면 성적 올릴 수 있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적이 오르지 않아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도,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스무살에 모든 게 결정나는 건 아니다. 지금은 죽을 것 같이 괴로워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믿고 조금만 버텨달라.  


'살아라! 죽지 말고 반드시 살아 돌아가라!'
이것이 황산벌에서의 마지막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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