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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by 김민식pd 2019. 6. 3.
2011년에 처음 블로그를 만들었을 때는, 피디 지망생을 위한 글을 많이 썼습니다. 연출가가 되기 위해서는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하는데, 단기간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이라 생각했기에, 블로그에 추천 도서 목록을 올렸지요. 그러다 피디 지망생이라는 협소한 독자층보다는, 더 많은 분들을 위한 공간을 꾸미자는 생각에 일반 독자를 위한 책 리뷰를 쓰게 되었어요. 오늘은 간만에 피디 지망생을 위한 책을 한 권 소개할까 합니다.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 (김보라 / 스리체어스)


문화연구를 전공한 저자는 영화감독 지망생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논문을 씁니다. 그 논문을 책으로 풀어냈어요. 예전에 좌천성 발령이 났을 때, 당분간 드라마를 만들지 않을 테니 그 시간 동안 야간대학원을 다니고 학위를 따라고 권하는 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등록금이 아까웠어요. 그래서 혼자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독학을 했지요. 나름 논문도 씁니다. 3년간 600권의 책을 읽고 3권의 책을 쓰는 것은 제가 개발한 짠돌이 석사 과정입니다. 등록금을 내는 대신, 인세를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교수님 추천으로 들어오는 일보다, 저자로 이름을 얻은 덕에 들어오는 일이 더 많습니다.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은 영화 감독 지망생의 삶을 다루는데요. 피디 지망생도 그렇고, 아나운서 지망생도 그렇지만, 영화감독 지망생의 삶도 참 힘들군요.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는 작품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요. 2015년 정부 조사 결과, 영화인 중 예술활동으로 버는 연간 수입은 중앙값 800만 원, 평균값 1876만 원이랍니다. 그렇게 일하고도 상업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에요. 영화감독을 꿈꾸는 삶은 힘들어요. 하지만 직장인 친구들을 보며, 그들라고 안정된 삶에 행복한 건 아니라고 느낍니다. 직장인 역시 비정규직이 되거나, 하우스 푸어가 되거나, 에듀 푸어가 되는 거죠. 감독 지망생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렇게 사나, 이렇게 사나 다 불안한데 왜 하고 싶은 걸 안 하고 살아요?"

영화 감독의 삶이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 잘해요, 영화감독은." 종환의 표현은 감독이라는 직업의 많은 것을 설명한다. 지망생들에게 감독은 예술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술적 감각은 기본적인 소양일 뿐, 감독은 더 나아가 관리자와 지도자로서의 책임까지도 맡아야 한다. 지망생들이 꼽은 감독의 조건은 크게 연출 능력, 사람들을 관리하는 능력, 컨트롤 능력까지 세 가지였다.'

(68쪽)


맞아요, 감독은 다 잘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아요. 피디로서 책을 꾸준히 읽는 이유? 저 자신도 불안하거든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주는 무게가 삶을 짓누르거든요. '언젠가 내가 현업에 복귀하면 여전히 좋은 연출로 일할 수 있을까?' 유배지에 있던 시절, 그런 의문이 항상 나를 괴롭혔어요. 그래서 매일 책을 읽으며 몰입으로 불안을 떨쳐내려고 했지요.      

그래도 오랜 세월, 피디로 살면서 터득한 게 하나 있어요. 대중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시청률은 알 수가 없어요. 대박이 날 것 같은 드라마가 망하기도 하고, 망할 것 같은 드라마가 의외의 히트를 치기도 해요. 그런 과정을 오랜 세월 지켜보다 내린 결론. 대중의 반응은 알 수가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에 집중하자. 그래서 책을 쓸 때도 부담이 줄었어요. 사람들의 반응을 알 수 없으니,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는 거지요.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려고 합니다.


'지망생들의 노동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비단 영화감독 지망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 꿈꾸는 이 세상 모든 청년들의 이야기다. 이 글이 수많은 영화감독 지망생들을 포함해 모든 준비의 과정에 있는 이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불안한 창의 노동의 장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분들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10쪽)

피디 지망생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어요. 힘든 순간을 보내는 이들을 위해, 작은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혼자 힘들지 않아요. 사는 건 누구나 다 힘들어요. 

경향신문의 책 서평 난에 실리는 정지혜 님의 책 처방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책 소개를 더 보시려면 아래 링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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