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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새로운 스승의 발견

by 김민식pd 2019. 6. 4.

1994년 여름,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저는 김용옥 선생님이 하시던 도올 서당에서 논어 강좌를 들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하며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 삶의 공부가 여러모로 부족한 것 같다는... 그때 도올 서당을 만난 건 행운이었지요. 학교의 울타리 밖에서 공부를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찾았거든요. 요즘 저는 도서관 학교를 찾아다니고, 거리의 인문학 강좌를 듣고, 고전 세미나에 등록합니다. 역시 공부는 스스로 마음을 내어 할 때, 즐거운 놀이가 되는 법입니다.

논어 원전 강독 세미나를 들으며, 한자 실력의 부족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다른 분들이 술술 읽을 때, 저는 훈을 몰라 더듬더듬 눈치만 봅니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뜻풀이를 해주실 때마다 무릎을 치며 감탄하지요. 한자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심에 <한자의 탄생> (탕누어 / 김태성 / 김영사)를 읽었어요. 

저자 소개를 읽다 다시 한 번 감탄합니다. ‘아, 역시 세상은 넓고 스승은 많구나.’ 


대만의 최고 학부인 국립대만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직업 독자 professional reader’를 자처하면서 열독과 열독 관련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집에 자기 책상이 없다는 이유로 매일 아침 타이베이 용캉제에 있는 단골 카페에 출근하여 커피 향기 속에서 오후 다섯 시까지 계속 책읽기와 글쓰기로 하루를 보낸다. 이처럼 그는 직업 자체가 독서와 사유이며, 경지에 오른 학문은 그에 따른 산물일 뿐이다.


첫 직장을 때려치운 후, 저는 평생을 책만 읽으며 살아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통역대학원에 들어간 후, SF 소설을 번역하며 살고 싶었어요. 시트콤 매니아가 되면서 삶의 진로가 바뀌긴 했지만요. 이젠 저도 탕누어처럼 살고 싶습니다. 직업 독자로. 평생 책을 읽는 사람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할 수 있으니까요. 


한자 공부를 위해 읽은 책인데요, 워낙 학문의 깊이가 심오한 분인지라 책은 은근히 어렵습니다. 어려운 한자가 참 많네요. 그래도 책을 읽다 반가운 대목이 있어요. 


나는 사람들에게 <논어>를 다시 읽을 것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대충 서른이 좀 넘어서 이 책을 읽게 되면 한편으로는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되어 규범적인 독서법을 잊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참신한 방법으로 새롭게 이 책을 대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처세술이 풍부해졌기 때문에 세상의 근심에 대해 갖가지 진실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논어>는 난세의 우환을 기록한 책이기도 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에 대한 열망이 전제돼야 한다.

문도가 아니라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 공자에게는 대단한 제자들이 적지 않았고, 그들의 능력과 성격, 그리고 단점이 각각 달랐던 점에서 스승이 대단히 겸손하고 평등하며 자신감이 넘치는 (이 세 가지는 종종 공존한다)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상력의 수준이 대단히 넓고 정확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기를 원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아지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210쪽)


공자님에 대한 참으로 탁월한 해석이군요. 모든 사람이 똑같기를 원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아지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는다. 삶의 지표로 삼아도 좋은 말씀이네요. 

스승은 어디에나 있어요. 수천 년 된 동양 고전 속에도 있고, 이웃 나라의 어느 커피숍에도 있어요. 저는 오늘도 도서관에 갑니다. 책 속에서 스승님을 찾으려고요. 나다운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책에서 답을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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