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책이 한권 있다. 한국 언론의 오보의 역사를 기록한 <뉴스와 거짓말>. 책을 쓴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는 이렇게 묻는다. “조작된 뉴스는 세상을 어떻게 망치는가?” 2012년에 친척 어르신이 내게 보낸 글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장기 파업을 벌이고 있는 MBC 노조는 불법 폭력을 저지르는 종북 좌파 빨갱이집단이다.” 그 글은 거짓 선동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사실 노조에 대해 가장 악의적인 거짓말을 한 건 바로 엠비시 뉴스였다.
2012년 5월, MBC의 ‘뉴스데스크’에서 정연국 앵커와 배현진 아나운서는 “권재홍 앵커가 퇴근하는 도중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어 당분간 방송 진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당시 MBC 기자회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권재홍과 조합원들 간에는 신체 접촉이 없었는데 권재홍 앵커는 어떻게 다친 걸까. 조합원들이 눈으로 레이저를 쏜 걸까?
기자회는 이 뉴스가 노조를 탄압할 명분을 찾기 위한 명백한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기자들이 자사 보도가 오보라고 주장한 초유의 사건이었다. 2013년 5월9일 1심 판결과 2014년 4월11일 2심 판결은 결과가 같았다. 재판부는 허위 보도를 인정하고 정정 보도와 2천만원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제 남은 건 대법원의 판결뿐이었다. 그러나 2015년 7월23일 대법원은 1, 2심 판결을 기각하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당시 김장겸 보도본부장은 양승태 대법원에서 양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2015년 대법원 판결 전날 ‘뉴스데스크’에서는 ‘대법원, 업무 과부하…상고법원이 대안이다?’라는 리포트가 나왔다. 정철운 기자는 책에서 김장겸 본부장과 양승태 대법원장이 재판과 언론 보도를 맞바꾸는 ‘검은 거래’를 한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을 제기한다.
2017년 봄 탄핵 정국 막바지에 김장겸 본부장은 사장이 된다. 뉴스를 망가뜨린 장본인이 사장에 선임된 데 대해 노조는 반대 투쟁을 시작했다. 그때 에스엔에스(SNS)에는 노조를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5년 동안 부역자로 잘 먹고 잘 살던 것들이 촛불혁명에 숟가락 얹으려고 나오는구나.” 그 글을 보고 느꼈다. MBC의 재건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을.
지난해 나는 7년 만에 드라마 연출로 업무에 복귀했다. 드라마를 만드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7년 간 현업에서 쫓겨나있는 동안, 나는 감각을 잃었고, MBC는 방송 시장에서 누리던 독과점 지위를 잃었다. 예능과 드라마의 경우에는 피디들이 MBC를 떠났고, 뉴스와 시사교양에선 시청자가 MBC를 떠났다. 신뢰의 위기와 시장의 변화가 쓰나미처럼 MBC를 덮쳤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공영방송을 지켜야하는 이유를 방송으로 보여줘야 한다.
지난 9일, 한국피디연합회가 주최하는 ‘한국피디대상’에서 MBC ‘피디수첩’은 ‘올해의 피디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시사교양국의 젊은 피디들은, 지난 한해 동안 정치, 종교, 언론 등 성역 없는 비판으로 이슈를 만들고, 특히 고 장자연의 죽음 이면에 가려져 있던 조선일보 사주 일가의 문제를 고발했다.
MBC에 봄이 찾아오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MBC는 언론이다. 언론은 어두운 시기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촛불이다. 요즘 MBC가 돋보이지 않는다면, 암흑의 시대를 밝히는 언론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는 탓이라 할 수 있다. 슬픈 건, 빛의 시대에 돋보이는 건 가짜 뉴스다. 대명천지에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만드는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 언론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거짓 뉴스의 폐해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정철운 기자의 책, <뉴스와 거짓말>을 권하고 싶다.
그나저나 김장겸 사장과 양승태 대법원이 서로 보도와 판결을 거래했다는 의혹을 보며, 궁금증을 떨칠 수 없다. “김장겸 사장님, 이거 순전히 우연의 일치인거죠?”
(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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