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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공공재를 망가뜨린 사람들

by 김민식pd 2019. 3. 15.

가끔 사람들에게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왜 요즘 MBC는 예전만 못할까요?' 저도 그게 참 궁금합니다. 공영방송으로서 MBC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거든요. 10여년 전만해도 MBC는 공영방송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황우석 사건을 다룬 PD수첩만 해도 그렇지요. 그 보도가 진실이면, 우리는 국가적 영웅을 죽인 셈이 되고, 보도가 거짓이라면, 우리는 국가의 영웅을 모함한 악당이 됩니다.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면 그런 보도는 못하지요. 그 방송이 나가고 1년 가까이 광고 수익이 급감하고 시청률이 폭락해서 거의 빈사 상태에 시달렸으니까요. 그럼에도 PD수첩이 그 보도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영방송으로서, 공공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고 믿었으니까요. 대중이 등을 돌린다 할 지라도 그것이 진실이라면 말해야 한다고요. 

그랬던 MBC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공공재로서 많이 망가집니다. 공공재란 모두의 재산입니다. 모두의 재산은 누구의 재산도 아니란 뜻이에요. JTBC나 tvN은 재벌 소유의 회사에요. 소유주가 있기에 내부 구성원이 함부로 경쟁력을 저하하면 바로 잘리거나 처벌을 받을 거예요. MBC나 KBS는 공공재입니다. 국민이 주인인 회사를, 권력에 뇌물로 헌납한 자들이 있어요. 

권력에 아부하는 정치부 기자를 방송사 사장으로 내정하고, 그 사장은 내부의 하수인들과 함께 방송이라는 공공재를 망가뜨립니다. 그 대가로 겨우 보직이니 해외특파원이니 하는 작은 콩고물을 얻어먹었지요. 반대하는 사람들은 해고 시키고, 공영방송 정상화를 부르짖은 노조도 탄압하고요.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피터 플레밍 / 박영준 / 한스미디어)에서 '공공재의 죽음'을 봤어요. 전세계적으로 공공재의 몰락이 일어났어요. '공공'이란 원래 아름다운 말이에요. 생존, 행복, 자유, 품위 있는 삶 등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합이지요. 내 운명은 다른 사람들의 운명과 함께 묶여 있으므로, 모든 사람은 서로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뜻이에요. 

'한때 '국가'와 '시민 사회'는 대중의 자치에 기반을 둔 공공의 수호자라고 생각되던 시절이 있었다. 불행히도 오늘날 그 두 가지 모두 공공의 적을 자처한다. 현대 사회가 신자유주의적 경제이론에 기반을 둔 이기적이고 잔혹한 개인주의자들의 천국이 되어버리면서 '공공의 이익'에 관련된 모든 것은 아예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위의 책 29쪽)

영국 경제학자가 쓴 책을 통해 저의 지난 10년을 설명할 수 있을 줄 몰랐어요. 그때는 나라가 왜 귀중한 공공재인 공중파 방송을 망가뜨리는데 앞장서는 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쳤다고 검찰이 나서서 제게 징역2년형을 구형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파업에 나선 MBC 노동자들을 보고 시민들도 조롱했어요. "니들이 싸우거나 말거나 신경 안 쓴다. 이제는 MBC 안 본다. 우리에게는 나꼼수/JTBC뉴스가 있으니까." 공공재가 무너져도 신자유주의 세상에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요. 대체하는 더 멋진 자본재가 있거든요. 그게 종편이든 케이블이든 유튜브든 팟캐스트든. 저자가 '파괴의 경제학'이라고 이름붙인 현상이 있어요.  2008년의 세계 경제 위기 이후 기업과 정부가 확산시킨 정책이지요. 

'첫째, 그들은 공동체 기반의 자원이나 경제적 활동을 포획하고 점령하는 데 중점을 둔다. 공공은 지난 20년 동안 기업들이 점령해온 사회의 영역들 속에서 마르지 않고 남아있는 가치의 마지막 저수지다. 

둘째, 기업과 국가는 약탈의 의식을 철저히 통제하고 보호한다. 

셋째, 경제적 수탈의 시대에서 모든 민주적 요소는 심한 경멸과 무시의 대상이 된다. 국가와 기업이 오늘날처럼 민주주의에 노골적인 증오를 드러낸 적은 없었다. 정부는 민주주의를 질병과 같이 기피하며, 이를 얄팍한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린다. 이는 2016년 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나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허구적 사실을 강요당하는 군중보다 더 심하게 권리를 침해당하는 사람들은 없다. 

넷째, 파괴의 경제학은 자신이 불러온 위기의 부정적 효과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1930년대의 글로벌 지배 계급이 대공황에 따른 경제 침체 속에서 거의 몰락했던 반면, 현대의 자본가들은 오히려 금융 위기를 틈타 착취, 포위, 독점 및 과점 등 다양한 수법으로 엄청난 부를 쌓아올렸다. 

결론적으로 파괴의 경제학은 민주적 책임의식을 저버린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체제다. 그들은 입으로는 성장과 일자리를 떠들어대면서도, 부도덕한 테크노크라트들과 폭력적인 권력가들의 보호하에 공공 영역에서 피를 빨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위의 책 75~80쪽 요약)


왜 공공재를 공격할까요? 사유재산은 빼앗을 수가 없으니까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이미 대부분의 자본은 재벌에게 넘어갔거든요. 빼먹을 게 없는 거죠. 그러니 주인 없는 공공재의 재산을 팔아먹습니다. 그래서 수자원공사가 빚을 지고, 포스코의 자산이 날아가고, 공영방송사의 경쟁력이 땅에 떨어진 거죠. 

'부도덕한 테크노크라트와 폭력적인 권력가들의' 공조 체제 안에서 망가져 버린 MBC. 이게 지난 10년 동안 공영방송 MBC가 무너진 내막입니다. 공공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합니다. 

MBC의 재건,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시스템을 복구하고, 공영성을 회복하고, 신뢰를 얻기 까지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 와중에도 바깥에서는 계속 빈정거림이 들려오겠지요. '공영방송, 필요없다'고. 한번 신뢰를 잃어버린 조직이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걸릴 겁니다. MBC 내부에 있는 직원들로서는, 힘든 시간이 계속 될 거예요. 그래도, 가야 합니다. 지켜야 합니다. 돈없고 힘없는 사람들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공공재라야 합니다. 

무너진 공영방송을 살리기 위해 힘쓰는 모든 사람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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