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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아이가 아니라 어른을 키운다

by 김민식pd 2019. 2. 25.

작년 12월 초에 <비커밍>(미셸 오바마 / 김명남 / 웅진지식하우스)을 구했어요. 미셸 오바마의 책은 당시 세계적으로 화제였지요. 집에 가져다 놓고 정작 읽지는 못하고 있었어요. 책을 쌓아 놓고 읽는 게 습관입니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 사놓고 한 두 달이 지나도록 읽지 못하는 책도 많아요. 아내가 오히려 저보다 먼저 이책을 읽었어요. 재미있다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도 책을 집어 들지 못했어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책이 꽤 두꺼워요. 560쪽이 넘어갑니다.

저는 가볍고 얇은 책을 가지고 다니며 전철에서 읽습니다. 가벼운 책 2권을 갖고 다닙니다. 그래야 읽던 책을 다 끝내도 다음 책으로 갈 수 있고요. 책이 재미없어도 갈아 탈 수 있어요. 읽을 책이 없거나 읽는 책이 재미없으면 하루 종일 불안해요. 금단증상이 오지요. ^^

그러다보니 두꺼운 책은 집에서 읽어요. 최근 몇 달, 저는 새 책 원고를 쓰느라 끙끙거리고 있어요. 집에서는 책 원고 작업 하느라 독서할 짬이 없어요. 전철에서만 책을 읽다보니 얇고 가벼운 책만 읽습니다. 그래서 밀린 독서가 김두식 선생님의 <법률가들>이에요. 주위에서 호평이 자자하지만, 690쪽이 넘는 볼륨 때문에 가방에 차마 넣지 못하고 있지요. 빨리 다음 책 원고를 마감하고, 독서의 세계에 풍덩! 빠지고 싶지만... 좋은 책을 자꾸 읽다보니, 제가 쓴 원고의 부족한 점이 자꾸 보여서 계속 고치고 있어요...     

미셸 오바마의 책을 보며, 궁금했어요. 흑인 여성으로 태어나 미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사람은 어려서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책에서 한 대목을 옮겨볼게요.


어머니는 오빠와 나를 한결같이 사랑했지만, 우리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목표는 우리를 바깥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늘 "난 아기가 아니라 어른을 키우는 거야"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규칙 대신 지침을 주었다. 그래서 오빠와 나는 10대 때도 통금이 없었다. 대신 부모님은 "몇 시에 귀가하는 게 좋을 것 같니?" 하고 물었고, 우리가 스스로 내린 결정을 지킬 것이라고 믿었다. 

요전 날 오빠가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오빠가 8학년 때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아이가 오빠더러 집에 놀러 오라고 초대했다. 부모님은 안 계실 테고 둘만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암시하면서 말이다. 

오빠는 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속으로 끙끙 앓았다. 기회를 생각하면 흥분되었지만, 그것은 부모님이 용납하지 않을 만큼 엉큼하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중략)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죄책감에 시달린 나머지, 결국 단둘이 집에 있게 된다는 계획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버럭 화내며 가지 말라고 하시겠지 하고 예상했다. 어쩌면 그래주기를 은근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어머니 방식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차분히 들어주었지만, 오빠가 내려야 할 결정을 대신 내려주지는 않았다.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오빠를 고민의 구렁텅이로 돌려보냈다. "네가 잘 생각해서 결정하렴." (중략)

어머니의 모든 행동과 말에는 자신이 우리를 어른으로 키웠다는 확신이 조용하고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의 결정은 자신이 내릴 일이었다. 오빠와 내 인생은 오빠와 내 것이지 어머니의 것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늘 그럴 터였다.

(<비커밍> 75쪽)


어린 시절, 늘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아버지에게 시달리면서 괴로웠어요. 어른으로 대접받은 적이 없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몇 년 전, 아버지는 나이 쉰이 된 아들에게 그랬어요. "너는 뭐가 못나서 회사에서 아직 부장도 못 다는 거냐? 너는 왜 직장 생활을 그렇게 바보같이 하는 거냐?" 그나마 제가 서울로 유학을 떠나온 덕분에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고교 시절, 위와 같은 고민 상담을 아버지에게 했다면 어땠을까요? 바로 혼 났을 거예요. 

"너는 평소에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니면 그런 소리를 듣는 거냐?" 결국 아버지에게 솔직히 말하지 않는 일이 늘어나겠지요. 아니, 아버지랑 이야기하는 일 자체가 줄어들 거예요. 

좋은 부모가 되는 일,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쉬운 실천이 있어요. 아이를 믿고 놔두는 일입니다. 아이의 삶에 대한 개입을 줄이는 일이에요. 그런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력을 다해 부모님으로부터 달아나야 해요. 자신의 삶을 찾아서. 

세상을 살며 가장 중요한 일, 그건 내가 나답게 되는 일이에요. 자식이 부모님답게 사는 게 정답은 아니에요.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지요.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 <비커밍>.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이 책에서 답을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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