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초에 <비커밍>(미셸 오바마 / 김명남 / 웅진지식하우스)을 구했어요. 미셸 오바마의 책은 당시 세계적으로 화제였지요. 집에 가져다 놓고 정작 읽지는 못하고 있었어요. 책을 쌓아 놓고 읽는 게 습관입니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 사놓고 한 두 달이 지나도록 읽지 못하는 책도 많아요. 아내가 오히려 저보다 먼저 이책을 읽었어요. 재미있다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도 책을 집어 들지 못했어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책이 꽤 두꺼워요. 560쪽이 넘어갑니다.

저는 가볍고 얇은 책을 가지고 다니며 전철에서 읽습니다. 가벼운 책 2권을 갖고 다닙니다. 그래야 읽던 책을 다 끝내도 다음 책으로 갈 수 있고요. 책이 재미없어도 갈아 탈 수 있어요. 읽을 책이 없거나 읽는 책이 재미없으면 하루 종일 불안해요. 금단증상이 오지요. ^^

그러다보니 두꺼운 책은 집에서 읽어요. 최근 몇 달, 저는 새 책 원고를 쓰느라 끙끙거리고 있어요. 집에서는 책 원고 작업 하느라 독서할 짬이 없어요. 전철에서만 책을 읽다보니 얇고 가벼운 책만 읽습니다. 그래서 밀린 독서가 김두식 선생님의 <법률가들>이에요. 주위에서 호평이 자자하지만, 690쪽이 넘는 볼륨 때문에 가방에 차마 넣지 못하고 있지요. 빨리 다음 책 원고를 마감하고, 독서의 세계에 풍덩! 빠지고 싶지만... 좋은 책을 자꾸 읽다보니, 제가 쓴 원고의 부족한 점이 자꾸 보여서 계속 고치고 있어요...     

미셸 오바마의 책을 보며, 궁금했어요. 흑인 여성으로 태어나 미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사람은 어려서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책에서 한 대목을 옮겨볼게요.


어머니는 오빠와 나를 한결같이 사랑했지만, 우리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목표는 우리를 바깥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늘 "난 아기가 아니라 어른을 키우는 거야"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규칙 대신 지침을 주었다. 그래서 오빠와 나는 10대 때도 통금이 없었다. 대신 부모님은 "몇 시에 귀가하는 게 좋을 것 같니?" 하고 물었고, 우리가 스스로 내린 결정을 지킬 것이라고 믿었다. 

요전 날 오빠가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오빠가 8학년 때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아이가 오빠더러 집에 놀러 오라고 초대했다. 부모님은 안 계실 테고 둘만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암시하면서 말이다. 

오빠는 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속으로 끙끙 앓았다. 기회를 생각하면 흥분되었지만, 그것은 부모님이 용납하지 않을 만큼 엉큼하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중략)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죄책감에 시달린 나머지, 결국 단둘이 집에 있게 된다는 계획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버럭 화내며 가지 말라고 하시겠지 하고 예상했다. 어쩌면 그래주기를 은근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어머니 방식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차분히 들어주었지만, 오빠가 내려야 할 결정을 대신 내려주지는 않았다.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오빠를 고민의 구렁텅이로 돌려보냈다. "네가 잘 생각해서 결정하렴." (중략)

어머니의 모든 행동과 말에는 자신이 우리를 어른으로 키웠다는 확신이 조용하고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의 결정은 자신이 내릴 일이었다. 오빠와 내 인생은 오빠와 내 것이지 어머니의 것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늘 그럴 터였다.

(<비커밍> 75쪽)


어린 시절, 늘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아버지에게 시달리면서 괴로웠어요. 어른으로 대접받은 적이 없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몇 년 전, 아버지는 나이 쉰이 된 아들에게 그랬어요. "너는 뭐가 못나서 회사에서 아직 부장도 못 다는 거냐? 너는 왜 직장 생활을 그렇게 바보같이 하는 거냐?" 그나마 제가 서울로 유학을 떠나온 덕분에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고교 시절, 위와 같은 고민 상담을 아버지에게 했다면 어땠을까요? 바로 혼 났을 거예요. 

"너는 평소에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니면 그런 소리를 듣는 거냐?" 결국 아버지에게 솔직히 말하지 않는 일이 늘어나겠지요. 아니, 아버지랑 이야기하는 일 자체가 줄어들 거예요. 

좋은 부모가 되는 일,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쉬운 실천이 있어요. 아이를 믿고 놔두는 일입니다. 아이의 삶에 대한 개입을 줄이는 일이에요. 그런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력을 다해 부모님으로부터 달아나야 해요. 자신의 삶을 찾아서. 

세상을 살며 가장 중요한 일, 그건 내가 나답게 되는 일이에요. 자식이 부모님답게 사는 게 정답은 아니에요.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지요.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 <비커밍>.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이 책에서 답을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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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또기 쭘마 2019.02.25 0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딩,중딩,초딩6학년을 키우고 있는
    제가 꼭 읽어봐야 할 책인 것 같네요.

    이번 겨울방학에 특히 고등학교2학년인 딸을 보며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이제 2년 있으면 성인인데 내가 딸을 대하는 태도가
    아직 초딩을 대하는것 같은 부분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딸아이 앞에서는 '너가 알아서 해'했다가도
    못믿덥고 불안한 마음에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으니
    우울해지더라구요.
    그런데 이것도 시간이 약인가 봐요.
    점점 익숙해지니 제 마음의 평온도 다시 찾아오고 있습니다.ㅎㅎ

  2. 꿈트리숲 2019.02.25 07: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밑줄 빡빡 그은 부분이에요.
    여자로서 어떻게 살지,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등
    도움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고, 성취와 좌절도 함께
    기뻐하고 공유하다보면 관계가 절로 좋아지는 것
    같아요. 그럼 부모를 계속 찾게 되고요.

    제가 부모로 잘 성장하는 것도, 아이가 아이답게
    크는 것도 알고 보면 참 쉬운 일인데. . . 너무 먼
    길 돌아서 오지 않게 책에서 알려줘서 참 좋네요.~~

  3. 보리랑 2019.02.25 0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마가 우리엄마라서 좋아~ 자기여정을 가고 있다 믿고 싶지만 때론 찔립니다. 너무 해준게 없어서; 새 원고 쓰시느라 끙끙대고 책읽을 시간 없는 도전과 성장 응원합니다.

  4. 아리아리짱 2019.02.25 0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PD님 아리아리!
    우와~!
    저도 꿈트리숲님 블로그보고 읽기 목록에 추가 했었는데, 딸이 이 책 읽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한글버젼과 영어버젼 두권 구입해서 딸과 읽고 있어요.
    저는 웬만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꼭 필요하고 되새기고 싶은 책만 구입합니다.(책장 채워짐이 뿌듯 했는데 이젠 너무 많아 져서, 미니멀 라이프에 부담스러워요)
    초반부 읽고 있는데 문장이 간결하고 솔직한 표현들이 쉽고 재미있어요.
    '아이를 믿고 놔두기' '믿고 맡기기' 가장 좋은 자식 교육 방식인데, 이것이 제일 어러워요!
    그래도 노~오력!

  5. 제경어뭉 2019.02.25 0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당장읽어봐야하는 책이네여!!! 오늘도 좋은정보 감사해여~ 피디님 행복한하루되세여^^

  6. 브릭 2019.02.25 0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책 속에 답이 있군요. 아이 키우며 갈대처럼 왔다갔다 팔랑거렸는데 중심이 탁~ 잡히는 듯 합니다. 감사해요^^~

  7. 황금돼지 2019.02.25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책 소개 감사합니다.^^
    피디님의 다음 책도 기대 되네요~

  8. 인풋팍팍 2019.02.25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흐 저희 어머님도 결혼하고 아이도 있고 그런 제게 늘 지적하세요
    예전엔 왜 이렇게 날 높이평가하시나... 아니면 그렇게 내가 못낫나.. 화도 나고
    전화오면 날카롭게 대꾸하고 그랬는데..

    이젠... 그러려니해요

    한편으로는 화목하고.. 분위기 좋은 친정엄마를 둔 사람들을 보면 무척 부럽고
    무슨 친정엄마 찬스 하며 선물받았다, 엄마덕분에 쉰다.. 그런글 보면 멍~해지기도 하지만..

    요즘은 살짝 마음이 바뀌고 있어요
    그게... 지인의 장례식장에 갔다온 뒤로 그렇게 됐어요...

    엄마가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에 그냥.. 감사하기로
    없어지면 너~~무 허전할 것 같아서요..

    피디님 글에 부장도 못달고 있냐는 그 말투가 느무느무 익숙한 목소리여서
    글 남겨봅니다~~

  9. 다이천사 2019.02.25 1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10. 섭섭이짱 2019.02.25 1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아이를 믿고 기다려준다는 말씀..
    정말 중요한 얘기같아요.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저에게 뭘 할때
    저한테 결정권을 많이 주셨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러다보니 일찍 제 꿈을 찾을 수 있었던거 같네요.

    우연히 주말에 교육 관련 방송도 보고
    글도 읽었는데요.
    짧지만 강렬한 글이 있어 공유해봅니다.

    ---------------------------------
    단열단상 2816 ... 교육이란 것

    한국 영어 유치원에
    핀란드 학부모가 왔다

    상담을 마치고
    네살짜리가 끈 운동화를 신는데
    쪼물락 쪼물락 10분이 걸리도록
    엄마가 팔짱끼고 기다려 준다

    스카이캐슬은
    지 랄 을 해도 2등이고

    핀란드 교육은
    아무것도 안 해도 1등인 이유

    기다릴 줄 모르면
    아이들을 망친다

    내 버려 둘 줄 모르면
    아이 일생을 망친다

    <문단열 페이스북 글중 >
    --------------------------------

    감사합니다.


    p.s ) 츤토쿠는 <법률가들> 책 제목이 눈이 확 가네요.
    오늘은 2권 책을 소개받은 느낌이에요.. 장바구니로 고고고


  11. 쭈돌이아빠 2019.02.25 1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가 아닌 어른을 키운다. 규칙이 아닌 지침을 준다.
    정말 대단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피디님 처럼 지방에서 아주 엄격하고 체벌이 당연하다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전혀 다른 교육 방식이네요.
    그렇다고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아버지 또한 비슷한 교육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그렇다고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아닙니다.
    오늘도 좋은 글 읽고 갑니다.

  12.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02.25 17: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력을 다해 부모님으로부터 달아나야 해요. 자신의 삶을 찾아서."

    여러분 죄책감 갖지 말고,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아서 떠나보는 게 어떨까요? 그게 모두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13. 혜린 2019.02.25 1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앤롤링도 하버드 졸업식 축사에서 “지금 네 인생에 대해서 부모님 탓을 하는 것에는 정해진 만기가 있다”라는 말을 했어요. 본인은 고전 영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돈이 되는 전공을 하라는 부모님의 요구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현대 언어학(modern languages)을 선택하게 되었다고요. 그렇다고 하더라고 어느 순간이 지나면 부모님을 비난하는 것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라는 얘긴데요. 피디님도 전에 서른 이상이 되면 부모의 탓을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를 하셨던 것 같아요. 서른 중반이 넘어서도 문득문득 우리 부모님이 좀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무책임한 투정을 하곤했던 제가 부끄럽게 느껴지네요. 또한 그런 환경에서 스스로 부모로부터 독립하고자하는 생각을 하셨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책의 힘일까요?^^ 남은 저녁도 편안하시길!

  14. 은하수 2019.02.25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위의 시선보다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제 마음대로 못하고 산게 많았던 것 같아요.
    정작 저는 괜찮은데 부모님이 더한 걱정을 하실까봐...
    제 깜냥이 그것 밖에 안되면서 부모님 핑계를 대는 것이었을테지만요.
    그래서 저는 제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크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엄마 아빠 말씀 보다 책 말씀 따라 살으라구요.

    가족들로부터 상처가 되는 말을 들으면 저 같으면 생각과 행동의 반경이 확 줄어들고 의기소침해질 것 같은데, pd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굳건한 길을 가실 수 있는 것도 책을 많이 읽으신 영향이 큰 것 같아요.

    pd님이 계셔서 저도 하루 하루 용기내며 살고 있습니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섭섭이짱님의 핀란드 학부모 이야기도 감사합니다.

  15. 샘이깊은물 2019.02.25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 지적, 평가, 충고를 일삼는 사람에게는 정이 뚝 떨어지면서 점점 입을 닫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말들은 부모가 아이에게 하기가 참 쉬워요. “안 돼.” “이렇게 해.”
    때로는 적절한 훈육이 필요한 때와 자율성을 존중해주어야 할 때가 좀 헷갈리기도 합니다. 그 둘의 경계를 알아차리고 가이드라인은 주되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줄래요. 결국은 아이가 주인이 되어야 할 삶이니까요.

  16. 은데미 2019.02.26 15: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아들하고 얘기하다가 그만 감정적으로 대하고 말았네요 결국 대화가 안 된다며 뛰쳐 나가버렸어요
    아이를 믿고 기다려줘야되지만 저에 인내심부족으로 그만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네요
    오늘의 교훈을 되새기며 또 다시 반복되지 않게 훈련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