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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독서광 김민서

by 김민식pd 2019. 3. 8.

그러니까, 오늘 글의 주인공은 저의 늦둥이 둘째딸 김민서입니다. 처자식 자랑하면 된다는 팔불출, 오늘 제가 한번 되어 보려고요. 우리 민서는 독서광입니다. 책을 정말 많이 읽습니다. 겨울 방학 동안 거의 매일 동네 도서관에서 살았어요. 제가 꿈꾸던 육아입니다. ‘아이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나는 옆에서 책을 쓴다.’

민서가 책을 좋아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알 수 없어요. 민서가 아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저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줬거든요. 아빠의 저음 바리톤에 복중 태아가 반응한다는 걸 듣고 첫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그랬어요. 아내의 불룩한 배에다 대고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하고, 책을 읽어줬어요. 제가 그러는 걸 보고 민지도 엄마 뱃속에 있는 동생에게 말을 걸곤 했지요. 신기한 건 그럴 때마다 뱃속의 아기가 툭툭 발로 차면서 반응을 보여요. 불룩한 아내의 배에서 일부분이 쓰윽 일어나는 걸 보는 건 정말 신기했어요.

아이가 태어난 후,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줬어요. 아이가 그림책에 관심을 보이는 서너 살 때부터는 매일 밤 열 권 정도의 책을 가지고 가서 잠자리로 갑니다. 아이에게 표지를 펼쳐 보이고 고르라고 해요. 아이가 고른 책을 읽어줍니다. "읽어줄 책 네가 가서 골라와."라고 하면 그것도 숙제 같아요. 아빠가 골라간 책 중에서 아이가 고르기만 하는 편이 훨씬 더 수월합니다. 아이가 고민하는 시간도 줄고, 아빠의 추천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어요. 최종 선택은 아이에게 맡깁니다. 그래야 자기 주도 독서거든요. 제가 골라간 책을 아이가 다 퇴짜를 놓을 때도 있어요. 그럼 다시 새 책들을 뽑아옵니다. 부모 욕심에 위인전이나 교훈적인 이야기를 억지로 골라도 안 됩니다. 그럼 책 읽기의 재미는 사라지고, 독서가 숙제처럼 느껴져요. 책읽기가 놀이가 되어야 커서도 혼자 책을 읽습니다. 

집에 아무리 책이 많아도, 이렇게 매일 밤 다섯 권씩 소리 내어 읽어주면 결국 읽은 책을 또 읽어야 합니다. 이때 아빠가 싫증을 내면 안 돼요. 아이가 고른 책을 무조건 읽어줘요. 수십 번 반복한 책이라도 아이가 읽어 달라하면 읽어줍니다. 아이들은 반복을 좋아해요. 가끔씩 애드리브를 섞어서 새로운 재미를 더하는 것도 요령입니다. 그림에는 있지만,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는 엑스트라가 갑자기 말을 하면 아이가 좋아 합니다. 저의 경우, 방귀를 끼거나 배변 활동을 하는 엑스트라를 집어넣습니다. 아이가 뒤집어집니다. ^^ 

아이가 책을 읽고 있을 땐 절대 방해하지 않습니다. “마루에 어질러놓은 거 치워.” 라든가 “숙제 먼저 하고 책 읽지?” 이러지 않아요. 아이가 게임을 할 때는 잔소리를 합니다. 게임을 하지 말라는 잔소리는 아니에요. 게임은 저도 합니다. 그 재미난 걸 무조건 못하게 해서는 안 되지요. 숙제는 했는지 물어보고, 할 일을 했는지, 언제까지 게임을 할 건지 물어봅니다. 대신 책을 읽을 때는 절대 방해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은근한 메시지를 보내는 거지요. ‘독서는 마음껏 즐겨도 좋다, 단 게임이나 동영상 시청은 그렇지 않아.’ 

책에 관련한 활동을 할 때는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제공합니다. 아이랑 영화 본 후, 근처 교보문고에 책을 보러 갈 때도 많은데요. 그런 날은 좀 비싸도 매장 내에 있는 폴 바셋 아이스크림을 사줍니다. (평소엔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하면 무조건 편의점에 가서 1+1을 사서 하나씩 나눠 먹습니다.) 아이에겐 메시지가 되겠지요. ‘아, 교보문고에 가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겠구나.’ 아이에게 서점에 가자고 하면 좋아라하고 따라 나섭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도 그래요. 만약 토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지낸다면 오전 10시 반에는 꼭 구내매점에 들러 간식을 먹습니다. 이때는 아이가 사달라는 건 군말 없이 다 사줍니다. 다음부터는 도서관 가자고 하면 신나서 쫓아옵니다. 편의점에서 군것질할 요량으로.    

영어 조기 교육 대신 아이 독서 지도를 권합니다. 20년 후,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자동 통역 프로그램이 나올지도 몰라요. 하지만 책을 읽는 능력은 그 시대가 되어서도 빛을 발할 겁니다. 당장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 공부를 하려고 해도 국어 실력이 뛰어난 아이가 유리할 테니까요. 

휴대폰 탓인지, 책을 읽는 아이가 갈수록 드물어요. 다들 게임을 하고 동영상을 보며 놉니다. 이때 책을 읽는 아이는 분명 경쟁력이 있어요. 무엇보다 영어 조기 교육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지만, 독서 지도는 부모가 직접 할 수 있어요. 책을 읽는 즐거움은 아이와 부모가 함께 누리는 추억이 됩니다. 영어 공부는 아이에게 스트레스지만, 독서 활동은 아이에게 즐거움이에요. 영어 학원은 돈이 들지만, 도서관 나들이는 돈이 들지 않아요. 영어와 독서 중,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혹 아이가 어린 나이에 방학 영어 캠프나 조기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하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보여주세요. ‘응, 영어는 나중에 네가 어른이 되어 필요성을 느끼면, 그때 해도 늦지 않아.’ 하고요. '아빠가 절대 학원비가 아까워서 이러는 게 아니란다.' ^^)


예전에 민서가 직접 고른 동화책 24권 리스트를 올린 적이 있는대요. 다시 한번 공유합니다.


청소부 토끼 (한호진)

산타 할아버지 (레이먼드 브릭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존 버닝햄)

깃털없는 기러기 보르카 (존 버닝햄)

칫과의사 드소토 선생님 (윌리엄 스타이그)

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그건 내 조끼야 (나카에 요시오)

고함쟁이 엄마 (요타 바우어)

괴물 그루팔로 (줄리아 도날드슨)

생쥐와 빵집 주인 (로빈 자네스)

줄리어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 (케빈 행크스)

피아노 치기는 지겨워 (바비드 칼리)

고릴라 (앤터니 브라운)

이럴 수 있는 거야? (페터 쉐소우)

구름빵 (백희나)

루비의 소원 (S Y 브리지스)

날마다 석냥 (김경화)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 (케빈 행크스)

꽁지 닷발 주둥이 닷발 (양승현)

안나의 빨간 외투 (해리엇 지퍼트)

야옹이 (미아니시 다쓰야)



(영화 신청하신 분들, 오늘 저녁 7시 이수역 아트나인에서 뵐게요. 7시 30분 정시 상영이라, 일찍 오시는 편을 권해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더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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