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오늘 글의 주인공은 저의 늦둥이 둘째딸 김민서입니다. 처자식 자랑하면 된다는 팔불출, 오늘 제가 한번 되어 보려고요. 우리 민서는 독서광입니다. 책을 정말 많이 읽습니다. 겨울 방학 동안 거의 매일 동네 도서관에서 살았어요. 제가 꿈꾸던 육아입니다. ‘아이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나는 옆에서 책을 쓴다.’

민서가 책을 좋아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알 수 없어요. 민서가 아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저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줬거든요. 아빠의 저음 바리톤에 복중 태아가 반응한다는 걸 듣고 첫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그랬어요. 아내의 불룩한 배에다 대고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하고, 책을 읽어줬어요. 제가 그러는 걸 보고 민지도 엄마 뱃속에 있는 동생에게 말을 걸곤 했지요. 신기한 건 그럴 때마다 뱃속의 아기가 툭툭 발로 차면서 반응을 보여요. 불룩한 아내의 배에서 일부분이 쓰윽 일어나는 걸 보는 건 정말 신기했어요.

아이가 태어난 후,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줬어요. 아이가 그림책에 관심을 보이는 서너 살 때부터는 매일 밤 열 권 정도의 책을 가지고 가서 잠자리로 갑니다. 아이에게 표지를 펼쳐 보이고 고르라고 해요. 아이가 고른 책을 읽어줍니다. "읽어줄 책 네가 가서 골라와."라고 하면 그것도 숙제 같아요. 아빠가 골라간 책 중에서 아이가 고르기만 하는 편이 훨씬 더 수월합니다. 아이가 고민하는 시간도 줄고, 아빠의 추천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어요. 최종 선택은 아이에게 맡깁니다. 그래야 자기 주도 독서거든요. 제가 골라간 책을 아이가 다 퇴짜를 놓을 때도 있어요. 그럼 다시 새 책들을 뽑아옵니다. 부모 욕심에 위인전이나 교훈적인 이야기를 억지로 골라도 안 됩니다. 그럼 책 읽기의 재미는 사라지고, 독서가 숙제처럼 느껴져요. 책읽기가 놀이가 되어야 커서도 혼자 책을 읽습니다. 

집에 아무리 책이 많아도, 이렇게 매일 밤 다섯 권씩 소리 내어 읽어주면 결국 읽은 책을 또 읽어야 합니다. 이때 아빠가 싫증을 내면 안 돼요. 아이가 고른 책을 무조건 읽어줘요. 수십 번 반복한 책이라도 아이가 읽어 달라하면 읽어줍니다. 아이들은 반복을 좋아해요. 가끔씩 애드리브를 섞어서 새로운 재미를 더하는 것도 요령입니다. 그림에는 있지만,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는 엑스트라가 갑자기 말을 하면 아이가 좋아 합니다. 저의 경우, 방귀를 끼거나 배변 활동을 하는 엑스트라를 집어넣습니다. 아이가 뒤집어집니다. ^^ 

아이가 책을 읽고 있을 땐 절대 방해하지 않습니다. “마루에 어질러놓은 거 치워.” 라든가 “숙제 먼저 하고 책 읽지?” 이러지 않아요. 아이가 게임을 할 때는 잔소리를 합니다. 게임을 하지 말라는 잔소리는 아니에요. 게임은 저도 합니다. 그 재미난 걸 무조건 못하게 해서는 안 되지요. 숙제는 했는지 물어보고, 할 일을 했는지, 언제까지 게임을 할 건지 물어봅니다. 대신 책을 읽을 때는 절대 방해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은근한 메시지를 보내는 거지요. ‘독서는 마음껏 즐겨도 좋다, 단 게임이나 동영상 시청은 그렇지 않아.’ 

책에 관련한 활동을 할 때는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제공합니다. 아이랑 영화 본 후, 근처 교보문고에 책을 보러 갈 때도 많은데요. 그런 날은 좀 비싸도 매장 내에 있는 폴 바셋 아이스크림을 사줍니다. (평소엔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하면 무조건 편의점에 가서 1+1을 사서 하나씩 나눠 먹습니다.) 아이에겐 메시지가 되겠지요. ‘아, 교보문고에 가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겠구나.’ 아이에게 서점에 가자고 하면 좋아라하고 따라 나섭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도 그래요. 만약 토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지낸다면 오전 10시 반에는 꼭 구내매점에 들러 간식을 먹습니다. 이때는 아이가 사달라는 건 군말 없이 다 사줍니다. 다음부터는 도서관 가자고 하면 신나서 쫓아옵니다. 편의점에서 군것질할 요량으로.    

영어 조기 교육 대신 아이 독서 지도를 권합니다. 20년 후,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자동 통역 프로그램이 나올지도 몰라요. 하지만 책을 읽는 능력은 그 시대가 되어서도 빛을 발할 겁니다. 당장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 공부를 하려고 해도 국어 실력이 뛰어난 아이가 유리할 테니까요. 

휴대폰 탓인지, 책을 읽는 아이가 갈수록 드물어요. 다들 게임을 하고 동영상을 보며 놉니다. 이때 책을 읽는 아이는 분명 경쟁력이 있어요. 무엇보다 영어 조기 교육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지만, 독서 지도는 부모가 직접 할 수 있어요. 책을 읽는 즐거움은 아이와 부모가 함께 누리는 추억이 됩니다. 영어 공부는 아이에게 스트레스지만, 독서 활동은 아이에게 즐거움이에요. 영어 학원은 돈이 들지만, 도서관 나들이는 돈이 들지 않아요. 영어와 독서 중,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혹 아이가 어린 나이에 방학 영어 캠프나 조기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하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보여주세요. ‘응, 영어는 나중에 네가 어른이 되어 필요성을 느끼면, 그때 해도 늦지 않아.’ 하고요. '아빠가 절대 학원비가 아까워서 이러는 게 아니란다.' ^^)


예전에 민서가 직접 고른 동화책 24권 리스트를 올린 적이 있는대요. 다시 한번 공유합니다.


청소부 토끼 (한호진)

산타 할아버지 (레이먼드 브릭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존 버닝햄)

깃털없는 기러기 보르카 (존 버닝햄)

칫과의사 드소토 선생님 (윌리엄 스타이그)

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그건 내 조끼야 (나카에 요시오)

고함쟁이 엄마 (요타 바우어)

괴물 그루팔로 (줄리아 도날드슨)

생쥐와 빵집 주인 (로빈 자네스)

줄리어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 (케빈 행크스)

피아노 치기는 지겨워 (바비드 칼리)

고릴라 (앤터니 브라운)

이럴 수 있는 거야? (페터 쉐소우)

구름빵 (백희나)

루비의 소원 (S Y 브리지스)

날마다 석냥 (김경화)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 (케빈 행크스)

꽁지 닷발 주둥이 닷발 (양승현)

안나의 빨간 외투 (해리엇 지퍼트)

야옹이 (미아니시 다쓰야)



(영화 신청하신 분들, 오늘 저녁 7시 이수역 아트나인에서 뵐게요. 7시 30분 정시 상영이라, 일찍 오시는 편을 권해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더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짠돌이 육아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린이과학관 나들이  (15) 2019.05.15
자녀와의 스마트폰 갈등  (16) 2019.03.29
독서광 김민서  (25) 2019.03.08
아이가 아니라 어른을 키운다  (16) 2019.02.25
초등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학습 습관  (19) 2019.02.13
아이랑 영화 보기  (8) 2018.12.19
Posted by 김민식p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김수정 2019.03.08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이 매일 밤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신 노력의 결과가
    '독서광 김민서'라는 결실로 나타났군요^^
    너무 피곤한 날은 아이들이 책 읽어달라고 하면
    대충, 빨리, 페이지 두 장씩 넘겨 가면서, 짜증도 약간 섞어 읽어주었는데
    진심으로 반성합니다ㅠㅠ
    똥 얘기 방구 얘기 섞어 각색은 못할 망정
    정성스레 사랑을 담아 읽어주어야겠어요!

  3. 아리아리짱 2019.03.08 0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그죠! 책읽기 습관 들이기가 가장 좋은 육아교육인것 공감합니다.
    저도 애들 어릴때 매일밤 함께 동화 읽은것이 아이들에게 큰도움이 된듯합니다.
    싸부님 육아방법을 젊은 아빠들이 많이 따라하면좋겠어요.

    부산 롯데 씨네마에 주말 <칠곡 가시나들>이 많이 열렸어요. 많이보러 갑시다.
    오늘 서울분들 김피디님이랑 좋은 시간되세요!

  4. 고고맘 2019.03.08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의 프렌즈가 된(제 기준이기는 하지만)지 얼마 되지않아 양심상 영화 신청을하지 못? 안 했네요. 다음에 무슨 이벤트라도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석하려고요. 오늘 영화보시는 분들 부럽슴당~~

  5. 영어 2019.03.08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감사합니다. 5살,2살 사내 둘 키우고 있는데,
    책을 둘 다 잘 안봐요.
    오늘 말씀대로 방구도 소리내며 한번 시도해봐야겠어요.
    아, 이렇게 하는거군요!

  6. 인풋팍팍 2019.03.08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스크림!! 매점 간식!!
    명심할게요 ㅋㅋ...

    저의 아이는 자기전에 무슨심뽀인지 꼭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데
    자기싫어서 그런가 싶어서 '오늘은 그만 ~자자' 가 저의 주 멘트.

    그럼 안되겠네요-.-;;;;;;

  7. 아날로그 2019.03.08 1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에 작가님 책을 읽고 느낀봐가 있어 올해 사이버로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요,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네요. 오늘 영화 정말로 보고싶었는데 일과 겹쳐서 신청을 못했어요. 가시는분들 재밌게 보시고요, 아직 독서광 만들 아이가 없어서 지금은 못하지만 육아일기도 미리 미리 공부해 두겠습니다.^^ 항상 좋은글 고맙습니다~~

  8. 세라피나 장 2019.03.08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루를

    허리 똑바로 세우고
    활기차게 살도록

    많은 동기부여와 자극을 주심에
    감사&감사 드립니다

    고통과 자존감 아픔이
    반복되는 일터에서

    요즘 느끼는 고민들은
    자녀가 공부 잘하는 것보다

    사회 나가서
    악랄한 인간들 밑에서
    독종들 밑에서

    견디는 힘을
    길러주는 무언가가

    촘촘하게 길러져야 한다고
    절실히 생각...


    나도 책 읽고
    노안이라 조금 게으름 피웠던거

    다시 새록새록
    올려보고

    자녀랑 함께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녀2명이
    큰아이 재수
    작은아이 고등1학년 입학

    시간이 많이 부족하니
    저라도
    줄기차게 읽는 모습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블로그 글도
    알차지만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습관의 저력들이 대단한
    내공 가지신들 분이라

    그분들 글들도
    어느날

    꼼꼼히 챙겨보니
    피와 살이 가득 되네요...


  9. 러브엘 2019.03.08 1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독서육아에 관심을 갖고있습니다.
    자녀를 생각하는 힘이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고 그러기위해서는 독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먼저 아이의 가장 좋은 장난감은 책이라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새로운 놀이감을 사줄때 늘 책을 사주고 함께 책을 봤어요.
    29개월 된 아들은 지금도 아침 저녁으로 늘 책을 읽어달라고 합니다.
    아이에게 같은 책을, 많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주는 일이 쉽지많은 않더라고요.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읽고 다시한번 저를 다잡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책을 읽어줘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 2019.03.08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보리랑 2019.03.08 1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서와 글쓰기. 요즘 인재의 조건이라네요~ 당근이 달린 서점과 도서관이였네요ㅎ

    제욕심에 영어동화 위주로 읽어줬지만, 아이가 원하는 책을 성대모사 해가며 읽어주고, 아무 공부도 시키지 않아서인지 두딸다 어려운 책도 잘 읽는 성년이 되었답니다.

  12. 동글동글 라이프 2019.03.08 1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글이도 책이랑 친하게 지내고 지냈으면 해서 무릎에 앉혀놓고 주인공이 살아난듯이 실감나게 읽어주려고 하고 있는데 조금 더 크면 본인이 스스로 책을 읽을 날이 오겠지요?
    민서의 북리스트 잘 챙겨뒀다가 동글이에게도 요런책 어때? 하고 권해주고 싶어졌네요^^
    따뜻하고 좋은 글 고마운 마음으로 잘 읽고 갑니다~

  13. 샘이깊은물 2019.03.08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방해하지 않는 것, 인센티브를 주는 것...책읽기의 재미가 온몸에 스며들고 책에 대한 애정이 싹트도록요.
    아이와 책을 고르고 다정하게 앉아 읽어주는 시간을 사랑해요. 리듬이나 소리, 몸짓을 곁들이고 아이의 반응에 따라 이야기가 풍성해지기도 하는 그 모든 것들을요. 아이가 제법 크더라도 오래도록 읽어 주고 싶어요. 아이가 엄마와 함께했던 풍경을 떠올렸을 때 책으로 펼쳐졌던 시간이 그려지기를, 그 따스함이 몸의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14. 2019.03.09 0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5. 녹색마녀 2019.05.15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소부토끼!! 아이보다 제가 더 좋아하는 책이에요. 아이가 책을 많이 보고 즐기는데, 영어 시작할때라는 주변부들 말에 흔들리네요..

  16. 바람이 머무는 뜰 2019.06.18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님!
    작가님은 글만 재미나게 잘 쓰시는게 아니시네요.
    아이들이 정말 행복할거 같아요.
    작가님이 아빠라서...
    저는 재미난 엄마는 아니지만
    책을 많이 읽어줬던 엄마는 맞는거 같아요.
    아들이 지금도 책을 좋아하고 글 쓰는것도 좋아하는
    청년이 되었어요.
    잘해준거라곤 책은 재밌다는걸 알려준거 밖에 없네요.
    나머진, 고함쟁이 엄마였죠. ㅋㅋ

  17. 순우맘 2019.08.16 1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들이 초등2학년인데 어릴때 책 더 읽어달라고 할 때 더 읽어줄걸... 하는 후회가 크네요.. 지금이라도 열심히 독서육아에 힘을 내 보겠습니다. 구독하려고 회원가입까지 했네요~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18. 젊줌마j 2019.08.18 0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와 같이 앉아서 많은책을 읽으셨네요 ^^
    주말에 아이와 머하고 놀아줄지 고민됬는데 독서육아 도움 되었어요 !

  19. 애벌레 2019.11.26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서에 취미가 생기기까지
    요런 꿀팁들이 필요한데
    전 너무 건조하게만 접근했네요 ㅋㅋㅋㅋ

  20. 아지루시 2020.04.02 0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나 지혜롭고 사랑스러운 아버지세요 *ㅁ* 초면에 이런 평가(?)가 무례가 될수도 있지만 도저히 말씀드리지 아니할수가 없네요 ㅎㅎㅎㅎ 평가가 아닌 감탄으로 받아들여주세요 응원합니다 ♥

  21. 책으로 성장하는 영혼 2021.01.21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영어책 한권 외워봤니를 읽고 이곳까지 오게되었습니다. 너무 존경스러워서 글 남깁니다.
    너무 도움되는 꿀팁들을 많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어공부만이 아닌 독서 육아 삶등을 많이 배웠습니다. 너무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고 저는 선생님께 책을 두권 선물 하고싶어요. 010-8931-5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