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세계여행

이즈미르의 쉬린제 마을

by 김민식pd 2019. 1. 3.
2018 터키 여행 7일차


로마 시대 유적지인 에페수스를 보려고 셀축에 왔는데요. 에페수스만 보고 가기는 아쉬워 근처 작은 도시를 구경하려 합니다. 검색을 통해 고른 곳은 쉬린제와 쿠사다시. 터키의 버스 터미널에 가면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고요. 목적지가 버스 정면에 크게 써있습니다. 버스비는 현금으로 내요. 4리라 800원. (여행을 다녀보면 한국의 후불식 교통 카드와 버스 도착 안내 시스템이 그리워요. ^^)

셀축에서 7킬로, 버스로 20분 걸리는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아기자기한 산 속 마을이에요. 눈에 띄는 이정표가 없어 어디로 가야할지 애매하네요. 이럴 땐 어떻게 할까요?

저는 기념품 가게가 있는 골목길을 따라 걷습니다. 양옆으로 가게가 즐비한 거리를 걷다보면 어디든 통하거든요. 한국도 그렇지않나요? 산에파전 가게가 줄지어 서있는 길을 따라 가면 등산로가 나옵니다. 가게가 많다는 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이동 동선이라는 뜻이거든요. 

산비탈에 층층이 서 있는 테라스 하우스. 

작고 오래된 두 집 위에 연결 공간을 만들어 호텔로 개조한 공간

예전에 일밤에서 <러브하우스>를 연출한 때 어느 디자이너가 그랬어요. 네모 반듯한 평지에 지은 집은 재미가 없다고. 건물을 더 멋있게 만드는 건, 높은 언덕이나 작은 평수나 환경의 제약이라고요.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요? 

겨울에 쓸 땔감을 담 옆에 쌓아뒀어요. 우리도 예전에 광에 연탄을 쌓는 걸로 월동 준비를 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뒷골목을 산책하 화덕에서 벽돌을 굽는 아주머니를 봤어요.

다시 보니, 벽돌이 아니라 빵이네요. 오랜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이 반가웠어요.  

마을 입구에서 테라스 하우스 배경으로 사진 찍고, 노천 카페에서 잠시 놀다 떠났다면 이런 풍경을 못 보겠지요. 오래된 집에서 장작을 때고, 화덕에 빵을 굽는다는 건, 아직 불편을 감수하며 산다는 겁니다. 보기에 예쁜 오래된 집에서 살려면 그런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빵 굽는 모습이 신기해서 가만히 구경하고 섰더니 '하나줄까?' 하십니다. 손사래치고 웃으며 물러났어요.

근처에서 휴대폰으로 여행기를 메모하는데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카트를 가지고 아주머니가 구운 빵을 가져와 노점에 진열합니다.

물어보니 하나에 6리라, 1200원 하는군요. 하나 샀어요. 꽤 무거운데 한아름 품에 안고 있으니 따듯합니다. 


사람 머리만큼 큰 빵입니다. 아직도 따끈따끈 화덕의 온기를 품고 있어 빵을 품에 안고 앉아 멍하니 빵의 온기를 누립니다. 
'너의 온기를 내게도 나눠주렴.'

빵 맛은 살짝 낯설어요. 단 맛도 짠 맛도 없어요. 올리브나 식초, 혹은 버터랑 먹어야하는데 그냥 맨 빵만 먹으니 맛은 없군요. 마치 된장, 고추장, 아무런 반찬 없이 깡보리밥 먹는 느낌이랄까요?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마을 청년들이 나무를 하고 있어요.

깊은 산속에 있어 자급자족하는 습관이 길들었나봐요. 자연에서 모든 걸 얻습니다. 땔감도, 식량도. 

깊은 산 속에 어쩌다 이런 예쁜 마을이 생긴 걸까요?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여기에 터전을 처음 꾸린 건 15세기에 자유의 몸이 된 그리스 노예들이었답니다. 그들은 산속에 집을 지으며,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려고 마을 이름을 시르킨제 (못생긴 마을)Çirkince (Ugliness)라고 지었대요. 1926년에 이즈미르의 도지사가 이름을 바꿉니다. 쉬린제 (예쁜 마을) Şirince (Pleasantness)라고.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은 정반대의 이름.

해방 노예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산 속에 숨어 만든 마을 쉬린제. 선조들이 고생해서 마을의 터를 닦은 덕을 후손들이 보네요. 도지사의 탁월한 작명도 한몫했고요. 대만의 지우펀이 생각나는 마을이에요.

내가 있는 곳은 낙원일까요, 지옥일까요? 이름짓기에 따라 가지 않을까요?

다음엔 쿠사다시 여행기로 찾아올게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