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축 호텔에서 일어나 걸어서 에페수스 유적까지 갑니다. 터미널에 가면 버스도 있지만, 버스를 타면 중간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못 보거든요.
규모가 200 x 425미터인데요. 높이 20미터 기둥 127개 중 하나만 남았어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는데, 지금은 황량한 폐허의 흔적만 남았어요. 이곳은 로마 시대, 이 지역의 수도로서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어요. 배를 타고 장사하는 무역상들은 상선의 안전을 여신에게 빌었겠지요.
이곳에 최초로 신전이 건설된 건 BC 625년의 일이랍니다.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친 BC 6세기 동전이 이곳에서 발견되기도 했구요.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도보 20분 거리에 에페수스가 있습니다. 한때 로마 시대, 지역 경제의 중심지였던 도시입니다. 놀라운 건 그 규모입니다.
24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극장입니다. 무대 위에 까만 점이 사람입니다. 당시 인구 규모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하게 큰 극장이지요. 로마 시대의 문화를 엿보게 해주는 장소입니다.
관중석입니다. 로마의 콜롯세움을 봐도 그렇고, 당시에 사람들은 함께 모여 무언가를 보며 놀았나봐요.
마을이나 도시 단위로 즐기던 문화를 바꾼 것은 TV의 등장이지요. TV는 문화를 가족 단위의 여흥으로 쪼갰고요. 스티브 잡스가 만든 모바일 폰은 여흥의 주체를 다시 개인으로 나눴습니다.
에페수스 유적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셀수스 도서관입니다. 서기 2세기에 지은 도서관인데요. 서기 260년의 화재로 도서관은 파괴되었으나 건물 정면은 손상되지 않은 덕에 이렇게 원형 그대로 남았어요. 높이 16미터, 넓이 21미터의 석조 건축물입니다.
2000년 전에도 사람들은 공연을 올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어요. 공연 감상과 독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취미인가 봐요. ^^
당대에는 얼마나 화려한 도시였을까요?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아고라 장터입니다. 문화와 상업이 융성했던 이곳은 유명한 대리석 산지기도 했어요. 나중에 이스탄불에 갔을 때, 박물관에서 에페수스 산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을 많이 봤어요.
하드리안 신전이에요. 2세기에 지어진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기리는 건축물이지요. 하드리아누스는 로마의 식민지였던 스페인 출신의 황제랍니다. 외국인을 황제로 받들었다는 점에서 로마제국의 강점이 드러나지요.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질 때 위대한 제국이 탄생하거든요. 기업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경쟁력은 다양성의 포용이라고 믿습니다.
오데온이라 하여 의회 모임이 주최되던 장소입니다. 귀족과 평민 출신의 집정관이 시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로마 시대의 정치 이야기는 소설로도 많이 나와있지요. <로마인 이야기>를 즐겨 읽는 분은 이곳에 오면 좋을 것 같아요. 로마 시대 생활상이 눈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에페수스를 보고 나면 로마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 것이고요.
론리 플래닛을 보니 에페수스에 갈 때는, 숙소에 있는 가이드북을 빌려 가라고 하더군요. 호텔 리셉션 데스크 옆에 에페수스 가이드북이 각 나라 언어별로 다 있고, 그중 한국어판도 있기에 반가웠어요.
호텔에 있는 가이드북이에요. 낡았지만, 도움이 됩니다. 에페수스 올 때 빌려서 가져와서 현지에서 사진과 설명을 함께 보면 굳이 가이드를 돈주고 고용할 필요는 없더라는... 모든 걸 책으로 공부하는 여행자...^^
책을 보며 건물에 얽힌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습니다. 번역한 사람이 텍스트만 작업했는지 사진 레이아웃과 맞지않아 혼동되는 수가 있어요. 전체 지도와 현재 위치, 설명을 중복확인하는 번거로움이 있지요. 역시 출판에는 편집자가 중요하다는... 그냥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역시 문화유산은 역사를 알고 봐야 더 재미있군요.
중국인 단체 여행객을 이끌며, 유창한 중국어로 설명하는 터키인 가이드를 만났어요. 시장 변화에 무척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인가봐요. 지난 10년 사이, 해외 여행자 중 가장 빠르게 느는 게 중국 여행자입니다. 당분간 관광산업의 가장 큰 수요는 중국일 것 같습니다. 중국어를 하는 터키 가이드라면, 당분간 수입도 많이 올릴 수 있겠지요. 새로운 언어를 빨리 익히는 것은 확실히 일하는데 있어 경쟁력이 됩니다.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문명의 기원을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 찾는데요. 에페수스는 헬레니즘과 로마 유적을 동시에 간직한 곳입니다. 역사나 문화유산을 좋아하시는 분에게 강추!
혼자 여행하신다면, 가급적 이른 아침에 찾으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낮이 되면 덥구요. 해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요. 유적 보호 차원에서 편의 시설을 따로 짓지는 않거든요. 인근 도시에서 아이들이 단체로 체험학습 옵니다. 11시가 넘으면 꽤 붐비더군요. 일찍 가서 고느적한 로마 시대의 유적을 느긋하게 보는 편을 권합니다.
지난 10월에 다녀온 여행기를 12월에 쓰고 있어요. 여행 다녀온 직후에 글을 쓰기보다, 시간이 지난 후, 천천히 다시 돌아보는 걸 좋아합니다. 제 인생의 경험을 시간의 체로 걸러봅니다. 그럼 남는 것과 잊혀지는 것 사이, 자연스런 구분이 생깁니다.
폐허가 된 제국의 유적을 보며,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고민해봅니다. 내 인생에서 무엇이 남을까요? 올 한 해, 내가 한 일 중 무엇이 남을까요?
하루의 일과 중 가장 남기고 싶은 일을 블로그에 올립니다. 매년 수백편의 글이 쌓이고 그 중 가장 남기고 싶은 글을 모아 책을 내지요. 매년 한 권씩 책을 써서, 평생 수십권의 책을 낸다면 그 중 시간을 견디는 책도 나올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건 다른 이들의 평가에 달린 일이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꾸준히 하루하루 쓰는 일입니다.
몇십년을 버티지 못하고 불에 탄 대도서관, 몇 백년을 견디지 못하고 폐허가 된 도시를 생각합니다. 무엇이 남을 지 알 수 없기에, 일단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려고 합니다. 운명은 시간에게 맡기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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