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리 플래닛에 나온 가이드북 중에 <World - 세계>가 있어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221개국에 대한 전체적인 소개가 담긴 책이에요. 세계일주를 꿈꾸는 여행자를 위한 궁극의 책이지요. 이 책에서 터키 편을 찾습니다.
나라별로 추천 여행지 10곳을 소개하는데요. 터키편을 찾아봤어요. 1위가 카파도키아, 2위가 이스탄불, 3위가 에페수스네요.
에페수스 : 터키의 유적지 중 가장 유명한 곳이라고 나와있는데, 부끄럽게도 저는 에페수스라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봐요. 책의 효용이 여기에 있지요.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거든요. 아마 책이 아니었다면,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만 갔을 거예요.
여행을 갈 때 그나라 여행지 탑 텐을 다 보려고 하지는 않아요. 세 개를 보는 게 목표입니다. 열흘 여행이면, 3개 도시를 도는 게 저에겐 맞더라고요. 도시 하나 당 2,3일, 도시간 이동에 각각 하루 씩. 그래서 오늘은 에페수스를 가려고 합니다.
아침 6시 반, 공항으로 가는 픽업 차량을 기다립니다. 같은 숙소에서 머무는 네덜란드 할아버지 둘을 만났어요. 커다란 셰퍼드 개랑 앵무새를 데리고 여행 다니고 있어요.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붙잡고 묻는군요.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 것 같냐고. 지구상에 남아있는 마지막 냉전 지역에 살다보니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이럴 때 저는 보통 씩 웃습니다.
"Peace is cheaper than war."
터키 내 이동으로는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합니다.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에페수스, 각 도시간의 이동이 버스나 기차로 12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이럴 때 저는 그냥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합니다. 비행기로는 한 두 시간이면 되니까요. 카파도키아가 있는 카이세리 공항에서, 셀죽 근교 대도시 이즈미르까지 비행기를 타고 갑니다.
에어비앤비로 셀죽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어요. 셀죽이 에페수스가 있는 도시거든요. 공항에 내려 셀죽까지 버스나 기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물어봐도 영어를 아는 이가 없네요. 괴레메는 관광지라 어디를 가든 영어가 통했는데, 이즈미르는 지하철까지 있는 대도시라 공항에서 만난 대부분이 터키 현지인이에요. 영어를 하는 이가 의외로 적어요.
이미지 파일로 저장해둔 에어비앤비의 지도를 보니 숙소 근처에 Seljuk belediyesi라는 건물이 있어요. Seljuk은 제가 가려는 도시 이름이에요. 건물에 도시명이 들어가는 건 우체국이나 시청 등 관공서지요. 론리플래닛 책자의 지도를 펼쳐봅니다. 영문판이라 지도에 영어로 표기되어 있는데, 셀죽 town hall 에 belediyesi 라고 적혀있어요. 즉 '벨레디예시'가 터키어로 시청인 거죠. 두 장소를 겹치면 셀죽 지도에서 숙소 위치가 나옵니다. 다섯 블록이군요. 캐리어를 끌고 이동할 만합니다.
여행을 다니는 건 꼭 방탈출 게임 같아요. 공항을 탈출해 다른 도시에 있는 호텔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낯선 표지판과 낯선 기호를 단서삼아 추리를 합니다.
전 이런 놀이가 재미있어요. 공항에서 숙소까지 기차 타고 가는데 요금이 6리라 1200원입니다. 호텔 픽업은 50유로를 불렀거든요. 머리 좀 쓰고, 발품 팔아서 6만5천원을 아꼈네요. 이럴 땐 놀면서 돈 버는 기분이에요.
기차를 타고 가는데 터키인들의 친절에 절로 미소가 나왔어요. 풍경을 보려고 미리 일어나서 통로에 나왔는데 마침 기차가 섭니다. 승객들이 다들 여기는 정차장이 아니라고 손을 흔들어요. 아이란이라는 터키식 요구르트 팔던 직원까지 달려나옵니다. 셀주크는 조금 더 가야 한다고.
생각해보니, 이슬람을 국교로 삼는 나라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다들 온순하고 친절합니다. 그럼 IS 테러리스트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유럽에서 일어난 테러는 대부분 외로운 늑대, 말그대로 외로운 자생적 테러리스트라고 합니다.
종교가 폭력적인게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환경이 폭력적인 거죠. 독일이나 영국 등 이민자 가정에서 은근한 차별속에 자랍니다. 이민자 가정이라 기득권이 없고 대대로 물려받은 부동산 등의 자산이 없어요. 부모 세대는 고향에서 겪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 만족하고 삽니다. 하지만 자식 세대는 태어나서 본거라곤 험한 일을 하고도 가난한 부모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자신의 운명입니다. '이번 생은 망했어.' 라고 생각하는데 누군가 접근하는 거죠. 현세의 괴로움을 끝내고 순교를 통해 내세에서 천국을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테러리스트를 만드는 건,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가르침이 아니라 서구 자본주의의 빈부격차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터키 여행은, 이슬람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을 깨는 기회였어요. 어쩜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우리가 접해보지 못한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녁은 간만에 밥을 먹고 싶어 아시안 요리점에 왔어요. 가장 만만한 닭고기 볶음밥을 시킵니다. 20리라 (4천원).
밥을 먹는데 고양이가 어슬렁거려요. 치킨 라이스 시킨줄 아나?
참을성을 가지고 계속 지켜봅니다.
음... 마음 약해지네...
또 이렇게 하루가 갑니다.
에페수스 여행기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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