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Sunset Lover's Hill'을 오릅니다. 6시 20분에 언덕을 올라 보니 계곡 아래쪽에서 부지런히 열기구를 덥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납작한 3층 건물 높이의 풍선에 조금씩 더운 바람을 불어넣어 부풀리는데요. 가스로 불을 붙일 때마다 풍선이 환하게 빛나는 모습이 신기해요.
인내를 요하는 작업이더군요. 승객이 오기 전에 미리 와서 바람을 불어넣는 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5인 1조로 일하는데요. 열기구를 조종하는 사람이 있고요,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이 있고요, 일꾼이 셋 있습니다. 착륙할 때, 열기구 조종사와 트럭 조종사가 서로 호흡을 잘 맞춰야하고, 내려오는 기구를 붙들어 트럭 캐리어 위에 단번에 올려야합니다. 열기구가 워낙 크고 무거워서 캐리어에 올리는 건 힘들어요. 처음부터 캐리어 위에 착륙하는 게 기술입니다.
수많은 풍선이 하늘에 떠올랐어요. 열기구 여행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인간은 참 얼마나 대단한가...
처음 시도한 이는 두렵지 않았을까요? 풍선에 바람이 새면 어떡하지? 바람에 날려 어딘가로 가서 부딪히면 어떡하지? 줄이 끊어지면 어떡하지?
죽을 듯이 무서웠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낸 사람이 몇 있었겠지요.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날겠다고 했던 이들이. 분명 미친 짓이라고 흉 본 이도 있을 거고요. 기술이 미진했던 초기에는 실제로 죽은 이도 있을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해냅니다.
지하도시도 그렇고, 열기구도 그렇고, 인간의 집념은 참 위대합니다.
두려움없이 하늘을 나는 여행자들의 선택이, 카파도키아를 열기구 여행의 명소로 만들었어요.
예전에 전쟁이 과학기술의 발달을 이끌었어요.
평화의 시대, 유희를 즐기는 인간의 즐거움이 기술발달을 가져올 것입니다.
지상에서 트럭 운전사가 풍선을 보고 쫓아갑니다. 착륙 직전에 차를 가져다놔야 캐리어에 바로 실을 수 있으니까요. 한참 쫓아갔는데 엉뚱한 기구라면 낭패겠지요. 결국 서로 차별성을 가진, 다양한 개성을 지닌 디자인과 색상이 선호되는 이유입니다. 편의성이 디자인의 다양화를 불러왔어요.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풍선이 하늘을 수놓는 이유입니다.
숙소에서 매일 아침 5분을 걸어 올라가면 열기구가 뜨는 모습을 언덕 위에서 볼 수 있어요. 가격은 2인실 1박에 3만 5천원. 이렇게 싸고 좋은 숙소를 찾은 건 에어비앤비의 리뷰 덕분이지요.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남긴 리뷰를 봤는데요. 하나같이 이 숙소의 위치가 좋다고 하더군요.
2011년에 네팔 포카라를 여행할 때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쫓겨난 적이 있어요. 트레킹 상품을 권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터무니없이 비싸더라고요. 다른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니, 바로 짐싸서 나가라고 하더군요.
쫓겨나서 더 싸고 더 좋은 숙소를 찾았지만 불쾌한 기억이지요. 요즘은 이런 일이 줄었어요. 그렇게 했다가는 트립어드바이저나 에어비앤비에서 평판이 나빠지거든요. 여행자들을 향한 갑질이 줄었지요. 기술의 진보 덕에 여행의 즐거움이 날로 늘고 있어요.
열기구 조종은 높낮이만 컨트롤할 수 있어요. 방향은 바람에 맡겨야 해요. 끈기와 참을성이 필요합니다. 가고싶은 곳을 가는게 아니라 바람이 이끄는 대로 가니까요.
어쩌면 이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우리는 단지 성실하게 노력할 뿐이지요. 인생의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어요. 빠르게 오르고 싶은 욕심에 급하게 불을 지피면 안됩니다. 채 펴지지 않은 풍선에 구멍이 날 수 있고, 열에 녹은 풍선은 사고의 위험이 있어요. 서서히 부풀어오르기를 오래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은 날이 흐려 일출을 못 봐요. 해가 땅에 길게 그리는 '요정의 굴뚝' Fairy's chimney의 그림자도 못 봅니다. 게다가 바람이 세어 뜨자마자 괴레메 마을 위로 날아간 풍선도 많아요. 레드밸리 위로 간 풍선이 몇 없더군요. 사흘 연속 열기구 여행을 지켜 보니 뜻대로 되는 게 아닌 걸 알겠어요. 어쩌겠어요. 주는 대로 받아서 즐기는 게 인생인 걸.
아침 먹고 레드 투어 갑니다.
맨 처음 들른 곳은 우치사라는 바위성입니다. 1600년 전 로마 제국 시절에 만든 요새랍니다.
암석에 구멍을 뚫어 집으로도 쓰고, 교회로도 쓰고, 성으로도 씁니다.
볼수록 신기한 카파도키아의 마을.
이제 다시 차를 타고 괴레메 오픈 에어 뮤지엄으로 갑니다.
다양한 암석 건축물이 자리한 곳을 공원으로 꾸며뒀어요. 입장료를 받는 유료 시설인데요. 볼만합니다. 한국에서 순례여행 오신 팀도 있어요. 이곳에 기독교 유적이 많거든요.
바위에 구멍을 뚫어 예배당을 지었어요. 안에는 성화도 있습니다.
어두운 동굴안에 이런 성화를 그려뒀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터키의 국민 98퍼센트가 이슬람입니다. 그럼에도 카파도키아에는 기독교 유적이 많아요.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으니까요. 이 땅을 지키던 콘스탄티노플의 후예, 즉 그리스 정교도들 대다수는 1923에 맺어진 로잔 조약의 결과, 그리스로 이주했어요. 이슬람 국가지만 그리스 정교도의 유적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터키인들의 종교적 관용은 이제 관광수입으로 돌아옵니다. 소피아 성당처럼요.
다음에 들른 곳은 상상 계곡. 이매지네이션 밸리라고 합니다. 상상을 자극하는 온갖 형상의 바위가 있는 곳이에요.
여왕 바위입니다. 왕관을 쓴 여왕님의 뒷 모습 같지요?
3일간 카파도키아 여행 상품에만 돈을 꽤 썼어요. 열기구 여행, 은근히 비쌉니다. 150유로에요. 20만원 가까운 돈이지요. 1시간 타고 나는데 20만원이니 꽤 부담스러운 가격입니다. 숙소에 커미션을 많이 주기 때문에 그래요. 열기구 운행사를 직접 찾아갔어요. 커미션 없이 좀 싸게 네고할 수 있을까 해서..... 알짤 없더군요. 말로는 내년까지 다 예약이 차서 안 된다고 하는데요, 가격 담합을 철저히 하고 있더군요. 고민해봤어요. 내가 20대 배낭족으로 이곳에 왔다면 어떻게 했을까?
열기구를 타는 대신 선셋 연인의 언덕에 해뜰 무렵 산책을 할 것 같아요. 35유로, 30유로 하는 그린 투어나 레드 투어 (5만원 상당) 대신 혼자 걸어서 괴레메 오픈 에어 뮤지엄에 갈 것 같아요. 가이드 설명 대신 위키 백과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설명을 듣고요. 그러다 한국 관광객을 만나면 은근슬쩍 따라 붙지요. 근처에서 서성이며 귀동냥으로 한국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거죠. 저녁은 식당 대신 길에서 8리라 (1600원)하는 도너 케밥을 사서 숙소에 와서 먹을 것 같아요.
카파도키아까지 가서 열기구를 안 타면 서운하지 않냐고요? 20대의 여행은 그래도 되어요. 나중에 또 갈 수 있으니까요. 언덕에 올라서도 볼 건 다 볼 수 있어요.
이제 로마 시대의 유적지 에페스를 찾아 떠납니다. 다음 여행기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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