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기욤 뮈소의 소설을 연이어 급하게 읽고 있습니다. 교보문고 샘(SAM)이라고 해서 전자책 대여 서비스가 있는데요, 지난 봄, 드라마 연출하던 어느날 보니, 기욤 뮈소의 소설 <내일> <센트럴 파크> <브루클린의 소녀> <파리의 아파트> 총 4권을 한 권 값에 대여하고 있더라고요. '열람권 1개로 인기 세트 보SAM' 이벤트에 짠돌이 눈이 확 뒤집혔지요. '이런 대박 찬스, 놓칠 수 없어!' 하고 질렀어요. 열람기간이 6개월이니까, 드라마 끝나고 쉴 때 읽어야지, 했는데... 드라마 끝나니 다음 책 원고 쓰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거죠. 게다가 드라마하는 몇 달 동안,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서, 전자책 리더기 켤 시간도 없었어요. 어느날 보니 남은 열람기간이 열흘도 안 되더라고요. 부랴부랴 읽고 있어요.
기욤 뮈소의 소설을 연이어 읽으며 느낀 점. 이 작가의 이야기 스타일은 한국의 통속극 드라마를 닮았어요. 초반에 센 거 한방으로 독자의 눈길을 확 잡아끕니다. <센트럴 파크>가 그래요. 전날 저녁, 프랑스 파리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 벤치에요. 옷에는 피가 묻어 있고, 호주머니에는 권총이 있고,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는데, 그 또 반대편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자고 있어요. 그 남자는 전날밤 영국에서 재즈 공연을 마친 피아니스트인데,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네요. 도대체 잠든 사이 어떤 일이 벌어지면 지구 반대편 대륙에서 수갑을 찬 채 눈을 뜨게 될까요? 도입부에 센 거 한 방 터뜨리고,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한국의 드라마가 그래요. 도입부에 센 장면을 보여주고, '도대체 저 여자는 어쩌다 저러고 있는 걸까?' 를 설명하는 게 핵심 테마지요.
평소 추리 소설이나 통속 소설을 재미삼아 많이 읽지만, 블로그에서 소개는 잘 하지 않습니다. 제가 스포일러를 싫어하는데요, 줄거리를 노출하지 않고 책 소개하는 게 참 쉽지 않더라고요.
<브루클린의 소녀>의 주인공은 작가인데요. 초반에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는 장면이 흥미로워 옮겨봅니다.
나는 여섯 살 때부터 머릿속에서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취미가 있었고, 청소년기에 글쓰기는 이미 내 일상의 중심축이 되어 있었다. 소설 집필은 내 머릿속에 넘쳐나던 상상력의 물줄기를 한곳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세례로 맘껏 상상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소설 쓰기는 나에게 허락된 시간과 공간을 모두 흡수해버렸다. 나는 어디를 가든지 항상 수첩이나 노트북을 지참하고 다녔다. 공항벤치, 비행기 안, 카페, 호텔 커피숍, 지하철 안 등 나는 어느 곳에서나 글을 썼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동요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생각해보거나 글의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료조사에 열중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 위한 탐색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소설 쓰기와 결부되어 있지 않은 일에는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나 관찰자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 눈에 포착된 현실은 다시 상상의 세계와 결합돼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되었다. 약간 과장되게 말하자면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된 이후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창조자가 되었다.
2003년 첫 소설을 발효한 이후 매년 어김없이 한 권의 책을 냈다. 내 소설은 주로 수사물이나 스릴러물이었다. 언론사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마다 크리스마스와 생일날을 빼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설을 쓴다고 말했다. 사실은 스티븐 킹이 나보다 먼저 했던 말이었다. 나는 스티븐 킹이 분명 거짓말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난 크리스마스나 생일에도 일했으니까. 특별한 날이라고 해서 일을 하지 말아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찾아내지 못했다.
글을 읽으면서 혼자 씨익 웃음을 지었어요. 제가 요즘 그렇거든요. 매일 글을 씁니다. 쉬는 날이 없어요. 책의 원고를 쓰거나, 청탁 받은 외부 칼럼에 기고할 글을 쓰거나, 블로그에 올릴 글을 씁니다. 내 삶에서 일어난 일을 글로 쓰면, 그것이 괴로운 일이든, 즐거운 일이든 무엇이나 좋은 글감이 됩니다. 괴로움을 글로 쓰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요. 즐거움을 글로 쓰면 누군가에게 영감을 줍니다. 이러니 무엇이든 글로 쓰지 않고 배길 수가 있겠어요?
소설을 읽으면서도 글쓰기 예찬론에 빠지게 되니, 이제 어쩔 수 없는 글의 포로인가봐요.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미여사의 단편집 (6) | 2018.10.26 |
---|---|
도서관은 나를 키운 천국 (12) | 2018.10.25 |
만화와 게임과 이야기의 만남 (6) | 2018.10.23 |
끊임없이 쓴다 (12) | 2018.10.22 |
나와 아이를 위한 7가지 약속 (9) | 2018.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