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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미미여사의 단편집

by 김민식pd 2018. 10. 26.

읽는 책을 모두 블로그에 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경우, 책을 읽고 글이 마려워야 해요. ‘아, 이 글은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일어야 자연스레 글이 나옵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하는 취미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무감보다는 나 자신의 재미가 중요합니다. 재미로 읽지만, 블로그에 소개하지 않는 책도 많아요. 소설이 그렇습니다. 소설의 재미는 이야기의 구성이나 반전의 묘미에서 나오는데, 스포일러를 싫어하는 지라 소설의 리뷰를 쓰는 일이 참 어렵습니다.


재미난 소설은 가리지 않고 다 읽는 편입니다.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읽는 종류가 좀 달라집니다. 한가할 때는 장편 대하 소설을 읽고, 바쁠 때는 단편집을 읽습니다. 예전에 시트콤 조기종영을 당하고 예능국에서 찬 밥 신세로 지낸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 저는 32권짜리 일본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었어요. 조용히 기회를 기다리며 훗날을 도모하는 사람에게 딱 좋은 책이지요. ‘기다리는 것도 실력이다.’ 오로지 참고 인내하는 것으로 세상을 손에 넣은 남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거든요. 드라마PD 사내공모에 도전한 후,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한 시절을 32권짜리 소설 덕에 버틸 수 있었어요.


드라마 연출을 시작하면 일단 두꺼운 소설은 포기합니다. 대신 단편집 위주로 읽습니다. 아예 소설 읽기를 끊으면 좋으련만, 그건 잘 안 됩니다. 세트 녹화를 하다 잠시 쉬는 짬이라도, 편집하다 머리를 식힐 때에도, 재미난 책을 읽어야 재충전이 잘 되거든요. 어쩔 수 없는 활자중독이지요.

드라마 촬영하는 중에 미미 여사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집 <홀로 남겨져> (미야베 미유키 / 박도영 / 북스피어)를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현장 상황 탓에 촬영이 늦춰지면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야하는데, 이 책 덕분에 ‘앗싸! 독서 시간 10분 확보!’하고 몰래 환호하게 되었어요. 


책 뒷표지에 나오는 소개글입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묘사하는 일이야 쉽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묘사해 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사실 미야베 미유키가 타고난 미덕은 바로 이것이다.

주인공의 생각이나 소소한 풍경 등을 선명하게 그려내는 재능.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미야베 미유키의 미덕이 특별히 눈에 띄는 작품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초자연 현상을 다룬 7편의 단편이 

감탄할 만큼 절묘하게 배열되어 있고,

섬뜩한 이야기부터 조금은 유머러스한 소설까지 양념도 풍부하게 뿌려져 있다.

그야말로 작가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견본이라고 할까.

미야베 미유키야 작품들의 완성도로는 정평이 나 있지만,

대작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작가의 맨 얼굴은

이런 작품집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다. 알갱이는 작아도 톡 하고 쏘거든.

- 기타가미 지로 (문학평론가)


이렇게 멋지게 소설을 소개하는 재주가 없어서, 오늘은 소개글로 대신합니다. 미미 여사의 책은 무엇이나 다 재미있지만, 이 단편집도 종합선물셋트같은 재미가 있어요.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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