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블로그 댓글에 저의 은사이신 한민근 선생님께서 글을 남기셨어요. 연락을 부탁한다고.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오랜 통역대학원 입시반 지도를 그만두고 이제 은퇴 생활을 즐기신다네요. 선생님을 모시고 남산에 가벼운 산책을 가기로 했어요. 산책 가는 길에 어떤 책을 가져갈까 고민하다 <상식이 정답은 아니야> (박현희 / 샘터)를 골랐어요. 샘터에서 나온 아우름 총서가 인데요. 150쪽 내외의 얇고 가벼운 책입니다. 걷기 여행할 때는 이런 가벼운 책이 등산용 배낭에 넣어 가기 딱 좋지요. 충무로역으로 오고 가는 전철 안에서 한 권 뚝딱 읽었어요.
‘세상의 충고에 주눅 들지 않고 나답게 살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어요. 속담에서 말하는 상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라는 속담을 반대로 해석합니다. '인생 너무 재지 말고 그냥 내키는 대로 살아도 된다. 넘어지면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되니까.'
‘빈 수레가 요란하다’ - 억울한 일을 당할 때는 침묵을 지키는 것보다 제 목소리를 내고 시끄럽게 구는 편이 낫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 모나게 태어났다면, 굳이 둥글어질 필요가 있을까? 생긴대로 살아도 된다.
이런 식의 속담풀이지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자기답게 살기를 포기하고 보통의 존재로 무리 속에 섞여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아내 노라가 집을 나가려고 하면서 남편 헬메르와 나누는 대화를 보자.
헬메르: 우선적으로 당신은 아내이자 어머니야.
노라: 그런 말은 이제 믿지 않아요. 나도 인간이라고요. 당신과 같은 인간이요.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믿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이 옳다고 말할 테죠. 게다가 많은 책에도 그런 말들이 있지요. 그러나 나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책에 쓰인 것에 더는 만족할 수 없어요. 나는 모든 일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싶어요.
헬메르 : 노라, 당신은 병이야. 열이 있군.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야.
노라 : 나는 오늘밤처럼 의식도 머리도 또렷했던 적이 없어요.
(위의 책 37쪽)
경제적인 어려움, 배우자의 불륜이나 폭력 등 결혼의 지속을 위협하는 요소는 많아요. 무엇보다 저는 서로를 향한 신뢰가 깨어진 상태에서 결혼을 이어가는 건 고통이라고 생각해요. 끝내야 할 순간을 알고 끝내는 것도 현명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에요.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상식도, 자신에게 맞지 않을 땐 포기할 수 있어야죠.
우리는 흔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고요. 실패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 찾아오는 결과라고 믿습니다.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것도 있어요. 저성장 시대에는 특히 더 그래요.
언젠가 동료 교사가 이런 말을 했다. “아무래도 나는 나이가 스펙인 것 같아.” 교사 임용 시험이 천문학적인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는 요즘, 그 경쟁을 뚫고 정규직 교사가 된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이 정규직 교사가 될 수 있었던 건 71년생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며, 10년 혹은 2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절대 교사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위의 책 117쪽)
저는 이제 기성세대가 강요하는 상식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또래 세대가 갖고 있는 상식은 지금 시대에서는 적용 가능하지 않을 지도 몰라요. 세상이 바뀌었는데, 자신의 방식만 옳다고 후배 세대에게 강요하는 건 또다른 폭력이지요.
세상의 충고에 주눅 들지 않고 나답게 살기
선배 세대의 충고에 너무 주눅 들지 말아요. 그들이 조금의 성공이라도 거두었다면 그건 어쩌면 그들의 나이가 스펙이기 때문일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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