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 한겨레 출판),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2018/03/06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이토록 로맨틱한 여행기
저는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흠모하는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데, 풀 길이 없지요. 누구는 영어 학습서를 쓰면서도, 오로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만 하던데... (^^ 사람마다 글을 쓰는 방식도 다르고, 이야기를 푸는 방식도 다른가봐요. 아마 그 어떤 사람은 그냥 이야기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인듯... 영어학습법도 기왕이면 이야기를 통해 동기부여하는 게 그 사람의 방식인듯... ^^)
<5년만에 신혼여행>을 보면, 기자로 일하던 장강명 작가가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지 나오는데요, 기자는 노동 강도도 높고 사람을 계속 도덕적 긴장 상태로 몰아넣습니다. 때로는 회사가 나아가는 방향과 논조가 자신과 맞지 않아 고민이 될 때도 있고요. 어느날 장강명 기자는 국회 기자실에서 일하다 전화기 전원을 끄고 그냥 집으로 가요. 그 길로 10년 근속 휴가를 내고 휴가가 끝나자 사직서를 냅니다. 작가는 황당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라 말하지만, 저는 전율이 일었어요. '우와! 진짜 멋지다!' 더 멋진 건 그 다음이지요.
'나는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HJ(장 작가님의 아내)에게는 딱 1년 반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로 만 1년 동안 장편소설을 다섯 편 썼지만, 단 한 권도 출간되지 않았다. 돈은 30만 원쯤 벌었다. 단편소설 하나가 책 읽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낭독되었고, 과학기술인이 보는 잡지에 서평을 하나 실었다. 그 외에는 빈 맥주병을 마트에 가져다주고 돈을 받았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을 팔았다.'
(위의 책 21쪽)
사람은, 꿈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을 선택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든 시기에 꾸준히 소설을 써내는 것으로 작가로서의 자신을 증명하지요. 이렇게 멋지게 살기 쉽지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기하지요, 특히 부모의 반대에 부딪히기 쉬워요.
"뭐? 잘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겠다고?"
1년간 수입이 30만원이라면, 주위에서 난리가 나지요. 경력직으로라도 다시 기자를 하라고. 그런데 장강명 작가는 어떻게 버텼을까요? 부모님과는 원래 궁합이 좋지 않았다고 하시는군요. 역시! 멋진 인생을 살려면, 부모님은 포기해야 하나 봐요.
'우리 부모님이 특별히 나쁜 분들은 아니다. 사실 이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이 공통으로 갖는 문제다. 자식들의 인생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 자식이 타인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자식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신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 그리고 나는 그 부모들을 이해한다.
그런 폭력의 원인은 대부분 사랑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식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위험에 빠지는 광경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안락한 감옥을 만들어 자식을 그 안에 가두고 싶어 한다. 과보호.
그리고 그 감옥에 갇혀 있는 한 자식은 영원히 성인이 될 수 없다.'
(위의 책 37쪽)
캬아아! 정확하게 부모 자식 관계에 핵심을 찌르는군요. 저는 어려서 항상 부모님께 죄스런 마음이었어요. 공부를 잘 하지 못해서, 의대에 가지 못해서 내가 못난 자식 같았지요. 어른이 되어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부모란 원래 만족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가까운 사람을 만족시키는 사람은 없다.' 이건 아내도 마찬가지에요. 원래 사랑하는 만큼 기대가 커지기 때문에, 가장 나와 가까운 사람을 만족시키기가 가장 어려워요.
놀라운 건, 장강명 작가님의 반려자라고 생각해요. 멀쩡한 신문기자라는 직업을 던지고, 불안정한 소설가의 삶을 시작하는 남편을 지지하거든요. 이런 이상적인 파트너십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작가님의 통찰을 보시지요.
'결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두 사람이 영원히 사랑을 믿으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한눈팔지 않고 상대에게 충실하겠다는 공개 선언이다. 이것은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개념이다. 인간은 열정을 금방 잃고, 섹스의 가능성이 있는 타인을 향해 수시로 한눈을 팔며, 오래도록 한 가지 대상에 충실할 수 없는 존재다. 그것이 해방된 상태의 인간이다. (중략)
내 생각에 결혼의 핵심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지키겠다는 선언에 있었다. 그 선언을 더 넓은 세상에 할수록 우리의 사랑은 더 굳건한 것이다.'
<5년만에 신혼여행>, 에세이인데요. 지독한 사랑을 그린 로맨스라는 평이 있어요. 공감합니다. 남자들은 왜 글을 쓸까요? 어쩌면 남자가 쓰는 글은 다 연애편지 아닐까요? 누군가를 향한 절절한 사랑 이야기. 어쩌면 작가님이 쓰는 소설도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치는 작품인지 몰라요. 글쓰기의 원동력 중 하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마님께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책을 쓰거든요.
만약 글쓰기가 어렵다면 사랑하는 뮤즈부터 구하시길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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