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이야기>를 읽으면서 <춘추의 설계자, 관중>의 매력에 홀딱 반해버렸어요. 유명한 관포지교의 주인공이지요. 관중의 청년시절 이야기에는 항상 친구 포숙이 나옵니다.
일찍이 가난하던 시절, 나는 포숙과 함께 장사를 했다. 이익을 나눌 때 내가 더 가졌는데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이 포숙을 위해 일을 꾸몄는데 오히려 상황이 더 옹색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포숙이 나를 어리석은 놈이라 하지 않았는데, 형세가 유리하고 불리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이 세 번 출사하여 세 번 다 주군에게 쫓겨났어도 포숙은 나를 못난이라 하지 않았다. 아직 내가 때를 못 만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이 세 번 싸워서 세 번 다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이야기 1, 춘추의 설계자, 관중> 176쪽
고사를 보니, 관중은 자신에게 참 너그러운 사람이네요. 실패와 좌절에는 다 이유가 있고, 또 그 이유를 알아주는 너그러운 친구도 있어요. 이렇게 본인의 실패에 너그러운 사람이 훗날 춘추전국 시대의 기틀을 만드는 명재상이 됩니다. 장사에도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모사에도 실패하고, 출사에도 실패하고, 전투에도 실패한 경험이 관중을 백성들의 어려움을 아는 정치인으로 만듭니다. 가난을 겪어보니 가난은 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압니다. 실력 있는 사람도 등용되지 못하는 현실을 체험했고요. 전투에서 도망가는 것도 사람마다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조직에서 일을 열심히 잘 해서 승승장구하는 상사를 모시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전형적인 일벌레에요.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있지요. 문제는 그 삶의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겁니다. 젊어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직장에 가고, 또 열심히 일해서 출세한 사람은 열심히만 하면 모든 게 이뤄진다고 믿습니다. 그건 1980년대 고도성장기에나 가능했던 방식이고요. 지금은 통용되지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대학 가기 쉽지 않고, 좋은 대학 나와도 취업하기 쉽지 않고, 좋은 직장 다녀도 집사기 쉽지 않은게 요즘의 현실인데, 그런 요즘 세대의 고충을 모르면, 세상 물정 모르고 잔소리하는 꼰대가 되기 쉽지요.
열심히 일하는 일벌레도 있어야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은 혼자 일은 잘 해도, 다른 사람을 이끌기는 쉽지 않아요. 타인의 고통, 타인의 실패를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좋은 지도자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야 합니다.
관중과 함께 제나라를 일으킨 제환공은 사실 약점이 많은 군주입니다. 여자를 밝히고, 미식을 탐하고, 재미를 추구합니다. 관중은 그런 제환공의 욕망을 무조건 억제하지 않아요. 어느 정도 눈감아 줍니다. 힘들게 정치를 하고, 목숨 걸고 전쟁을 하는 왕에게, 나름의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믿거든요. 노력해서 개인적 성공을 거둔 사람이, 남들에게도 똑같은 노력을 요구하는 순간 아집에 사로잡힌 필부가 됩니다. 진짜 지도자는 타인의 욕망도 인정하고 긍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먼저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그 너그러움을 타인에게도 허락한다.'
관중에게 배운 삶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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