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쓴 글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꾸준히 글을 쓰는 습관이 삶의 낙이 되었어요. ‘우울할 땐, 글을 쓴다.’ 생각해보니 이 습관이 처음 생긴 건 20대 어린 시절이었네요.
대학 다닐 때, 학점은 2점대로 바닥을 기고, 전공과 적성이 맞지 않아 진로 선택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어요. 90년대 초반, 인터넷이나 블로그, 1인 미디어가 없던 시절이라 글을 써도 어디 올릴 공간도 없었지요. 그래서 당시 저는 1인 잡지를 발간했습니다. ‘민시기의 글밭’이라고. 어쭙잖은 시도 있고, 여행기도 있고, 심지어 자작 영문 단편 소설도 있는.
(사진의 포커스가 흐린 게 아니라, 1991년의 도트 프린터는 출력상태가 좀 그랬어요. ^^)
어려서 꿈이 문학도가 되는 것이었는데요, 아버지의 강권에 이과를 가고 공대를 다녔지만 틈만 나면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 쓴 글을 컴퓨터로 출력하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복사하고, 스테이플러로 묶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줬습니다. 지금 와 글을 보면 정말 유치찬란해요. 어떻게 이런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생각을 다 했을까?! 해적판 문예지를 만들면서 참 행복했어요. 무엇보다 나는 글을 쓰는 직업을 꿈꿨는데, 비록 실현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글을 쓰는 즐거움까지 포기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어느 날 제가 만든 1인 잡지를 본 여자 친구가 그랬어요.
“선배는 피디를 해도 참 잘 하겠네.”
“응? 무슨 얘기야?”
“피디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직업이거든. 선배는 그걸 즐기는 사람 같아서.” 여자 친구와 그런 대화를 나눈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렀어요. 영업 사원에 통역사에 다양한 직업을 거치는 동안, 마음 한 구석에는 그 후배의 말이 맴돌았어요.
‘피디가 되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어쭙잖은 글과 생각을 사람들에게 읽히겠다고, 손 품 발 품 많이 팔았어요. 복사하고 묶어서 사람들을 만나 나눠주고, 다음에 만나면 반응을 들어보고, 또 분발하고. 그에 비하면 요즘은 얼마나 좋은 시절이에요. 아침에 일어나 어제 짬짬이 써놓은 글을 다듬고, 공개 여부를 발행으로 고치기만 하면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 글을 읽습니다.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로 반응을 알려줘요.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요!
피디니까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글 한 편 안 쓰는 피디도 많아요.) 글쓰기를 즐기다 보니 피디가 된 겁니다. MBC 서류 전형이나 작문 시험이 어렵지 않았어요. 어설픈 1인 잡지를 만들며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취미였으니까요.
내일은 대학 3학년 시절에 쓴 글을 한 편 공유하겠습니다. 짝퉁 나이키에 얽힌 슬픈 시 한 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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