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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딴따라 글쓰기 교실

괴로울 땐, 글을 쓰면 풀린다

by 김민식pd 2017. 11. 6.
페이스북의 장점 중 하나는, 과거의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11월 4일 아침에 페이스북에 들어갔더니, 2014년 11월 4일에 올린 글이 뜨더군요.
잠시 멍해졌습니다. 3년 전, 저는 어떤 글을 썼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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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글을 쓸까, 책을 볼까, 절을 할까, 이도저도 못하고 한동안 번민만 했습니다.

글을 쓰면 날선 울분이 터져나올 것 같아 차마 쓰지 못했고,

책을 보면 현실을 두고 도피하는 것 같아 비겁하게 느껴졌고,

108배 절을 하자니 수행도 수양도 안 될 것 같더군요.

요며칠 페이스북을 들여다보기가 참 힘듭니다.

MBC에서 같이 일하던 피디나 기자들이, 농군 학교로, 사업 부서로 쫓겨났어요.

이제 그들은 또 한동안 자문하면서, 자책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내가 누구한테 잘못했을까?'

이 두가지 질문을 품고 사는 삶은 지옥입니다.

우리는 공포 영화에서 이 두가지 질문을 만납니다.

일본 영화 '링'에서 주인공은 묻지요.

'무엇을 했기에 죽었을까?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스크림 '은 아예 공포 영화 장르의 공식을 가지고 놉니다.

'사는 사람과 죽는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네, 아주 악독한 살인마를 만나면, 그런 기준은 의미없어요. 그냥 다 죽이니까요.

'스크림'의 각본가가 쓴  '난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에서는

'내가 누구에게 무슨 짓을 했을까?'

이 질문을 끊임없이 되묻게 하지요.

드라마 제작사무실이 있는 일산 드림센터에서 근무하다가 상암동 신사옥으로 옮겼습니다.

상암동에 간 후로, 한동안 웃음이 많이 줄었습니다. 전 평소에 늘 웃고 다닙니다. 실없이... 네, 저처럼 못생긴 사람이 표정마저 울상이면 정말 봐주기 힘들거든요.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저는 늘 발랄하게 웃는 표정으로 다닙니다. ^^

그런데...

상암 신사옥에 간 후, 엘레베이터에서 같이 파업했던 동료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가, 살짝 당황하는 후배의 표정을 보고, 잠시 '음?' 했더랍니다. '왜 그러지?' 아마 엘레베이터에 같이 탄 분들 중에 보도국 간부가 있었나 봅니다. 저는 보도국 높은 분들의 얼굴을 몰라 가끔 그런 실수를 합니다. 그때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이구나.'

그 다음부터는 그냥 눈인사만 하고 지나가고요. 가능하면 웃지 않고 조용히 다닙니다.기가 죽어 어깨가 팍 꺾인 교양국 동료나 기자 후배를 보면, (일산에서 근무하는 지난 2년간 못 만났던)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와락 안아주고, 등 한번 세게 두들겨주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그러나 저는 참습니다. 그런게 아마 전과자의 설움인가 봅니다.

저는 그렇게 조용히 눈치보며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바깥에서 엠병신 소리를 들으며 손가락질을 받아도 그냥 참고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 교양제작국이 없어지고, 이번주엔 피디들이 농군학교 교육발령을 받았습니다. 파업이 끝난지도 벌써 2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 집요한 복수는 끝이 나지 않는군요.

공포 영화에서 궁극의 공포는, 끝난 줄 알았던 영화가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살인마가 살아나는 일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속편으로 돌아오고 막 그럽니다.

그게 가장 큰 공포에요.

"끝난 줄 알았지? 아직 끝난게 아니거든?"

그럴 때마다 영화 관객은 몸서리치며 비명을 지르죠.

그래봤자 영화입니다. 불이 켜지면 간담 한번 쓸어내리고 극장을 나오면 그만이에요.

내가 다니는 직장이, 내가 사랑하는 회사가, 이런 끔찍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변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답을 모르겠습니다.

답이 보이지 않아요.

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질문을 바꿔봅니다. 

'무엇을 잘못했을까? 누구에게 잘못했을까?'

이런 질문만 되뇌이면 공포 영화의 주인공처럼 내내 쫓기게 되요.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보니, 경제학은 이렇게 묻는 학문이랍니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

질문을 바꿉니다.

이런 발령을 내어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MBC를 망가뜨려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무엇보다...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MBC를 박차고 나가면

가장 기뻐할 사람은 누구인가?

자, 다시 답이 보입니다.

무엇을 하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MBC를 포기하는 일입니다.

MBC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일입니다.

회사를 더, 사랑해야겠습니다.

내가 더 오래 다닐거니까요.

그들보다, 내가 더 오래 이곳을 지킬 거니까요.

마지막 엔딩은 우리가 먹어야죠.

"우리가, 죽은 줄 알았지?"

하고 짠! 하고 나타나야죠.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이 악물고

웃으며 버팁니다. 

전 요즘, 다시 웃으며 회사를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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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쓸 때가 생각납니다. 무척 힘든 날이었는데요,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달랬어요. 1년 후, 저 역시 드라마국에서 송출실로 발령이 나는데요, 때려치우고 나갈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지만 차마 나갈 수 없었어요. 1년 전에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렸던 이 글이 저의 각오가 된 것이지요. 그때 회사에 남아 버틴 것이 제 인생 최고의 선택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가능케한 건 글쓰기였구요. 

화가 날 때는, 일단 108배를 하면서 명상 수련을 합니다.
가만히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명상과 절 수련은, 나 자신으로부터 거리두기입니다.

내가 빠져있는 생각에서 잠시 멀어져서 나 자신을 객관화해봅니다.
시간의 변수를 크게 확장시켜봅니다. 어떤 일도 영원하지는 않아요.
'어떤 고통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제가 고등학교 시절, 왕따를 겪은 후 얻은 깨달음입니다.

인생은, 지속되는 괴로움과, 잠시 잠깐 찾아오는 즐거움의 합입니다.
산다는 것은 괴로움의 연속인데, 그 시기를 참고 버티면 항상 낙이 찾아옵니다.
잘 버티는데 있어, 글쓰기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글에는 힘이 있어요. 삶을 붙들어매는. 
절망에서 시작한 글은 꼭 희망으로 끝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글 속에서 찾은 희망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다음 책 원고를 정리하고 있는데요, 블로그 글쓰기로 찾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내가 해봐서 좋았던 것은 다른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어요.
열심히 글을 모으고, 다듬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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