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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찌질해도 괜찮아

by 김민식pd 2011. 9. 17.
요즘 블로그 손님이 꽤 늘었다. 글 남겨주는 이들마다 다들 고맙고 반갑다. '내 블로그, 어린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하고 집사람에게 물었더니, '근데 너무 자랑질이 많은거 아냐?'하고 마님이 슬쩍 찔렀다. '그런가?'

최근 글을 보니, 어쩜 내 블로그는 성공한 사람의 자기 계발서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 공부해서 통역대학원 간 이야기며, MBC 공채 입사한 이야기며, 20년째 매년 해외여행 다니는 이야기며... 성공한 사람의 자랑질? 이건 내가 원한 느낌이 아닌데? 혹시 내가 초심을 잃은 건가? 문득 반성해 보게 되었다.

내가 이 블로그를 만든 이유는 하나다. '찌질해도 괜찮아.'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국 사회에서 좀 잘나간다는 40대 중년 남자들이 노는 방식은 대개 술이다. 그것도 비싼 술집에서 아가씨랑 마시는 술... 하룻밤 술값으로 1인당 50만원을 쓰는 이들을 보며, '왜 그렇게 사니?' 하고 면박을 주자 '이렇게 못 노는 게 바보아냐?'라는 핀잔만 들었다. 비싼 돈 들여야 잘 논다고 생각하는거 그게 싫었다.

나는 명품 브랜드를 전혀 모른다. 난 남자들의 유일한 악세사리라는 시계를 차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보면 되지? 그래서 시계나 입성으로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알리고 명품에 빠져사는 세대를 난 좋아라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입는 옷은 거의 다 10년 씩 된 옷인데, 구멍나기 전에는 버리지 않는다. 

내 나이 마흔 넷, 난 참 찌질하게 산다. 저녁 술자리보다 아침 동네 산책이 중요하고, 명품 브랜드보다 공짜 책 선물이 더 반갑다. 

난 영어도 참 찌질하게 배웠다. 유학이니 연수니 못 가봤다. 본토 발음, 이런 거 모른다. 발음이 찌질하면 어때, 뜻만 전하면 되지.

94년 첫 직장을 그만둘 때, 다들 만류했다. '너 그렇게 배낭 여행에 꽂혀 살다 사회에서 낙오된다.' 당시만 해도 첫 직장은 곧 평생 직장이었다. 회사를 그만 둔 사람은 직장 생활의 낙오자였다. 백수면 어때, 나만 즐거우면 되지. 

MBC 예능국에서 몇 년째 시트콤 조연출하며 말아먹을 때, 선배들이 내 경력 관리를 걱정했다. '너도 예능 피디인데, 일밤같은 메인 버라이어티 쇼를 한번도 못해서 어떡하냐?' '괜찮아요, 형. 난 시트콤 오타쿠니까. 내가 좋아하는 시트콤만 하면 돼요.' 결국 시트콤만 만들다 버라이어티 감이 떨어져서 예능에서 2류 취급 받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잘 나가는 게 목표가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목표니까.

이 블로그의 주제는, '찌질해도 괜찮아'다.
 
'지금 가진 게 좀 없으면 어때?' 하고 난 여러분께 말하고 싶은거다.
'지금 하고 싶은 게 없다고? 그건 좀 곤란한걸.' 하고 말하고 싶은거다.
가진 건 없어도 하고 싶은 건 많아야한다. 다 할 수 있다고 여러분께 얘기하고 싶은거다.

공짜로 즐기는 세상, 나의 오랜 소망이다. 돈 없고 빽 없는 찌질이가 인생 즐겁게 사는 비법! 
이거 자랑질 아니냐고?
맞다. 자랑질이다.
'찌질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이건 내가 가진 최고의 자부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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