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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혼자를 기르는 법

by 김민식pd 2017. 3. 8.

혼자를 기르는 법 (김정연 만화 / 창비)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을 읽었어요. 주인공 이름이 '이시다'입니다. 아버지가 딸을 낳고 이름을 짓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를 존대하게 만들 거다!

훌륭한 분 - 이시다!!!

현명한 자 - 이시다!!!

귀한 몸 - 이시다!!!

나라님에게나 어울리는 귀한 이름이다!!!'

딸에게 '이시다'라는 이름을 지어준 아빠.

'넌 아비처럼 무시당하고 살면 안 돼. 모두가 스스로를 낮추고 너를 높이게 될 거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성을 빼고 이름만 부릅니다.

"시다씨! 우체국 좀 다녀와!"

"시다씨, 샘플 어디에 뒀어?"

"시다씨, 이거 복사 좀."

ㅠㅠㅋㅋㅋ

(시다는 한때 미싱사 보조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시다-바리, 下(した)-' 일본어로 '시다'는 아래거든요.  "내가 니 시다바리가?"하는 영화 '친구' 대사에서 보듯, 아랫사람, 졸병, 부하를 뜻합니다.)

 

딸 둘을 키우는 아빠로서, 이 대목을 읽으며, 딸 가진 아빠의 딜레마가 떠올랐어요. 모든 아빠는 딸을 귀하게 키우고 싶어합니다. 딸들이 커서 세상으로 나가면 그 딸을 귀하게 대접하는 건 세상의 몫이지 아빠의 몫이 아니에요. 

'혼자를 기르는 법'에서 주인공은 혼자 서울에 자취하러 상경합니다. 자취방을 구할 때, 동네 가로등은 밝은지, CCTV 카메라는 많이 설치되어 있는지 꼼꼼하게 따집니다. 그럼에도 늦은 밤, 골목에서 못된 놈들을 만나 봉변당하는 건 피할 길이 없네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딸을 귀하게 키워도,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알 길이 없어요.

 

카페의 패브릭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 생리혈이 터졌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해 망부석이 되어가는 에피소드, 남자로 살면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입니다. 전 독서의 가장 큰 효용이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3월 8일,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딸 가진 아빠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내 딸이 일터에서 평등한 기회를 얻으려면 직장 내 성평등이 이루어져야 한고요. 딸이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여성에 대한 사회적 보호도 강화되어야 합니다. 딸이 훗날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육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늘어나야 하고요.

 

딸의 이름을 아무리 귀하게 지어도, 불러주는 사람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 처럼, 딸을 잘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작년에 읽었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느낀 교훈이 있어요. 가해자와 피해자의 거리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더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육아라고 믿습니다.

둘째가 학교에서 받아온 햄스터를 2년 넘게 키웠기에, 만화를 보면서 키득거리는 순간이 많았어요. 이 작가, 위트와 재치가 장난 아닙니다. 간만에 정말 유쾌한 만화를 봤네요.

만화만큼 재미난 작가의 인터뷰도 강추합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sehoi-park/story_b_108251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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