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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여기 '한 명'이 있다.

by 김민식pd 2017. 1. 3.

한 명 (김숨 / 현대문학)

책벌레에게 신년은 독서로 바쁜 계절입니다. 연말에 각종 매체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을 찾아읽어야 하거든요. 경향 신문에서 소개한 '2016 올해의 작가' 중 김숨 작가가 있어요. 도서관에 달려가 찾아봤습니다. 우리 동네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눈썰미는 정말 대단합니다. 소문난 좋은 책은 다 비치되어 있어요. 사서 선생님들, 만세!

 

'세월이 흘러, 생존해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분뿐인 그 어느 날을 시점으로 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아, 책머리에 나오는 소설의 배경만 봐도 가슴이 찌르르 합니다... 그래서 제목이 '한 명'이군요.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둘이었는데 간밤 한 명이 세상을 떠나.

차분히 담요를 개키던 그녀의 손가락들이 곱아든다. 세 명에서 한 명이 세상을 떠나 두 명 남았다는 소식을 들은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귤색이던 극세사 담요는 바래고 물이 빠져 살구색에 가깝다.

그녀는 마저 담요를 개켜 한쪽으로 치우고 손으로 방바닥을 쓴다. 먼지와 실오라기, 살비듬, 은빛 머리카락들을 손바닥 아래로 모아 뭉치던 그녀는 나직이, 중얼거린다.

여기 한 명이 더 살아있다........'

(9쪽)

 

책을 펼쳐드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아, 그렇군요. 언젠가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그분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드릴 수 있는 날이.

 

박근혜 정부 하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중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있습니다. 어려서는 나라 없는 설움을 겪고, 말년에는 내 나라로부터 배신을 당한 분들. 1년 전 위안부 합의 뉴스를 보고 좌절했어요. '아, 이 정부는 정말 막가는구나...' 우리 정부는 졸속으로 협상을 하고, 일본 정부는 파렴치하게 안면을 바꾸고... 세월호며, 메르스며, 개성공단이며, 사드며, 민심은 살피지 않고 독불장군식으로 밀어부친 결과가 사면초가에 고립무원입니다.

과거는 흘러간 옛날이 아니에요.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독일의 전쟁범죄가 홀로코스트라면, 일본에겐 위안부 피해자가 있어요. 비교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신다면 책을 읽어보세요. 20만명이 끌려가서 2만명이 겨우 살아돌아옵니다. 이렇게 끔찍한 전쟁범죄에 대해 제대로 된 사죄 없이 넘어간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일본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적어도 우리 정부가 우리 국민에게 그러면 안 됩니다.

 

'인간의 상상을 압도하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 작가가 느꼈을 혼란에 대해 생각해본다. 소설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처음 이 소설을 쓰려고 했을 때 작가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같다. 실제로 일어났던, 그래서 누구나 믿을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한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을 수 없는 참혹의 크기 앞에서 어떤 소설도 선뜻 그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을 고통의 기억들과 마주하는 순간, 작가는 끔찍한 기억 속에서 생의 대부분을 살아온 분들에게도 밥도, 집도, 숨 쉬는 공기조차도 나눠주지 못하는 소설의 무기력에 먼저 절망하지 않았을까? 오로지 상상을 통해서만 인간의 삶을 얘기해온 소설이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역사에 대해 더군다나 그 참혹한 역사는 생존해 계신 피해자분들이 역사를 부정하고 지우려는 세력에 맞서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호출하고 증언해야 하는 현재진행형의 역사가 아닌가?'

(270쪽 문학평론가 박혜경님의 해설 중)

초반부 위안부의 일상에 대한 묘사는 읽어내기 정말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내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들이 작가의 손을 빌어 증언하는 것 같았어요.

                                      (사진: 노컷뉴스)

 

"죽을 수가 없어. 내가 죽으면 말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237쪽)

 

할머니들은 위안부 피해를 고발하고, 가족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배척을 당합니다.

'집안 망신이다, 동네 망신이다... 뭐 좋은 얘기라고 그걸 떠드나?'

내부고발자들이 흔히 겪는 비난이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잘못이 있을 때, 그걸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저들은 다음에도 또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 겁니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피해를 각오하고 나서서 말하는 사람도 있음을, 저들에게 똑똑하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선행을 하는 것보다 악행을 막는 것이 더 어렵고도 힘듭니다. 하지만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은 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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