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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조금 게을러져도 괜찮아

by 김민식pd 2016. 12. 27.

저는 전형적인 일중독자입니다. 일을 할 때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 미친듯이 합니다. 취미 생활도 마치 일하듯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합니다. 어쩌면 저는 성과주의 한국사회에 길들여진 일벌레인가봐요.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중간 고사 결과 반에서 50명중 22등이었어요. 6개월간 독하게 마음먹고 공부해서 학력고사 (당시의 대학 입학 시험)로는 반에서 2등을 했어요. (학교에서는 제가 컨닝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 대학에 올라와서는 영어를 특기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미친듯이 영어를 공부했고요. MBC 입사 후에는 영상 문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영화를 하루에 3편씩 보았어요, 거의 매일같이.

그 시절에는 그런 게 통했어요. 노력을 하면 성적이 올라가고 (공부를 하지 않는 친구도 많으니까.) 영어를 하면 취업이 되고 (영어를 하지 않는 사람도 많으니까.) 영화를 많이 보면 피디가 되었어요. (피디란 직업이 지금처럼 인기가 많지 않던 시절이니까.) 이젠 다른 세상이지요. 공부도 취업도 투자한 만큼 성과가 잘 나지 않습니다. 저성장 시대니까요. 고도 성장기에는 '열심히 노력하면 다 된다'는 자세였지만, 지금같은 저성장 시대는 그게 통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적은 오르지 않고,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노동관도 바꿔야 할 때입니다. 무조건 열심히 일만 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거지요.

 

'노동은 개인의 도덕적 실천이자 집단의 윤리적 의무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전통적인 노동관-임금노동의 도덕적 가치와 고결함을 설파하고 그런 노동이 개인의 성장과 자아실현, 사회적 인정과 지위의 절대적 원천으로 보는 관점-은 미국의 노동자들이 임금노동에 오랜 시간을 바치고 거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여하는 것을 합리화하고 더욱 독려하는데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전통적인 노동관을 문제 삼는 것은 노동에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 그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생산적 활동을 구성하고 분배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노동이라는 울타리 밖에서도 창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지금 노동에서 찾곤 하는 즐거움을 그 밖의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도 있으며, 그뿐 아니라 세상에는 우리가 새로이 발견하고 고양하며 누릴 수 있는 다른 즐거움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케이시 윅스 / 제현주 / 동녘) 26~27쪽)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노인은 몇가지 불운이 겹치며 불쑥 가난해집니다. 불임으로 아이가 없고, 아내가 일찍 죽고, 혼자 사는 노인에게 질병이 찾아옵니다. 아파서 일을 못하는 순간 소득이 끊기고, 최저생계비마련마저 걱정해야하는 지경이 되지요. 불운한 사람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는 이 시대의 노동관, 페미니즘 등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기본소득과 주 30시간 노동의 도입을 주장하는데요.

 

'보편적인 기본소득 보장은 모든 노동자의 대 고용주 협상력을 높여 줄 것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선별적 복지 프로그램이 주는 낙인 효과와 불안정성에 대한 걱정 없이 임금노동으로부터 벗어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임금 감축 없는 주 30시간 근무제는 불안전 고용과 과중 노동의 문제를 일부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돌 것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자본과 노동은 모두 독점이 심하고 빈부 격차가 심해요. 일하는 사람은 과로사할 지경이고, 실업자는 굶어죽을 지경입니다. 노동 시간을 줄이고 대신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좀 덜 하면 어떨까요? 야근을 하고 주말 근무를 하는 대신, 표준근로시간만 지키며 사는 겁니다. 일과 가정, 두 가치 가치를 다 지키며 사는 거지요.

기본소득과 주30시간 노동. 마치 파라다이스처럼 들리나요? 우리는 천국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며 천국을 꿈꿉니다. 아니, 적어도 너무 열심히 일을 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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