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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권선징악은 인간의 몫

by 김민식pd 2016. 12. 19.

탈무드나 책을 통해 유대인에 대해 읽었지만, 직접 유대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요. 1992년 유럽 배낭 여행에서 직접 유대인을 만난 적이 있지요. 로마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먹다 미국에서 온 브랜든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간단한 조식 뷔페가 차려진 카페테리아에서 저는 베이컨을 집중공략하는 중이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브랜든이 '돼지 고기는 청결하지 않아...' 하면서 토스트만 먹더군요. 당시 저는 저예산 배낭여행 중이었기에 점심 저녁을 주로 간단한 빵으로 때웠어요. 단백질을 섭취할 귀한 기회를 놓칠 수 없었지요. 나중에 그 친구가 자신은 유태인이라고 말하기에 민망했어요.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유대인 앞에서 그렇게 열심히 베이컨을 먹어댔으니...

그날 낮에는 브랜든이랑 둘이서 바티칸을 갔는데요. 좀 난감했어요. 예수상이나 성화를 볼 때마다 불쑥 저건 가짜야.' 하더군요? 저게 가짜 성화라고?’ ‘아니, 예수가 가짜 메시아라고.’ 유대교에서는 아직 선지자가 도래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유대인 친구와 바티칸을 돌아보는 건 별로 경건하지 못한 경험이었어요. ^^

 

확고한 선민의식을 가진 유대인은 고난을 어떻게 볼까요?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 교수는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에서 유대인 철학자 레비나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레비나스는 세계대전에 징병되었다가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서 종전까지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리투아니아에 있던 친척 대부분은 아우슈비츠에서 죽음을 맞이한 상태였습니다. 그가 귀화한 제2의 조국 프랑스의 유대인 공동체는 붕괴 직전에 있었습니다.

젊은 유대인들은 할아버지 아버지 적부터 전해 온 신앙에서 등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지요.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어째서 신은 그가 선택한 백성이 600만 명이나 학살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는가? 어째서 어떤 기적적인 개입도 하지 않았는가? 신자를 버린 신을 우리는 왜 여전히 믿어야만 하는가?”라고요.

레비나스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묻겠다. 당신들은 이제까지 어떤 신을 믿어 왔는가? 선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고, 악행을 하는 자에게는 벌을 내리는 권선징악의 신인가? 그렇다면 당신들이 믿고 있었던 것은 유아의 신이다.

권선징악의 신이 완전히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선행은 상을 받고, 악한 일은 곧 처벌받을 것이다. 그러니 신이 모든 인간사에 기적적으로 개입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달성해야 할 어떠한 것도 없어진다.

비록 눈앞에서 어떤 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도 우리는 팔짱을 낀 채 신이 개입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신이 모든 것을 대행해 주기에 우리는 부정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있어도 꺼림칙하게 생각하지 않고 약자를 도울 의무를 면제받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그처럼 인간을 영원히 유아인 채로 머물게 하는 신을 갈구하고 믿고 있었던 것인가?“

홀로코스트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악입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죄의 대가나 치유는 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지요. 신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존재라면, 신의 도움 없이 이 지상에 정의롭고 자애로운 세계를 일으켜 세울 인간을 창조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세계를 인간적인 곳으로 바꿀 수 있는 높은 지성과 덕성을 갖춘 인간을 신은 창조했을 게 분명합니다.‘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166)

 

 

세월호 참사를 본 후, 저 역시 같은 의문을 품었는데, 그 답을 이 책에서 찾았어요. 세월호가 기울어진 순간, 우리 모두는 신앙인의 자세로 구원을 빌었지만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정부의 책임 있는 해결과 답변을 구했지만 그 역시 얻을 수 없었어요. 오히려 자식을 잃은 유가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언론 보도와 폭식 퍼포먼스라는 기괴한 행태가 줄을 이었습니다.

'과연 이 세상은 정의로운가?' 사람들이 품었던 의문은 이제 손에 든 촛불 한자루가 되어 광화문의 주말 저녁을 밝히고 있어요. 세월호 참사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악입니다. 그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사진 출처: 한겨레 보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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