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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노는 인간이 되자

by 김민식pd 2016. 11. 11.

인공지능의 시대, 노는 인간이 되자

(청소년 인문학 (가제) 책에 기고한 글입니다.)

 

저는 MBC PD로 일하고 있습니다. PD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생긴 남자, 예쁜 여자, 춤 잘 추는 사람, 노래 잘 하는 사람, 그리고 잘 웃기는 사람들과 일하는 직업입니다. 친구들은 로맨틱 코미디를 만드는 저를 보고, ‘너는 노는 게 직업이니 참 좋겠다!’ 그럽니다. 맞아요, 저는 노는 게 직업입니다. 2016년 봄, 알파고가 바둑대결에서 이세돌 9단을 이기는 걸 보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인공지능의 발달이 정말 빠르구나, 로봇에 의해 대체되는 일자리가 늘어나면 그 결과 노는 사람도 많아지겠구나.’ 인공지능의 시대는 달리 말하면 노는 인간의 시대’, 즉 노는 게 직업이 되는 시대입니다.

저는 열심히 놀다가 PD가 되었습니다. 어려서 PD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요. 그냥 열심히 일하며 살 생각이었지요. 취업 잘되는 엔지니어가 되려고 공대에 갔습니다.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나왔는데 정작 엔지니어가 적성에 맞지는 않아 영업사원으로 취업했습니다. 치과마다 다니며 외판사원으로 일했는데, 그것도 재미는 없더군요. 직장을 그만 두고 백수가 되었습니다. 평생 놀고먹기는 힘들 것 같아 다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영어 동시통역사가 되려고 외대 통역대학원에 들어갔지요.

통역대학원을 다니던 저는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산업혁명의 결과, 인간의 육체노동은 기계에 의해 대체되고, 정보혁명의 결과 정신노동은 컴퓨터가 대신하는 시대가 온다. 21세기는 역사상 최초로 인류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아니면 대다수 사람들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어 대량 실업에 시달리는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가?’

1995년에 나온 책이지만, 20년 후 지금의 현실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당시 저는 책을 읽다가 가까운 미래에 자동통역기가 나오면 통역사라는 직업이 사라진다는 얘기에 기겁했습니다. 언젠가 사라질 직업인데 열심히 공부한들 무얼 하나, 차라리 놀기라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냥 놀았어요. 통역대학원 시청각실에서 남들 CNN 보면서 영어 청취 공부할 때, 저는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보며 놀았습니다. '이렇게 재미난 청춘 시트콤이 왜 한국에는 없을까?'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MBC 예능국 피디 공채에 지원했고, 입사 후 <뉴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을 만들었습니다. 좋아하던 놀이가 직업이 된 거지요.

옛날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의 시대였어요.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한 이들이 취업해서 상사의 명령을 충실히 실행하고, 매뉴얼에 따라 근면하게 일하면 되는 시대. 앞으로는 달라질 겁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가장 잘 하는 게 바로 매뉴얼에 따라 명령대로 충실하게 일하는 것이거든요. 로봇의 어원은 체코어로 '노동하다'라는 단어 robota에서 나왔어요. 다가올 시대, 열심히 일하는 걸로는 로봇을 따라잡기 힘들어요. 로봇은 쉬지도 않고, 밤에 잠도 안자고 계속 일하니까요. 로봇과 경쟁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일까요? 알파고와 이세돌의 승부를 보고,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지요?

"알파고가 아무리 바둑을 잘 둬도 바둑을 두는 재미는 모르지 않나요?"

구한말 서양문물이 처음 들어왔을 때, 서양 사람들이 테니스 시합을 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걸 보고 고종이 그랬답니다.

"그렇게 힘든 일은 아랫것들에게 시키지, 왜 그리 고생을 하시오."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 없는 재미도 있는 법입니다. 앞으로 인간과 로봇의 일을 구분하는 척도는 재미입니다. 인간이 재미를 못 느끼는 일, 이를테면 단순 반복 작업은 로봇에게 맡겨질 공산이 커요. 재미없는 일은 로봇에게 맡기고 우리 인간은 이제 재미난 일을 찾아야합니다. 로봇이 대체하더라도 내가 좋으면 계속할 수 있거든요. 재미난 일을 찾는 게 앞으로 진로 탐색의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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